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이 베일을 벗은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사우스홀. 입구에 들어서자 낯선 탁구 경기 한 판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준급 탁구 실력을 갖춘 직원과 열띤 경기를 하고 있는 상대는 인공지능(AI) 탁구 코치 로봇 ‘포르페우스’. 로봇은 상단에 달린 카메라 두 대로 공이 오는 코스와 속도를 초당 80회 측정해 공의 낙하지점을 예측하고 정확하게 받아쳤다.
< AI 로봇이 탁구 코치… > 일본 오므론이 공개한 탁구 코칭 로봇 ‘포르페우스’.
< AI 로봇이 탁구 코치… > 일본 오므론이 공개한 탁구 코칭 로봇 ‘포르페우스’.
로봇은 단순히 공만 받아치지 않았다. AI는 경기를 진행하면서 상대의 표정, 신체 움직임, 공의 궤도 등을 분석했다. 난이도도 조절했다. 초보자에게는 받아치기 쉬운 지점에, 상급자에게는 받아치기 어려운 지점을 겨냥해 공을 되돌려 보냈다. 제품을 개발한 일본 오므론의 나이절 블레이크웨이 이사는 “기술이 인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포르페우스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인간 넘어서는 로봇

올해 CES 2020에 마련된 AI·로보틱스관의 주인공은 일본과 중국 업체들이었다.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 수준으로 진화한 AI를 장착한 로봇을 대거 선보이면서다.
< 병따개로 콜라 따서 잔에 따르고… > 중국 유비테크가 선보인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워커’.
< 병따개로 콜라 따서 잔에 따르고… > 중국 유비테크가 선보인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워커’.
눈길을 끈 또 다른 주인공은 중국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 유비테크가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워커’였다. 키 145㎝, 몸무게 77㎏인 워커는 36개의 고성능 관절(액추에이터: 동력을 이용해 기계를 동작시키는 구동 장치)을 갖고 있다. 주인이 “콜라 한 잔 가져다줄래?”라고 말하자 워커는 식탁으로 가 병따개로 콜라병 뚜껑을 따고, 유리잔에 콜라를 따른 뒤 주인에게 이를 전해줬다. 얼굴에 달린 카메라로 인식한 정보를 분석해 콜라병과 병따개, 유리잔을 구분해낸 것이다. 손가락 관절을 자유자재로 쓰기 때문에 물건을 집었다가 놓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책상 위 종이에다 장미꽃을 그려 선물하는가 하면,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균형을 잡고 요가 시범까지 보이자 관람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 알약도 척척 분류 > 일본 화낙이 선보인 알약 분류 로봇.  /고재연 기자
< 알약도 척척 분류 > 일본 화낙이 선보인 알약 분류 로봇. /고재연 기자
일본 화낙은 작업 현장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다양한 협동 로봇을 선보였다. 이목을 끈 제품은 ‘알약 담기 로봇’이었다. 현장에는 흰색 알약과 빨간 알약이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이를 작은 유리병 두 개에 색깔별로 담는 ‘미션’이 준비돼 있었다. 관람객과 로봇의 대결은 대부분 로봇의 승리로 끝났다. 빠른 일 처리는 물론 정확도도 100%를 자랑했다.

한국 업체들도 선보였지만…

국내 전자업체들은 중국과 일본 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번 CES에서도 중국 하이얼은 LG 스타일러를 모방해 제작한 ‘의류 관리 수납장’을, 중국 하이센스와 창훙은 삼성전자 라이프스타일 TV ‘더 세로’를 베껴 만든 세로로 움직이는 TV를 선보였다.

하지만 로봇 분야에서 한국은 철저히 후발주자였다. 삼성전자, LG전자, 두산로보틱스 등 국내 업체들이 로봇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제품을 전시했지만 일본은 물론 중국 업체들과 비교해 아직 ‘걸음마’ 수준이었다. 쿠킹 로봇이 소스를 들어 올려 뿌려주긴 했지만 정해진 곳에 놓인 특정 소스일 뿐 여러 소스 중 원하는 제품을 찾아 뿌리는 건 아니었다.

라스베이거스=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