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출생신고도 안된 산골소녀, 배움으로 새 세상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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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 김희정 옮김
열린책들 / 520쪽 / 1만8000원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 김희정 옮김
열린책들 / 520쪽 / 1만8000원
“저 아래 국도를 지나가는 통학버스는 우리 집 근처에서는 멈추지 않고 쌩 달린다. 나는 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바로 이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 가족을 다른 가족과 다르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1986년 미국 아이다호 벅스피크의 산자락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타라 웨스트오버가 또렷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이다. 타라네 일곱 남매 중 네 명은 출생증명서가 없다. 타라의 부모, 특히 아버지는 공교육과 의료제도 등 국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타라의 엄마는 아이를 모두 집에서 출산했다. 그런 까닭에 의료 기록도, 학적부도 없다. 타라는 아홉 살 때 사후 출생증명서를 받게 되지만, 아이다호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
《배움의 발견》은 타라가 32세에 발표한 첫 저술이자 회고록이다. 벅스피크에서의 유년 시절부터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남다른 배움의 여정을 다룬 이 책은 2018년 출간되자마자 미국 출판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부상했다.
타라의 아버지는 ‘모르몬교’로 알려진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의 근본주의자였다.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그는 주류사회와 담을 쌓은 채 산골에서 종말의 그때에 대비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고철을 모으고 자르는 일을 해야 했다. 병원을 기피하는 산모의 출산을 돕는 산파이자 동종요법(同種療法) 치유사인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끓이고 복숭아 병조림도 만들었다.
부모들이 겉으로는 홈스쿨링을 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읽고 쓰는 것을 겨우 배운 정도였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또래 친구도 없었고, 드넓은 세상을 모른 채 오직 벅스피크만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았다. 폐쇄적인 생활이라 가족 간의 은밀한 학대가 이어졌고, 일을 하다 크게 다쳐도 병원행을 거부당한 채 엄마가 만든 자연약초로만 치료해야 했다.
숨이 막히는 고립생활의 고리를 먼저 끊은 이는 셋째 오빠 타일러였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 말을 더듬었지만 아버지를 도와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마침내 타일러는 대학에 가겠다며 집을 떠났고, 타라는 학교라는 곳이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악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타일러의 지지 속에 타라는 16세 때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대입자격시험(ACT)에 필요한 과목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후기성도교회에서 운영하는 유타주의 브리검영대에 기적적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기초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타라에겐 모든 것이 생소했다.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역사적 인물이고 가공의 인물인지도 몰랐으니까. 홀로코스트란 말도 처음 접했다. 타라는 삼중고, 사중고를 겪으며 공부해야 했다. 남다른 가족사를 숨겨야 했고, 기초가 전혀 없이 대학 강의를 듣고 시험을 봐야 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고, 아버지가 세워놓은 성벽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갈등해야 했다.
“매일밤 새벽 2~3시까지 공부했다. 신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치러야 할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낙제를 걱정했던 첫 학기 성적은 서양예술사만 빼고는 ‘올A’였다. 반액장학금까지 주어졌다.
뜻밖의 지원군도 잇달아 등장했다. 브리검영대의 비숍은 정부의 학비보조금을 받도록 해줬고, 유대인의 역사를 강의하는 케리 교수는 케임브리지대 교환학생으로 타라를 추천했다. 스타인버그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하버드든 케임브리지든 대학원에 진학하라며 등록금도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렇게 타라를 응원했다.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나가든, 그것은 학생의 본 모습이에요. 늘 자기 안에 존재했던 본질적인 모습. 케임브리지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 안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학생은 순금이에요.”
타라는 결국 빌 게이츠가 출연한 게이츠 케임브리지 장학금을 받게 되고 브리검영대의 스타가 됐다. 이 대학 역사상 게이츠 장학금을 탄 세 번째 학생이었던 것. 케임브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타라는 하버드대 방문연구원을 거쳐 2014년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를 위해 새로운 역사를 썼다.…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1986년 미국 아이다호 벅스피크의 산자락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타라 웨스트오버가 또렷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이다. 타라네 일곱 남매 중 네 명은 출생증명서가 없다. 타라의 부모, 특히 아버지는 공교육과 의료제도 등 국가에 대한 불신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타라의 엄마는 아이를 모두 집에서 출산했다. 그런 까닭에 의료 기록도, 학적부도 없다. 타라는 아홉 살 때 사후 출생증명서를 받게 되지만, 아이다호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기록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였다.
