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 승진한 무주택자…'영끌'해서 집 산 동료 보며 씁쓸 [김과장 & 이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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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열풍에 울고 웃는 직장인
주말마다 중개업소 돌며
'神의 영역' 매수 타이밍 열공
주말마다 중개업소 돌며
'神의 영역' 매수 타이밍 열공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주택 소유 여부에 따라 직장인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무리해서라도 서울·수도권 주요 지역에 아파트를 산 김과장은 뒤에서 웃고 있다.
반면 세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이대리는 집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쉰다. 젊은 직장인들의 대화 주제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부쩍 늘었다. 부동산 투자가 효율적 자산 증식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1~11월 서울 아파트 매입자 중 30대가 28.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한국감정원)는 젊은 직장인 사이에 불고 있는 ‘부동산 열풍’을 반영한다. 급격히 오른 집값 때문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발선은 비슷했지만…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문 대리는 2018년 초 결혼하면서 서울 목동의 한 소형 아파트를 샀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 건 물론이고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사우회 기금 등 동원 가능한 돈을 다 끌어모았다. 문 대리는 “매수 당시만 해도 1년 전보다 1억원이 오른 상태여서 부담이 컸다”며 “매입 후 아파트값이 2억원 이상 다시 올라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이 대리는 무주택자다. 살 집을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의 규제 정책이 계속 발표되는 데다 무리하게 대출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매수 타이밍을 놓쳤다. 그동안 아파트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그는 “2년 전에는 작은 아파트라도 살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엄두도 안 난다”고 털어놨다.
같은 나이, 같은 연도에 한 회사에 입사한 문 대리와 이 대리의 출발선은 비슷했다. 단 한 번의 아파트 매수 여부가 둘의 자산 격차를 크게 벌려놓은 셈이다.
‘부동산 버스’ 낙오할까 두려워
이처럼 아파트로 돈 벌었다는 주변 동료의 사례를 들은 직장인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문 대리 이야기를 들은 팀원들은 부러움, 질투, 조급함 등 여러 감정에 휩싸여 있다. 이 대리는 “작년 하반기부터 ‘기승전-부동산’이라고 부를 만큼 부동산을 주제로 한 대화가 부쩍 많아졌다”며 “대부분 누가 얼마를 벌었더라는 소문을 공유한 뒤 한숨을 쉬면서 대화가 끝나곤 한다”고 말했다.
이 대리 같은 무주택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한 번의 매수가 노후까지 좌우한다”는 한탄이 나온다. 대형 리테일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는 “‘부동산 버스’를 못 타면 영영 낙오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부동산이라는 버스를 타지 못하면 근로소득을 묵묵히 모아 따라잡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는 “월급 오르는 속도보다 더 빨리 상승하는 집값을 보고 있으면, 서울에 내가 살 집은 없는 것 같다”며 “아파트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조 과장도 마찬가지다. 15년째 세입자 신분인 그는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동기를 보면 배가 아프다. 조 과장은 “만년 대리인 입사 동기가 일은 제대로 안 하고 부동산 투자에만 몰두해 놀림감이 됐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한 우리보다 자산이 두 배 가까이로 불어나 ‘승자’가 돼 있다”고 씁쓸해했다.
부동산 공부에 매달리는 직장인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직장인들은 남몰래 미소짓고 있다. 우연히 집을 사 시세차익을 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퇴근 뒤 시간을 쪼개 부동산 공부를 한 덕을 본 직장인도 있다.
완성차업체에 다니는 김 주임은 사내에서 부동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말을 아낀다. 김 주임의 부모는 서울 강남권에서 20여 년째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베테랑 투자자다. 그는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부모님 덕에 ‘갭 투자’로 강동구의 재건축 아파트를 한 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주변을 보면 그냥 살 집을 구했는데 운이 좋아 우연히 상승기를 계속 누린 사람도 많다”며 “부동산을 잘 몰라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얘기를 괜히 꺼냈다가 질투당할까 걱정돼 티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김 주임이 거둔 아파트 시세차익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 모은 돈보다 10배 이상 많다.
부동산 투자가 효과적 자산 증식을 위한 사다리로 인식되면서 투자 공부에 나선 직장인도 늘었다. 국내 한 건설사에 다니는 윤 사원은 부동산 공부를 위해 스터디 모임까지 하고 있다. 주말마다 중개업소를 돌면서 시세를 파악하곤 한다.
