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디테일이 아쉬운 스마트시티 정책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내놓은 새해 구상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스마트시티’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도시를 똑똑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에너지 절감과 관련한 기대가 크다. IoT 기술을 적절히 활용하면 도시 전체의 냉난방 효율을 높이고, 불필요한 전기 소비도 줄일 수 있다는 게 지자체들의 설명이다.

스마트시티는 문재인 정부의 8대 선도 사업이기도 하다. 이미 세종시(세종 5-1 생활권)와 부산(에코델타시티)에서 국가 시범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됐다. 시범지구에 포함되지 않은 지자체들도 스마트시티 구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 스마트시티를 주제로 한 전시관을 만들었을 만큼 이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쏟아지고 있는 새로운 기술을 도시 곳곳에 접목해 사람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총론은 틀린 게 없다. 하지만 스마트시티로 가기 위한 디딤돌을 제대로 놓고 있는지를 따지다 보면 비어 있는 곳이 눈에 띈다.

스마트시티는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이지만 앞 단계에 해당하는 스마트빌딩은 이미 도시 곳곳에 들어서 있다. 건물 에너지 관리시스템(BEMS)을 비롯한 자동제어 시스템을 활용하는 게 핵심이다. IoT 등의 기술을 활용해 건물을 최적의 상태로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스마트빌딩을 제대로 운용하면 건물에 소요되는 에너지를 30% 이상 줄일 수 있다. 스마트빌딩들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하고 여기에 도로 등의 신호 체계를 더하면 스마트시티로 확장할 수 있다.

스마트빌딩의 확산 속도는 기대에 못 미친다. 지자체 청사나 대기업 사옥 등 일부 랜드마크 건물을 빼면 스마트빌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건물주로선 BEMS와 같은 고가의 장비를 들여올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에너지 절약=친환경 에너지 생산’이란 개념을 정립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해외에서는 스마트빌딩 등을 통한 에너지 절약을 ‘네가와트(negawatt) 발전’으로 부른다. 발전소를 가동하지 않고도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스마트빌딩을 통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건물주나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도시가 늘고 있는 배경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부 보조금 대부분이 순수한 발전에만 돌아간다. 태양광 발전에 들어가는 세금만 연간 1조원 이상이다.

스마트빌딩을 만들어 놓고도 100%의 효용을 누리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빌딩에 상주하는 엔지니어들이 스마트빌딩에 들어가는 융복합 기술을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일이다. 엔지니어 대부분이 기계나 전기설비, 정보통신 등 한 가지 분야에만 특화돼 있다. 기술 자격증을 분야별로 나눠 발급하는 탓에 여러 분야를 두루 아는 인재가 드물다는 설명이다. 현재 기계설비는 건설교통부, 전기설비는 산업통상자원부, 정보통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자격증을 관할한다.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융복합 기술 자격증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부처 간 입장차가 커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시티는 100년 앞을 내다보고 진행해야 하는 대공사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임기 내에 치적을 쌓는 데 급급해 디테일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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