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유럽연합 탈원전의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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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각 국마다 원전 정책 제각각
韓, 사회적 합의 없이 탈원전 강행
강경민 런던 특파원
韓, 사회적 합의 없이 탈원전 강행
강경민 런던 특파원
“회원국들이 ‘에너지믹스(에너지원 다양화)’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한다. 일부 회원국은 에너지믹스의 일환으로 원자력발전을 사용하고 있다.”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이 2050년까지 유럽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한다는 목표에 합의하면서 지난달 채택한 원전 관련 합의문이다. 이 합의문이 전해진 직후 국내에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친(親)원전파는 EU가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친환경에너지로 인정했다고 해석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탈(脫)원전파는 이에 반발했다. 정부도 해명 자료를 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원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했다.
진실을 따지기에 앞서 EU의 원전 정책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17년 탈원전을 공식화면서 유럽 국가들을 사례로 들며 탈원전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원전을 줄이려는 추세인 건 맞다. 그러나 28개 국가가 속한 EU는 현시점에서 회원국마다 원전 정책이 제각기 다르다.
국민투표 등을 통해 탈원전을 공식화한 나라는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신규 원전 건설을 준비 중이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국가는 냉전 시절 옛 소련이 건설한 원전을 지금도 주력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영국과 프랑스 및 동유럽 국가는 지난달 정상회의에서 원전을 녹색금융상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녹색금융상품으로 지정되면 은행 대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탈원전을 선택한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반대했다.
EU는 타협안을 내놨다. 온실가스 감축 과정에서 원전을 앞세우느냐 여부는 회원국 결정에 맡긴 것이다. 녹색금융상품 기준에는 ‘피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에너지원이어야 한다는 내용만 명시했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유럽 녹색당의 분석을 인용해 안전 우려가 있는 원전이 투자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됐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원전이 명시적으로 제외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다른 해석도 많다.
원전 추진 여부를 회원국에 맡긴 EU 결정이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원으로 인정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정부는 독일 벨기에 등 EU 원전 감축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과 프랑스 및 동유럽 국가들의 움직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탈원전을 공식화한 독일과 벨기에만을 지목해 EU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정부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더욱이 독일과 벨기에가 탈원전을 추진한다고 한국이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일조량, 풍질, 수력 등 천연환경 및 재생에너지 인프라 등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탈원전을 공식화한 독일과 스위스 등은 수십 년에 걸친 사회적 논의와 국민투표를 거쳤다. 반면 2017년에서야 탈원전을 선언한 한국 정부는 논의가 이미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놓고 찬반 세력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도 정부는 꿈쩍하지 않는다.
탈원전처럼 국가적 갈등 과제는 시민 공론화를 통해 도출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24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공론화 결과가 나온 직후 밝힌 소감이기도 하다.
kkm1026@hankyung.com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이 2050년까지 유럽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한다는 목표에 합의하면서 지난달 채택한 원전 관련 합의문이다. 이 합의문이 전해진 직후 국내에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친(親)원전파는 EU가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친환경에너지로 인정했다고 해석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탈(脫)원전파는 이에 반발했다. 정부도 해명 자료를 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원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했다.
진실을 따지기에 앞서 EU의 원전 정책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17년 탈원전을 공식화면서 유럽 국가들을 사례로 들며 탈원전이 세계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 원전을 줄이려는 추세인 건 맞다. 그러나 28개 국가가 속한 EU는 현시점에서 회원국마다 원전 정책이 제각기 다르다.
국민투표 등을 통해 탈원전을 공식화한 나라는 독일, 벨기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는 신규 원전 건설을 준비 중이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등 동유럽 국가는 냉전 시절 옛 소련이 건설한 원전을 지금도 주력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영국과 프랑스 및 동유럽 국가는 지난달 정상회의에서 원전을 녹색금융상품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녹색금융상품으로 지정되면 은행 대출 혜택 등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탈원전을 선택한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반대했다.
EU는 타협안을 내놨다. 온실가스 감축 과정에서 원전을 앞세우느냐 여부는 회원국 결정에 맡긴 것이다. 녹색금융상품 기준에는 ‘피해를 끼치지 않는(Do no harm)’ 에너지원이어야 한다는 내용만 명시했다. 국내 환경단체들은 유럽 녹색당의 분석을 인용해 안전 우려가 있는 원전이 투자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됐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원전이 명시적으로 제외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춰볼 때 다른 해석도 많다.
원전 추진 여부를 회원국에 맡긴 EU 결정이 원전을 온실가스 감축원으로 인정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다만 정부는 독일 벨기에 등 EU 원전 감축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국과 프랑스 및 동유럽 국가들의 움직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탈원전을 공식화한 독일과 벨기에만을 지목해 EU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정부 논리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더욱이 독일과 벨기에가 탈원전을 추진한다고 한국이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일조량, 풍질, 수력 등 천연환경 및 재생에너지 인프라 등 국가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탈원전을 공식화한 독일과 스위스 등은 수십 년에 걸친 사회적 논의와 국민투표를 거쳤다. 반면 2017년에서야 탈원전을 선언한 한국 정부는 논의가 이미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을 놓고 찬반 세력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데도 정부는 꿈쩍하지 않는다.
탈원전처럼 국가적 갈등 과제는 시민 공론화를 통해 도출한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24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공론화 결과가 나온 직후 밝힌 소감이기도 하다.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