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OTRA, 직무급제 전격 도입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노사 합의안 79%가 찬성
50년 이상 된 호봉제 폐지
50년 이상 된 호봉제 폐지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50년 넘게 유지해온 호봉제를 폐기하고 업무 난이도에 따라 급여를 달리하는 직무급제를 전격 도입한다. 임직원 1000명이 넘는 공공기관이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건 KOTRA가 처음이다.
9일 정부와 무역업계에 따르면 KOTRA 노조는 최근 노사 합의로 내놓은 ‘호봉제 폐지 및 직무급제 도입’ 안건을 79% 찬성률로 가결했다. KOTRA는 이달 말 이사회를 열어 급여체계 변경을 의결한 뒤 상반기 시행하기로 했다. KOTRA 노사는 1962년 설립 이후 유지해온 호봉제(1~40호봉)를 폐지하고 임원 비서직 등 일부를 제외한 전 직원의 업무를 일의 난이도, 중요성, 책임 범위 등을 기준으로 4개로 나눴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업의 지원 요청이 많은 무역관 근무자는 높은 등급을, ‘한직’은 낮은 등급을 적용하는 식으로 각각의 업무에 ‘자리값’을 매겼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직무급제에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 상당수 공공기관이 연내 직무급제를 추가로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연공서열 없앤 KOTRA "같은 부장도 업무 따라 성과급 최대 2배差"
몸담고 있는 회사를 ‘열심히 일하는 조직’으로 바꾸는 건 모든 최고경영자(CEO)가 안고 있는 숙제다.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CEO가 제시할 수 있는 ‘당근’은 둘 중 하나.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돈을 더 주거나 승진을 시키는 것이다. 상당수 민간기업은 이런 성과보상 시스템을 운영하지만 공공기관에선 드물다. 연공서열식 호봉제 임금체계 탓에 일 잘하는 사람만 ‘콕’ 집어 돈을 더 주거나 승진시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철밥통’이란 오명이 붙게 된 배경이다. KOTRA 직원들은 열심히 일할 동기를 없애는 낡은 시스템을 갈아엎기로 했다. ‘사업 파트너’인 중소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제대로 도우려면 그에 걸맞은 성과보상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고참 직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호봉제에 대한 젊은 직원들의 거부감이 커지고 있는 만큼 KOTRA에서 시작된 호봉제 폐지가 공공기관 전반에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공기관에 확산되는 직무급제
KOTRA가 도입한 신급여 시스템의 핵심은 월급을 결정하는 키워드를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느냐’로 바꿨다는 것이다. 기존 호봉제(1~40호봉)에선 이른바 ‘한직’에서만 일해도 호봉이 차곡차곡 쌓이면 본부장 못지않은 월급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업무의 난이도와 중요성, 책임범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위해 KOTRA 노사는 1년에 걸쳐 모든 직원이 하는 업무를 분석한 뒤 각각 점수를 매겼다. 이를 토대로 직무를 4개로 분류했다.
직무에 따라 급여의 25%를 차지하는 성과급이 달라진다. 새로 뚫어야 하는 시장이면서 국내 중소기업의 지원 요청이 많고 챙겨야 할 임직원 수도 많은 해외무역관의 관장 자리에 더 많은 성과급을 주는 식이다. 성과급은 실적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같은 직무 내에서 부장급 이상 간부직 사원의 성과급 격차는 최대 두 배까지 벌어지도록 했다. 나머지 75%인 기본급은 1년차부터 16년차까지 오르다가 이후부터 같은 수준으로 유지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직장생활의 중요한 가치로 꼽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직무급 도입에 도움이 됐다”며 “돈을 더 받되 일에 치이는 핵심보직에서 일할지, 돈을 덜 받되 편한 일을 할지를 각자 성향에 맞게 고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본격 확산될 것” VS “한계 있다”
KOTRA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면서 ①1000명이 넘는 대형 공공기관 중 최초 ②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공공기관 가운데 최초 ③설립한 지 40년 넘은 전통의 공공기관 중 최초란 세 가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그만큼 나머지 330여 개 공공기관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지난해 직무급제를 도입한 4개 공공기관은 임직원 규모(새만금개발공사 77명)가 작거나 설립(산림복지진흥원 2016년)한 지 얼마 안돼 호봉에 따른 임금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KOTRA는 조직 인지도나 연혁(1962년 설립), 직원 규모(1253명) 등을 감안할 때 ‘급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재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확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기재부는 작년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할 때부터 직무급 도입 여부를 반영하기로 했다. 각 공공기관의 성과급 규모가 이 평가 결과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각 기관 임직원도 신경쓸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사이에선 올해 10여 개 업체가 추가로 직무급제를 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40여 개 기관이 직무급제 도입의 첫 단계인 직무평가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한국전력 등 대형 공공기관 노조는 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상급 단체와 손발을 맞춰 직무급제 도입에 강력 반대하고 있어서다.
