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혐의와 흡사한 구조…대법원, '인사 재량권' 넓게 판단
일각서는 검찰 고위직 인사와 연결 짓기도
'안태근 직권남용 무죄 확정'…양승태 등 관련사건 영향줄 듯
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한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판단을 내림에 따라 비슷한 유형의 다른 사건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안 전 검사장의 서 검사에 대한 인사 배치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안 전 검사장이 검찰 인사 실무를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서 검사에 대해 원칙에 어긋난 인사배치를 하도록 인사 실무 담당 검사에게 지시함으로써 직권을 남용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검사 인사권자는 법령의 제한을 벗어나지 않는 한 여러 사정을 참작해 전보인사의 내용을 결정해야 하고, 상당한 재량을 갖는다"며 "인사 실무 담당자도 그 범위에서 일정한 권한과 역할이 부여돼 재량을 갖는다"고 밝혔다.

이어 검사 인사 원칙 중 하나인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를 서 검사가 적용받지 못한 것은 맞지만, 인사의 다양한 고려사항 중 하나일 뿐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고 봤다.

따라서 서 검사에 대한 인사발령은 '검사 전보인사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 아니며, 안 전 검사장이 실무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판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건에도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이 기소된 내용 가운데에는 대법원에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낸 판사들을 희망하지 않은 근무지에 배치하는 등 불이익한 인사를 하도록 담당 심의관에게 지시했다는 혐의가 있다.

안 전 검사장의 혐의와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실제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구속영장 심사에서 안 전 검사장을 비교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단은 그간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혐의를 부인하면서 내놓은 논리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해당 판사들에 대한 인사는 대법원장의 인사권 재량 범위 내에서 이뤄진 일로, 원칙을 벗어나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일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옛 인사 담당 심의관이 "법관의 직(職)은 그 보직이나 지역과 상관없이 모두 같으므로, 희망과 다른 보직·임지가 주어졌다고 해서 '불리한 처분'이라 보기 어렵다"고 증언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안태근 직권남용 무죄 확정'…양승태 등 관련사건 영향줄 듯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대로 서지현 검사를 통영지청에 배치하지 않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면, 법관에 대해서도 배치 기준은 여러 원칙 중 하나일 뿐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안 전 검사장의 경우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덮겠다는 '개인적 이익'이 목적이었다면,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는 어쨌든 사법행정권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공적 목적'이 배경에 있다는 점에서도 다른 평가를 받을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이번 사건 판결문을 분석해 변론에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권자의 권한 행사와 관련된 직권남용 사건으로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기소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도 있다.

이 사건은 김 전 장관 등이 앞선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해 받아냈다는 내용이다.

아직 본격적인 심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향후 재판 과정에서 마찬가지로 '원칙'에 어긋난 면이 있는지를 두고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8일 단행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와 이번 판결을 연관 짓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청와대의 선거개입·감찰무마 의혹 수사를 지휘한 간부들을 대거 교체한 이번 인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쪽에서는 '안 전 검사장과 같은 직권남용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시민단체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부와 여당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대법 판결 취지대로면 추 전 장관의 인사권 행사도 정당하다는 식의 반박을 내놓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