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청사에서 8일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정부서울청사에서 8일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충남 논산시는 시내에 도서관 문화센터 주차장 등을 대폭 확충하는 프로젝트를 최근 시작했다. 작년 말 중앙정부에서 국비 144억원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올초 시작된 이 같은 ‘생활형 사회간접자본(SOC) 복합화 사업’은 전국 172개 시·군·구에서 289건이나 된다. 여기에 들어가는 세금은 총 8164억원이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1분기에 재정을 대거 풀고 관련 사업 집행을 서두르는 등 오는 4월 총선에 사실상 ‘올인’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경제 활성화 예산의 절반을 총선 이전에 조기 집행한다는 계획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반기엔 ‘재정절벽’이 닥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총선용 퍼주기' 예산 1분기에 몰아…하반기 '재정절벽' 불가피
국정 시계는 4월 15일로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국무총리와 청와대 참모들이 줄줄이 총선 출사표를 던지며 관복을 벗고 있다. 청와대에선 비서관급 이상 20여 명, 행정관급 30여 명이 ‘국회의원 배지’에 도전할 계획이다. 국민연금공단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도로공사 등의 수장 자리도 공석이 됐다. 출마를 선언한 단체장이 잇따라 현직에서 사퇴해서다. 상당 기간 국정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상이다.

정부가 올해 책정된 재정집행 관리대상 예산(305조5000억원)의 62%를 상반기 집행하기로 한 점도 총선을 의식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기 집행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일자리·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예산의 절반은 1분기에 서둘러 집행하기로 했다. 건설 등 자금 투입 효과가 즉각적인 SOC 사업은 기획재정부가 매달 재정관리점검회의를 열어 집행 실적을 점검하기로 했다.

관련 예산 중 상당액이 총선 전인 1~3월에 집중되면 나머지 예산으로 9개월을 버텨야 한다는 계산이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복지와 SOC 예산 집행을 너무 서둘러 비적격 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다”며 “하반기 경기가 악화하면 대응 수단도 마땅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이 갑자기 122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밝히면서 신년 계획을 세워둔 공기업들은 당황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토연구원을 겨냥해 “총선 전 공공기관의 2차 이전 연구용역 결과를 내놓으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 이전은 공공기관의 경쟁력 저하, 지방자치단체별 나눠먹기 등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지역 표심을 잡는 데는 유리하다. 야당 역시 이런 이유로 반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하반기 재정절벽 불 보듯”

미국과 이란 간 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는 등 국내외 악재가 산적한 가운데 총선 이후엔 여러 후유증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많다. 무엇보다 전기요금 등 그동안 억눌러온 공공요금 인상안이 대기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총선 이후인 7월부터 전기자동차 특례요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할 방침이다. 전통시장 도·소매 상인에게 월 5.9% 깎아줬던 전기요금도 같은 달부터 없애기로 했다. 당초 올초부터 일괄 폐지할 방침이었으나 여당 등의 요청으로 시행 시기를 6개월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별도로 하반기부터 모든 전기요금을 3~5%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재정 부담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자체마다 여러 명목의 수당을 신설하는 등 ‘퍼주기 경쟁’이 가시화하고 있어서다. 경기 여주시는 10일부터 농민수당 신청을 받는다. 농업인으로 확인되면 매년 60만원을 지급한다. 전남·전북·충남·충북 등도 비슷한 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 및 지자체에서 기초연금 청년적금 등 현금을 받는 국민은 1200만 명에 달한다. 한 번 늘린 복지는 축소하는 게 어렵다는 점에서 미래 세대에 큰 짐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직성 복지 지출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게 문제”라며 “선거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국가 부채의 증가 속도를 그 누구도 제어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