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검검사급 이하 후속 인사도 폭 클 듯…검찰개혁 속도 예상
추미애, 검찰 인사관행에 제동…일각에선 "권한남용" 주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전날 밤 대검검사급(검사장) 이상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전격 단행하면서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 자리 잡았던 인사 관행에 확실히 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추 장관은 취임 5일 만인 8일 윤석열 검찰총장 참모진에 대한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다.

윤 총장의 참모진이 모두 교체됐다는 점도 두드러지지만 검찰 인사의 관행을 바꿨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보통 검찰 인사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상의해 세부 방향을 정했다.

법무부 검찰국에서 인사 초안을 만들어 장관과 총장에게 보고한 뒤 검찰인사위원회 심의와 장관 제청, 대통령 재가 등의 절차를 밟아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조국 민정수석과 박상기 법무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등 3명이 검찰 인사의 주요 내용을 협의했다.

지난해 7월 윤 총장 취임 다음 날 바로 단행된 고위 간부 인사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과거 정부에서도 검찰 인사를 앞두고 장관과 총장은 서로 대면한 가운데 의견을 교환했다.

장관과 총장 단둘이 만나기도 하고 배석자가 있기도 했다.

두 차례 이상 만나거나 만남의 장소를 외부로 정하는 등 때에 따라 다른 점이 있지만 큰 틀은 유지됐다.

현 정부에서는 법학 교수 출신의 비법조인에 해당하는 박상기·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기용됐지만, 일반적으로 법무부 장관은 검찰 출신 선배가 맡았다.

현 정부 들어 법무부의 탈(脫)검찰화가 가속화하기 전에는 법무부 내 상당수 요직이 검사로 채워졌다.

이런 여건 속에서 검찰의 요청사항이 법무부의 인사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양해해주는 분위기 속에서 인사가 이뤄지다 보니, 조직 쇄신이라는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법무부와 검찰과 사실상 한 몸처럼 공생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추미애, 검찰 인사관행에 제동…일각에선 "권한남용" 주장
추 장관은 관례로 자리 잡은 이런 인사 방식을 거부했다.

법무부와 검찰이 구체적인 인사 방안을 놓고 긴밀하게 협의하는 인사 관행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장관 후보자 시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추 장관은 인사에 관한 견해를 묻자 "검찰총장과 협의하는 게 아니라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고 장관의 권한을 강조한 바 있다.

추 장관의 인사 파격은 법무부 장관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청취한다는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맞물려 있다.

이 조항은 노무현 정부 때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관례와 달리 송광수 검찰총장과 의견 조율 없이 인사를 내려다가 내부 반발로 뜻을 접었던 게 발단이 돼 2004년 1월 만들어졌다.

초안 문구는 '협의를 해'였지만 이후 '의견을 들어'로 바뀌었다.

이번 인사에서 추 장관은 이번 인사에서 윤 총장에게 의견을 개진하라고 했지만 인사안(案)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윤 총장은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고 추 장관은 잠시 말미를 줬다가 곧바로 인사를 단행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추 장관의 직권남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총장의 의견 청취를 사실상 생략한 채 인사를 단행한 것은 위법하게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인사를 단행하라고 권고한 검찰인사위원회의 의견도 무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반면 법무부는 절차적 문제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추 장관이 의견을 개진하라며 호출까지 했는데도 윤 총장이 응하지 않았던 점에 비춰 위법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추미애, 검찰 인사관행에 제동…일각에선 "권한남용" 주장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인사가 여권을 겨냥한 수사를 벌이는 검찰에 인사 보복을 가한 것이라며 추 장관을 형사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추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법을 위반한 게 아니라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한 것"이라며 "검찰인사위 이후에도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기다렸는데 제3의 장소에서 인사의 구체적 안을 갖고 오라고 법령에도 있을 수 없는 요구를 했다"고 비판했다.

추 장관은 과거 인사 관례 역시 명확하게 정립된 건 없고 다양한 형태로 이뤄졌다며 장관의 재량권을 강조했다.

인사안과 관련해서는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인사 권한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 의견을 내겠다는 것은 법령상 근거가 없는 인사권 침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 장관의 단호한 태도에 비춰 법무부는 이달 중 예상되는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 이하 중간 간부 및 평검사 인사에서도 이번처럼 큰 폭의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이후 반부패수사부(옛 특별수사부) 등 직접수사부서 폐지 등 검찰개혁안 후속 조치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특히 법무부는 조국 전 장관 시절 내놓은 검찰개혁안에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4곳 중 2곳, 공공수사부(옛 공안부) 3곳 중 1곳과 함께 공정거래조사부, 방위사업수사부, 조세범죄조사부, 범죄수익환수부 등 인지 부서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이 같은 직제개편 구상과 관련해 윤 총장은 "검찰의 부패 대응 역량이 약화하지 않아야 한다"며 법무부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바 있어 당분간 각종 검찰개혁안 이행 문제를 두고도 법무부와 검찰 간 긴장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