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아름다운 나라지만 경제 사정은 좋지 않다. 오스만튀르크로부터 독립한 이후 200년 역사의 절반을 경제위기 속에서 지냈다. 독립전쟁 때 빌린 돈 때문에 1826년 첫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뒤로 2010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까지 6회나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다. 한때 조선· 해운업으로 재기하는 듯했으나 2차 세계대전과 내란으로 주저앉았다.

그리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산업구조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농·어업 등 1차산업과 관광 등 3차산업에 치중한 탓에 제조업 같은 2차산업이 미미하다. 1970년대에는 자동차를 제조하기도 했지만 반(反)시장주의 정치인들이 “올리브와 포도농사, 관광산업만 남기고 연기 뿜는 공장들은 없애버리자”며 비뚤어진 정책을 펴는 바람에 국가 경쟁력 기반이 허물어졌다.

이후 국민들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생산적인 일자리는 줄어들고 공무원만 늘어났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재정난이 극심해지자 2010년 IMF와 유럽연합(EU)에서 2890억유로(약 381조원)를 긴급 수혈했다. 이후 10년간 그리스 정부와 국민은 가혹한 긴축재정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그리스 경제가 되살아난 것은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친(親)기업 성향의 중도우파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의 영향이 컸다. 은행가 출신인 그는 작년 7월 총선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소속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를 꺾고 집권했다. 취임하자마자 ‘경제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규제 철폐와 감세, 기업 중심의 법제 개편, 과감한 민영화 등 시장친화적인 경제정책을 하나씩 실행했다.

그의 고강도 긴축과 구조조정 등으로 경제가 성장 궤도에 올라서면서 올해 IMF 구제금융체제를 졸업하게 됐다. 올해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2.8%에 이를 전망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그리스 르포에서 “아테네 상업 중심부의 오도스 레카 거리가 10년 만에 다시 붐비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은 은행 수익성이 유로존 최하 수준이고 투자도 부진하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희망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역시 나라를 살리는 힘은 낡은 이념정치나 ‘포퓰리즘의 유혹’이 아니라 친시장 정책과 규제 철폐 등 기업 활력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