오상헌/박상용 기자 ohyeah@hankyung.com
9일 정부와 무역업계에 따르면 KOTRA 노조는 최근 노사 합의로 내놓은 ‘호봉제 폐지 및 직무급제 도입’ 안건을 79% 찬성률로 가결했다. KOTRA는 이달 말 이사회를 열어 급여체계 변경을 의결한 뒤 상반기 시행하기로 했다. KOTRA 노사는 1962년 설립 이후 유지해온 호봉제(1~40호봉)를 폐지하고 임원 비서직 등 일부를 제외한 전 직원의 업무를 일의 난이도, 중요성, 책임 범위 등을 기준으로 4개로 나눴다.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업의 지원 요청이 많은 무역관 근무자는 높은 등급을, ‘한직’은 낮은 등급을 적용하는 식으로 각각의 업무에 ‘자리값’을 매겼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직무급제에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있는 상당수 공공기관이 연내 직무급제를 추가로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연공서열 없앤 KOTRA "같은 부장도 업무 따라 성과급 최대 2배差"
몸담고 있는 회사를 ‘열심히 일하는 조직’으로 바꾸는 건 모든 최고경영자(CEO)가 안고 있는 숙제다.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CEO가 제시할 수 있는 ‘당근’은 둘 중 하나.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돈을 더 주거나 승진을 시키는 것이다. 상당수 민간기업은 이런 성과보상 시스템을 운영하지만 공공기관에선 드물다. 연공서열식 호봉제 임금체계 탓에 일 잘하는 사람만 ‘콕’ 집어 돈을 더 주거나 승진시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철밥통’이란 오명이 붙게 된 배경이다. KOTRA 직원들은 열심히 일할 동기를 없애는 낡은 시스템을 갈아엎기로 했다. ‘사업 파트너’인 중소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을 제대로 도우려면 그에 걸맞은 성과보상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고참 직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호봉제에 대한 젊은 직원들의 거부감이 커지고 있는 만큼 KOTRA에서 시작된 호봉제 폐지가 공공기관 전반에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공기관에 확산되는 직무급제
KOTRA가 도입한 신급여 시스템의 핵심은 월급을 결정하는 키워드를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느냐’로 바꿨다는 것이다. 기존 호봉제(1~40호봉)에선 이른바 ‘한직’에서만 일해도 호봉이 차곡차곡 쌓이면 본부장 못지않은 월급을 받았지만 앞으로는 업무의 난이도와 중요성, 책임범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 위해 KOTRA 노사는 1년에 걸쳐 모든 직원이 하는 업무를 분석한 뒤 각각 점수를 매겼다. 이를 토대로 직무를 4개로 분류했다.
직무에 따라 급여의 25%를 차지하는 성과급이 달라진다. 새로 뚫어야 하는 시장이면서 국내 중소기업의 지원 요청이 많고 챙겨야 할 임직원 수도 많은 해외무역관의 관장 자리에 더 많은 성과급을 주는 식이다. 성과급은 실적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같은 직무 내에서 부장급 이상 간부직 사원의 성과급 격차는 최대 두 배까지 벌어지도록 했다. 나머지 75%인 기본급은 1년차부터 16년차까지 오르다가 이후부터 같은 수준으로 유지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직장생활의 중요한 가치로 꼽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직무급 도입에 도움이 됐다”며 “돈을 더 받되 일에 치이는 핵심보직에서 일할지, 돈을 덜 받되 편한 일을 할지를 각자 성향에 맞게 고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본격 확산될 것” VS “한계 있다”
KOTRA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면서 ①1000명이 넘는 대형 공공기관 중 최초 ②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공공기관 가운데 최초 ③설립한 지 40년 넘은 전통의 공공기관 중 최초란 세 가지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그만큼 나머지 330여 개 공공기관에 미치는 파급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지난해 직무급제를 도입한 4개 공공기관은 임직원 규모(새만금개발공사 77명)가 작거나 설립(산림복지진흥원 2016년)한 지 얼마 안돼 호봉에 따른 임금 차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KOTRA는 조직 인지도나 연혁(1962년 설립), 직원 규모(1253명) 등을 감안할 때 ‘급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재부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직무급제 도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확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기재부는 작년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할 때부터 직무급 도입 여부를 반영하기로 했다. 각 공공기관의 성과급 규모가 이 평가 결과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각 기관 임직원도 신경쓸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사이에선 올해 10여 개 업체가 추가로 직무급제를 도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40여 개 기관이 직무급제 도입의 첫 단계인 직무평가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많다. 한국전력 등 대형 공공기관 노조는 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상급 단체와 손발을 맞춰 직무급제 도입에 강력 반대하고 있어서다.
오상헌/박상용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