최근엔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윤 사원은 “부동산 투자 역시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반면 세입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이대리는 집 생각만 하면 한숨부터 쉰다. 젊은 직장인들의 대화 주제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부쩍 늘었다. 부동산 투자가 효율적 자산 증식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어서다.
지난해 1~11월 서울 아파트 매입자 중 30대가 28.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통계(한국감정원)는 젊은 직장인 사이에 불고 있는 ‘부동산 열풍’을 반영한다. 급격히 오른 집값 때문에 울고 웃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발선은 비슷했지만…
서울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문 대리는 2018년 초 결혼하면서 서울 목동의 한 소형 아파트를 샀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 건 물론이고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사우회 기금 등 동원 가능한 돈을 다 끌어모았다. 문 대리는 “매수 당시만 해도 1년 전보다 1억원이 오른 상태여서 부담이 컸다”며 “매입 후 아파트값이 2억원 이상 다시 올라 선택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이 대리는 무주택자다. 살 집을 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정부의 규제 정책이 계속 발표되는 데다 무리하게 대출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매수 타이밍을 놓쳤다. 그동안 아파트값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살고 있는 그는 “2년 전에는 작은 아파트라도 살 수 있는 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엄두도 안 난다”고 털어놨다.
같은 나이, 같은 연도에 한 회사에 입사한 문 대리와 이 대리의 출발선은 비슷했다. 단 한 번의 아파트 매수 여부가 둘의 자산 격차를 크게 벌려놓은 셈이다.
‘부동산 버스’ 낙오할까 두려워
이처럼 아파트로 돈 벌었다는 주변 동료의 사례를 들은 직장인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문 대리 이야기를 들은 팀원들은 부러움, 질투, 조급함 등 여러 감정에 휩싸여 있다. 이 대리는 “작년 하반기부터 ‘기승전-부동산’이라고 부를 만큼 부동산을 주제로 한 대화가 부쩍 많아졌다”며 “대부분 누가 얼마를 벌었더라는 소문을 공유한 뒤 한숨을 쉬면서 대화가 끝나곤 한다”고 말했다.
이 대리 같은 무주택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한 번의 매수가 노후까지 좌우한다”는 한탄이 나온다. 대형 리테일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는 “‘부동산 버스’를 못 타면 영영 낙오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부동산이라는 버스를 타지 못하면 근로소득을 묵묵히 모아 따라잡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는 “월급 오르는 속도보다 더 빨리 상승하는 집값을 보고 있으면, 서울에 내가 살 집은 없는 것 같다”며 “아파트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서울의 한 대기업에 다니는 조 과장도 마찬가지다. 15년째 세입자 신분인 그는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동기를 보면 배가 아프다. 조 과장은 “만년 대리인 입사 동기가 일은 제대로 안 하고 부동산 투자에만 몰두해 놀림감이 됐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한 우리보다 자산이 두 배 가까이로 불어나 ‘승자’가 돼 있다”고 씁쓸해했다.
부동산 공부에 매달리는 직장인
부동산 투자에 성공한 직장인들은 남몰래 미소짓고 있다. 우연히 집을 사 시세차익을 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퇴근 뒤 시간을 쪼개 부동산 공부를 한 덕을 본 직장인도 있다.
완성차업체에 다니는 김 주임은 사내에서 부동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말을 아낀다. 김 주임의 부모는 서울 강남권에서 20여 년째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베테랑 투자자다. 그는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부모님 덕에 ‘갭 투자’로 강동구의 재건축 아파트를 한 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주변을 보면 그냥 살 집을 구했는데 운이 좋아 우연히 상승기를 계속 누린 사람도 많다”며 “부동산을 잘 몰라 부끄럽기도 하고, 이런 얘기를 괜히 꺼냈다가 질투당할까 걱정돼 티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김 주임이 거둔 아파트 시세차익은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 모은 돈보다 10배 이상 많다.
부동산 투자가 효과적 자산 증식을 위한 사다리로 인식되면서 투자 공부에 나선 직장인도 늘었다. 국내 한 건설사에 다니는 윤 사원은 부동산 공부를 위해 스터디 모임까지 하고 있다. 주말마다 중개업소를 돌면서 시세를 파악하곤 한다.
최근엔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도 병행하고 있다. 윤 사원은 “부동산 투자 역시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