《배움의 발견》은 타라가 32세에 발표한 첫 저술이자 회고록이다. 벅스피크에서의 유년 시절부터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남다른 배움의 여정을 다룬 이 책은 2018년 출간되자마자 미국 출판계 최고의 화제작으로 부상했다.
타라의 아버지는 ‘모르몬교’로 알려진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회의 근본주의자였다.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믿는 그는 주류사회와 담을 쌓은 채 산골에서 종말의 그때에 대비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아버지의 폐철 처리장에서 고철을 모으고 자르는 일을 해야 했다. 병원을 기피하는 산모의 출산을 돕는 산파이자 동종요법(同種療法) 치유사인 어머니를 도와 약초를 끓이고 복숭아 병조림도 만들었다.
부모들이 겉으로는 홈스쿨링을 한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읽고 쓰는 것을 겨우 배운 정도였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또래 친구도 없었고, 드넓은 세상을 모른 채 오직 벅스피크만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았다. 폐쇄적인 생활이라 가족 간의 은밀한 학대가 이어졌고, 일을 하다 크게 다쳐도 병원행을 거부당한 채 엄마가 만든 자연약초로만 치료해야 했다.
숨이 막히는 고립생활의 고리를 먼저 끊은 이는 셋째 오빠 타일러였다.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 말을 더듬었지만 아버지를 도와 일하는 틈틈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마침내 타일러는 대학에 가겠다며 집을 떠났고, 타라는 학교라는 곳이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악한 곳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집 바깥의 세상은 넓어, 타라. 아버지가 자기 눈으로 보는 세상을 네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을 더 이상 듣지 않기 시작하면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일 거야.”
타일러의 지지 속에 타라는 16세 때 대학 진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대입자격시험(ACT)에 필요한 과목을 독학으로 공부했고, 후기성도교회에서 운영하는 유타주의 브리검영대에 기적적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기초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은 타라에겐 모든 것이 생소했다.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역사적 인물이고 가공의 인물인지도 몰랐으니까. 홀로코스트란 말도 처음 접했다. 타라는 삼중고, 사중고를 겪으며 공부해야 했다. 남다른 가족사를 숨겨야 했고, 기초가 전혀 없이 대학 강의를 듣고 시험을 봐야 했다.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고, 아버지가 세워놓은 성벽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갈등해야 했다.
“매일밤 새벽 2~3시까지 공부했다. 신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치러야 할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낙제를 걱정했던 첫 학기 성적은 서양예술사만 빼고는 ‘올A’였다. 반액장학금까지 주어졌다.
뜻밖의 지원군도 잇달아 등장했다. 브리검영대의 비숍은 정부의 학비보조금을 받도록 해줬고, 유대인의 역사를 강의하는 케리 교수는 케임브리지대 교환학생으로 타라를 추천했다. 스타인버그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하버드든 케임브리지든 대학원에 진학하라며 등록금도 해결해주겠다고 했다.
스타인버그 교수는 이렇게 타라를 응원했다. “학생이 어떤 사람이 되든,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나가든, 그것은 학생의 본 모습이에요. 늘 자기 안에 존재했던 본질적인 모습. 케임브리지여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 안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학생은 순금이에요.”
타라는 결국 빌 게이츠가 출연한 게이츠 케임브리지 장학금을 받게 되고 브리검영대의 스타가 됐다. 이 대학 역사상 게이츠 장학금을 탄 세 번째 학생이었던 것. 케임브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타라는 하버드대 방문연구원을 거쳐 2014년 케임브리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해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를 위해 새로운 역사를 썼다.…과거는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대단치 않은 유령에 불과했다. 무게를 지닌 것은 미래뿐이었다.” “누가 역사를 쓰는가. 나는 ‘바로 나’라고 생각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