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한때 5% ↑…트럼프 "괜찮다" 반응후 진정
경제 전문가들 "전면전 땐 유가 배럴당 150弗 갈수도"
시장은 여전히 긴장상태…"불확실성 사라지지 않아"
이날 국제 유가 움직임은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줬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다는 속보가 뜨자마자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가 꿈틀댔다. 전날 배럴당 62.7달러였던 2월물 WTI 가격은 이날 장 초반 4.7% 급등한 65.65달러까지 치솟았다. 이어 개장한 런던석유거래소(ICE)의 브렌트유 3월물은 5.1% 뛰어오르며 배럴당 71.75달러를 찍었다. WTI는 작년 4월 이후, 브렌트유는 작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급등하던 유가는 이란의 공격 3시간쯤 뒤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상자와 피해를 평가하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매우 좋다”고 밝히면서다. 한국 시간 오후 4시 현재 WTI와 브렌트유 상승률은 모두 1% 안팎으로 둔화됐다.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존 길더프 어게인캐피털 연구원은 “석유(시장)는 이제 미국의 사상자 발표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상자가 생기고 미국이 그에 반응하면 WTI 가격은 하루 만에 손쉽게 배럴당 70달러를 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변수는 미국의 이후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이 보복하면 ‘신속하고 완전하고 불균형적인 반격’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이란의 보복보다 훨씬 센 강도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중동에 B-52 전략폭격기를 추가로 투입하고 병력도 대폭 증원하고 있다. 이란도 미국이 보복하면 재보복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캐나다 투자은행 TD시큐리티즈는 “시장은 긴장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의 반응과 확전 여부에 많은 것이 달렸다”고 내다봤다.
경제 전문가들은 미·이란 전쟁이 터지면 세계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경제컨설팅 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양측이 전쟁을 벌일 경우 세계총생산이 0.5%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진정되자마자 미·이란 갈등이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최대 악재로 부상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이 세계총생산 감소에 미친 효과를 0.8%로 추산했다.
이란은 미국과 전쟁이 벌어지면 즉각 호르무즈해협을 봉쇄할 가능성이 높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최대 원유 수출로다. 하루 원유 수송량은 1700만 배럴로 세계 원유의 30%를 차지한다. 미국의 제재로 이란산 원유 수출은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다른 산유국의 원유 수출길은 상당 부분 막힌다. 이 때문에 호르무즈해협이 막히면 유가 급등은 불보듯 뻔하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중동에서 전면전이 발생하면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1970~1980년대 1, 2차 오일쇼크에 이어 세계 경제가 3차 오일쇼크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란이 실제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나설 가능성은 현재로선 작다. 호르무즈해협의 제해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이란의 해협 봉쇄를 좌시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의 미국 동맹들과 한국, 일본은 물론 그동안 이란에 우호적이던 중국도 원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이란에 등을 돌릴 수 있다. 이란으로선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정권의 명운을 건 도박인 셈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