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리가 약속한 규제 폐지 절반도 못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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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방관…국회도 발목 잡아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해 말까지 철폐를 약속한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사회의 복지부동과 국회의 업무 태만이 원인으로 꼽힌다.
7일 국무조정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까지 정비하기로 한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45건 중 폐지된 것은 20건(44%)에 불과했다. 나머지 25건 중 17건은 소관 부처에서 손을 대지 않았고, 8건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모두 각 부처가 자발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한 규제들이다.
폐업 시 반드시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한 시행규칙을 바꾸고, 일반음식점에 하수도 관련 부담금의 신용카드 납부를 허용하는 등 정부와 국회가 의지만 있다면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아주 작은 규제지만 소상공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소상공인 호소에도
'규제폐지' 손놓은 부처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며 업계와 소통을 강화해 현장의 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한 부처 장·차관들에게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정부는 당시 2022년까지 총 140건의 규제를 철폐하기로 약속했다. 이 가운데 45건의 규제는 지난해 말까지 정비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25건(55.5%)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등 규제 정비에 소극적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까지 총 일곱 건의 규제를 철폐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건만 손을 댔고, 나머지 여섯 건은 그대로 남겨놨다. 국토부가 처리한 규제는 무인자동화공장에 대한 부설주차장 의무 규정 완화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협조 공문을 보내 비교적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국토부는 이외에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개정해야 하는 규제 완화에는 소극적이었다.
예약서비스를 제공하는 택시업체가 가맹사업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호출수신설비 등의 통신설비를 갖춰야 하는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토부는 앱(응용프로그램) 등 대체 가능한 설비가 있다면 이를 면제하거나 완화하도록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정비하기로 했지만 손대지 않았다. 해외 건설업자가 해외 사업의 시공 상황, 수주 활동, 계약 체결 등을 매년 최소 일곱 번 보고하도록 한 해외건설촉진법 시행령도 그대로 남겨놨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업계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른 정부 부처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휴면카드 자동해지 폐지(금융위원회), 의료기관 상호·명칭 제한 완화(보건복지부) 등도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국무조정실은 파악하고 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아무리 위에서 규제개혁을 하라고 해도 관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라며 “규제를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자기들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당초 예정된 규제 정비 여섯 건을 모두 끝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매장에서 축산물 판매 외에 다른 업종을 동시에 영업할 때 벽이나 층으로 분리하거나 칸막이가 있어야 하는 규제도 지난해 말 사라졌다. 식약처는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고쳐 위생 관리에 지장이 없는 업종은 분리시설 없이 영업이 가능토록 허용했다. 분말을 압축한 알약(정제) 형태를 물에 타서 마시는 음료의 제조도 식약처 조치로 합법화됐다.
국회도 비협조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규제가 폐지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현재 관광진흥법상 실내놀이터 같은 유원시설업종은 폐업할 때 지자체와 세무서 두 곳에 폐업신고를 해야 한다. 둘 중 한 곳에 폐업신고를 하도록 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의원 입법으로 발의됐지만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광물과 모래 채취 현장관리 담당자의 중복 교육 부담을 해소하는 내용의 산지관리법 개정안 역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하면 연간 1600만원의 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산림청은 보고 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소상공인이 존중받는 정책 환경 조성을 위해 다가오는 총선에서 이를 명확히 요구할 것”이라며 “소상공인의 생존이 걸린 필수 사안 해결에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미현/성상훈 기자 mwise@hankyung.com
7일 국무조정실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까지 정비하기로 한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45건 중 폐지된 것은 20건(44%)에 불과했다. 나머지 25건 중 17건은 소관 부처에서 손을 대지 않았고, 8건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모두 각 부처가 자발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한 규제들이다.
폐업 시 반드시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한 시행규칙을 바꾸고, 일반음식점에 하수도 관련 부담금의 신용카드 납부를 허용하는 등 정부와 국회가 의지만 있다면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아주 작은 규제지만 소상공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했다.소상공인 호소에도
'규제폐지' 손놓은 부처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며 업계와 소통을 강화해 현장의 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지난해 10월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한 부처 장·차관들에게 강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규제 혁신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정부는 당시 2022년까지 총 140건의 규제를 철폐하기로 약속했다. 이 가운데 45건의 규제는 지난해 말까지 정비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25건(55.5%)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등 규제 정비에 소극적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까지 총 일곱 건의 규제를 철폐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 건만 손을 댔고, 나머지 여섯 건은 그대로 남겨놨다. 국토부가 처리한 규제는 무인자동화공장에 대한 부설주차장 의무 규정 완화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협조 공문을 보내 비교적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국토부는 이외에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을 개정해야 하는 규제 완화에는 소극적이었다.
예약서비스를 제공하는 택시업체가 가맹사업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호출수신설비 등의 통신설비를 갖춰야 하는 규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국토부는 앱(응용프로그램) 등 대체 가능한 설비가 있다면 이를 면제하거나 완화하도록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을 정비하기로 했지만 손대지 않았다. 해외 건설업자가 해외 사업의 시공 상황, 수주 활동, 계약 체결 등을 매년 최소 일곱 번 보고하도록 한 해외건설촉진법 시행령도 그대로 남겨놨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 업계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다른 정부 부처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휴면카드 자동해지 폐지(금융위원회), 의료기관 상호·명칭 제한 완화(보건복지부) 등도 개정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국무조정실은 파악하고 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아무리 위에서 규제개혁을 하라고 해도 관료들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라며 “규제를 유지하는 게 장기적으로 자기들의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당초 예정된 규제 정비 여섯 건을 모두 끝마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매장에서 축산물 판매 외에 다른 업종을 동시에 영업할 때 벽이나 층으로 분리하거나 칸막이가 있어야 하는 규제도 지난해 말 사라졌다. 식약처는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고쳐 위생 관리에 지장이 없는 업종은 분리시설 없이 영업이 가능토록 허용했다. 분말을 압축한 알약(정제) 형태를 물에 타서 마시는 음료의 제조도 식약처 조치로 합법화됐다.
국회도 비협조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규제가 폐지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현재 관광진흥법상 실내놀이터 같은 유원시설업종은 폐업할 때 지자체와 세무서 두 곳에 폐업신고를 해야 한다. 둘 중 한 곳에 폐업신고를 하도록 한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의원 입법으로 발의됐지만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광물과 모래 채취 현장관리 담당자의 중복 교육 부담을 해소하는 내용의 산지관리법 개정안 역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이 통과하면 연간 1600만원의 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산림청은 보고 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소상공인이 존중받는 정책 환경 조성을 위해 다가오는 총선에서 이를 명확히 요구할 것”이라며 “소상공인의 생존이 걸린 필수 사안 해결에 정부와 국회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미현/성상훈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