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나온다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에서 세 명의 남자가 한 명의 여자를 뒤따라가고 있다.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길로 여자가 들어간다. 남자 두 명은 제 갈 길을 가지만, 한 명이 유독 여자를 뒤따라가고 있다. 이를 10여 분간 지켜본 인공지능(AI) 시스템. “성범죄가 곧 발생할 확률이 79%”라고 결론 내린 AI가 관할 경찰서와 파출소에 긴급경보를 보낸다. 순간 해당 지역 가로등이 일제히 켜지며 큰 경고음이 울려 퍼진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신인증물리보안연구실은 이같이 범죄 발생 가능성을 실시간으로 예측하는 AI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2일 발표했다. 특정 지역에서 어떤 유형의 범죄가 발생할지 확률적으로 보여주는 이른바 ‘예측적 영상보안 원천기술’이다. 4대 강력범죄(살인, 강도, 절도, 폭력) 우범률을 ‘%단위’로 알려주는 시스템 개발이 최종 목표다. 범죄 통계정보와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1차적으로 분석한다.

ETRI 관계자는 “범죄가 발생한 CCTV 영상을 분석해보면 평상시와 다른 반복된 행동이 감지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재 CCTV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과거 발생한 범죄의 ‘데자뷔(이미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범죄자의 보행 패턴을 분석해 영상으로 전환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또각거리는 구두 발자국 소리, 걸음걸이 모양새 등 데이터를 특정 영상으로 변환해 평범한 보행 상황인지, 지속적 미행인지, 긴박한 뜀박질인지 등을 파악하는 AI 기술이다. 이미 벌어진 범죄현장 데이터와 비교 분석 알고리즘을 가동해 이뤄진다. 모자나 마스크, 배낭 착용 여부, 옷차림 등도 변수화할 예정이다. ETRI 연구팀은 법원 판결문 2만여 건을 분석해 기존 범죄현장 데이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성범죄 전과자를 관리하는 기술도 개발할 예정이다.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가 특정 지역에 진입할 때 법무부 보호관찰소 등 관계 기관에 통보하는 위치정보 시스템이 있긴 하다. 그러나 범의를 파악하기 어렵고, 사람이 많을 땐 착용자 판별이 불가능한 단점이 있다. ETRI는 전자발찌 착용자 등 범행 고위험군의 경로를 종합 추적해 인근 CCTV로 동선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번 연구개발엔 ETRI뿐 아니라 법무부 위치추적중앙관제센터, 경찰청, 서울 서초구, 제주도 등이 참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의 사회문제해결형 과제 일환으로 2022년까지 진행한다.

기술이 개발되면 향후 전국 220여 개 지방자치단체 CCTV 통합관제센터, 경찰관제시스템과 연동할 방침이다. 현장출동 시스템뿐 아니라 가로등 조명 제어 등 치안 인프라와도 연결한다. 후미진 골목 등에서 범죄 징후가 나타날 땐 주변 지역 가로등을 일제히 점등하면서 경보음을 울리는 식으로 경찰의 현장 도착 전 범죄자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ETRI 관계자는 “CCTV가 단순히 범죄 발생을 감지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위험 발생 가능성을 최대 80%까지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신경망(뉴럴네트워크) 방식의 AI 모델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