“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다.”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사진 오른쪽)의 부인인 캐럴 곤(왼쪽)이 남편의 일본 탈출 직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다. 곤 전 회장의 영화와 같은 일본 탈출은 부인이 수개월간 준비한 ‘그랜드 플랜’의 결실이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WSJ를 비롯한 주요 외신들은 1일 곤 전 회장의 일본 탈출 계획과 실행에 부인이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곤 전 회장이 다중의 감시망을 뚫고 촘촘한 일본의 출입국 절차를 통과하기 위해선 외부의 전문적인 조직이 참여해야 하고, 곤 전 회장과 교감도 이뤄야만 했던 만큼 부인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캐럴 곤이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레바논 베이루트로 향한 곤 전 회장의 자가용 비행기에 함께 탑승한 것으로 알려진 점도 이 같은 추정에 힘을 실었다. 곤 전 회장이 경유지로 터키를 택한 것도 부인의 이복 오빠가 터키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점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있다.

곤 전 회장의 일본 탈출 과정은 한 편의 스파이 영화를 방불케 한다. 레바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의 도쿄 자택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고, 이때 악단을 가장한 민간 경비업체 사람들이 돌아갈 때 대형 악기 케이스에 곤 전 회장을 숨겨 빠져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자택 현관을 비롯해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등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한 묘수였다는 설명이다.

이어 곤 전 회장 측은 수도권의 나리타공항과 하네다공항이 아니라 오사카의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 탈출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11시10분 터키항공 소속 자가용 비행기 한 대가 이스탄불로 떠났으며 탑승자 이름과 출발시간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가용 비행기가 이스탄불 공항에 착륙한 뒤 30분 후 같은 항공사 소속 다른 자가용 비행기가 베이루트로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했더라도 곤 전 회장이 어떻게 출국 수속을 마칠 수 있었는지는 미스터리다. 레바논 당국은 곤 전 회장이 본인 명의의 프랑스 여권으로 레바논에 입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곤 전 회장의 기존 여권은 일본 변호인단이 확보하고 있으며, 일본 출입국 기록에 곤 전 회장 이름이 없는 점을 고려하면 출국 수속은 차명 여권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차명 혹은 위조 여권을 사용했더라도 입국 기록 유무나 지문인식 등 여러 검사 절차를 어떻게 넘겼는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일각에선 상대적으로 검사가 소홀한 자가용 비행기 수화물 속에 숨어서 갔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마이니치신문은 곤 전 회장 탈출 과정에 레바논 민병대가 관여한 의혹이 있다고 전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