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개포동에서 분양한 개포프레지던스자이 모델하우스에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GS건설 제공
지난달 서울 개포동에서 분양한 개포프레지던스자이 모델하우스에 방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GS건설 제공
국회 파행으로 다음달부터 새 아파트 청약이 마비될 위기에 놓였다. 주택 청약 업무를 한국감정원으로 이관하는 법안이 계류되고 있어서다. 연초 청약를 계획 중인 전국 4만가구의 분양 일정 조정이 불가피해 애꿎은 예비청약자들의 피해만 커질 전망이다.

◆금융결제원→한국감정원 이관 난항

2일 국회와 감정원 등에 따르면 지난 5월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법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소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여야 대치가 격화하면서 법제사법위원회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개정안은 국토교통부가 지정하는 기관이 청약통장 가입자들의 금융정보를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국토부 산하 기관인 감정원이 주택청약 업무를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은 금융기관만 이 같은 정보를 다룰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2018년 ‘9·13 대책’을 통해 금융결제원이 맡고 있는 청약 업무를 감정원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추진했고, 개정안도 이 같은 맥락에서 발의됐다.

행정적 준비는 거의 마무리됐다. 국토부는 감정원이 청약 업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지난해 10월 일찌감치 인터넷청약 대행기관 지정·고시를 끝냈다. 고시에 따르면 당장 다음달부터 청약 관련 업무가 금융결제원에서 감정원으로 넘어간다. 이에 따라 금융결제원은 설 연휴 분양시장이 문을 닫는 점을 고려해 이달 17일까지만 청약 접수 업무를 진행하고 이후부턴 당첨내역과 경쟁률 등에 대한 조회 서비스만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감정원은 청약가점 자동 계산 등의 시스템 개발을 끝내고 테스트와 정보 이관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모든 일정이 꼬이게 됐다. 다음달 청약 시스템이 이관되더라도 감정원은 금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청약자들의 금융정보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당장 본회의에서 통과되더라도 공포되기까지 1~2주 안팎의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테스트 기간도 3주가량 필요해서다. 감정원 관계자는 “현재로선 한두 달가량 청얍 업무가 마비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라면서 “늦어도 이달 초엔 국회에서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분양시장 ‘개점휴업’ 불가피

청약 시스템 이관이 차질을 빚게 되자 국토부가 지정 기관을 재고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약 공백이 예상되는 만큼 금융결제원에서 임시로라도 기존 청약 관련 업무를 연장 수행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이 아닌 금융결제원이 국토부의 요구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금융결제원은 당초 시스템 이관조차 전면 거부했다. 2000년부터 20년 동안 담당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정부 방침을 수용한 뒤 이관 시기가 4개월가량 미뤄질 때도 ‘재연장 불가’를 전제 조건으로 걸었다. 청약 업무 담당 직원들을 당장 다음달부터 새로운 업무에 배치할 예정이어서 청약 시스템 이관 재연기엔 협조할 뜻이 없다는 입장이다. 금융결제원 노조 관계자는 “법 처리 이전에 행정 일정을 밀어붙이다 발생한 혼란에 대한 책임은 정책 추진 기관인 국토부와 수행 기관인 감정원이 부담해야 한다”면서 “시작부터 잘못된 정책으로 금융결제원 직원들이 책임을 떠안게 되는 일은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국토부가 산하 기관도 아닌 금융결제원에 임시 청약 업무 담당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면서도 “결국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피해는 애꿎은 예비청약자들이 입게 됐다. 설 연휴를 감안하면 이달 셋째주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청약시장 개점 휴업이 불가피해서다. 청약 업무 이관 시기를 고려해 분양 일정을 다음달 이후로 미루던 건설업계는 난색이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2~3월로 분양을 계획하고 있는 단지는 전국 42곳 4만여 가구다. 4월까지인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유예기간 중 분양을 서두르던 재개발·재건축 단지들도 일정 수정이 불가피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법 통과 시점을 알 수 없는 상황이어서 홍보 일정조차 정하지 못하는 상태”라면서 “봄 성수기에 분양이 몰리게 되면 상담사 등 관련 인력을 구하는 것조차 난항을 겪게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