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창군에서 돼지농장 ‘더불어 행복한 농장’을 운영하는 김문조 대표(사진)는 국내 동물복지 축산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동물복지는 사육 과정에서 돼지, 소, 닭 같은 가축들이 느끼는 고통을 최대한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 사육 방식이다. 돼지들을 스톨(좁은 면적의 철제 사육틀)에 넣어 기르는 게 아니라 축사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풀어놓는다. 그의 농장에서 생산된 돼지고기는 2016년 전국 최초로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을 받았다.

진주산업대(현 경남과학기술대) 축산개발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1991년 경남 고성군에 있는 돼지농장 직원으로 들어가 양돈 실전을 익혔다. 그리고 2005년 자기 농장을 시작했다. 새끼를 낳는 어미돼지(모돈) 50마리만 있던 소규모 농장을 인수했다. 농장 소유주가 된 뒤에도 낮시간엔 건설공사장 일용직으로 일하며 돼지에게 먹일 사료값을 벌었다.

그 이전 10여 년 동안 쌓은 현장 경험과 양돈산학협동연구회에서 일하면서 배운 전문 지식 덕분에 농장은 몇 년 안가 자리를 잡았다. 안정적으로 농장을 키워가던 그가 동물복지 축산에 눈을 뜬 건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2007년 무렵이었다.

“다른 농장들이 구제역 때문에 하루아침에 문 닫는 모습을 보니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죠. 돼지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좀 더 안전한 환경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동물복지 축산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요.”

국내에 동물복지 관련 제도가 도입된 건 2012년이지만 그는 그전부터 동물복지 축산으로 옮겨갈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해외 연수 때 방문한 독일과 덴마크의 축산 농가들에서 동물복지 사육방식과 그곳 소비자들이 동물복지 축산물을 찾는 모습을 보며 ‘동물복지가 축산의 미래’라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유럽 농가와 마트에서 깜짝 놀란 건 세 가지입니다. 동물복지 돼지고기 가격이 일반 돼지고기보다 최대 네 배나 높은데도 많은 소비자가 동물복지 돼지고기를 구입하는 걸 보고 놀랐고요. 동물복지 방식으로 키우는데도 농가의 생산성이 상당히 높다는 데 또다시 놀랐습니다. 한국에서 사육되는 돼지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돼지들의 모습도 놀라웠어요.”

2012년 국내에 동물복지 인증 기준이 마련되자 그는 곧바로 농장을 동물복지 사육 방식으로 바꿔나갔다.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들을 스톨에서 빼낸 뒤 넓은 축사 안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했다. 이어 축사 바닥에 왕겨를 깔고 2주에 한 번씩 갈아주면서 돼지들이 편안하고 청결한 환경에서 지내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해나갔다. 이렇게 동물복지 농장으로 바꾸는 데 들인 돈이 17억원에 달한다.

농장 환경을 돼지들이 스트레스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바꿔나가자 농장 생산성도 크게 높아졌다. 김 대표의 농장에선 1년 동안 모돈 한 마리당 24마리가량의 비육돈(돼지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돼지)을 시장에 내놓는다. 국내 양돈농가 평균 17마리보다 훨씬 많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는 덕분에 돼지들이 더 많은 새끼를 낳고, 사육 과정 중에 폐사하는 돼지 수도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복지 사육을 선택한 김 대표가 감수해야 했던 금전적인 손해는 작지 않다. 생산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과 달리 시장 판매가격은 일반 돼지고기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제 농장 규모가 1100평(약 3600㎡)인데 관행축산 방식으로는 돼지 4500마리를 키울 수 있어요. 그런데 동물복지 농장을 하려면 더 넓은 공간을 마련해야 해서 2200마리밖에 키우지 못하고 있어요. 직원들도 더 많이 고용해야 하고요. 동물복지 농장을 하게 되면서 과거보다 매출과 이익 모두 절반 정도로 떨어졌어요.”

김 대표는 동물복지 축산 비중을 늘리기 위해선 먼저 소비자에게 동물복지 사육의 참뜻을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동물복지는 맛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먹는 가축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사육할 때는 고통스럽게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소비자가 많아져야만 동물복지 방식으로 가축을 키우는 농민도 많아질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선택만이 축산업계를 바꿀 수 있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거창=FARM 홍선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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