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박원주 특허청장 "이제 특허청은 기업들 파트너…R&D 힌트 주는 기관 될 겁니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이기적인 '밉상 캐릭터'였지만 운동권 친구 잃은 뒤 삶이 달라져"
박원주 특허청장(56)은 전형적인 엘리트 공무원으로 꼽힌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에 산업통상자원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호감을 주는 곱상한 외모에 언변까지 뛰어나 주위 사람을 자연스럽게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라디오 출연과 외부 강연이 잦아 ‘인플루언서 청장’으로도 불린다.
지난 7일 서울 애오개역 맛집으로 유명한 두부 전문점 ‘황금콩밭’에서 박 청장을 만났다. 그는 “이 집에 오면 15도짜리 탁주부터 한잔해야 한다”며 기자들의 빈 잔을 채웠다. 그는 “특허청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낀다”며 “지식재산혁신청 같은 이름이 붙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대학 때 친구 잃고 성격 바뀌어
“이미지가 귀족적”이란 말에 박 청장은 손사래를 쳤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빚쟁이를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청장은 초등학교만 여섯 곳을 다녔다. 중학교(세 곳)와 고등학교(두 곳) 때도 1년 이상 한 곳에 머문 적이 드물다. 거쳐온 지역도 다양하다. 박 청장은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광주 외에 강원도와 경기도 등을 두루 거쳤다. 그는 “지금도 연락하는 중학교 친구가 단 한 명뿐일 만큼 교우 관계가 엉망이었지만 새로운 조직에 빨리 적응하는 데는 이골이 났다”고 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 박 청장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같은 대학에 진학한 고등학교 친구 중 하나가 민주화 시위 도중 분신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다. 충격을 받은 박 청장은 그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대학 1~2학년 때만 해도 저는 꼴보기 싫은 캐릭터였어요.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죠. 내 스케줄이 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술자리를 박차고 나갔고요. 친구가 죽기 전에 ‘진짜 서운하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어요.”
박 청장은 막 나온 따끈한 생두부를 권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몇 년이 지나고 보니 늘 술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아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돼 있었다”며 “먼저 일어나면 열심히 살다 간 친구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듣는 습관이 공무원으로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며 “먼저 간 친구가 나에게 준 선물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특허청에 등장한 괴짜 청장
특허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18년 9월이다. 그때 박 청장이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사고치지 마”와 “조용히 있어”였다. 기술 전문가들의 집단인 특허청을 ‘굴러온 돌’인 산업부 공무원이 통솔하는 게 만만찮다는 의미였다. 관계 부처의 관심이 별로 없어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박 청장은 전임자들과는 달랐다. 취임 첫해엔 고의적으로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기업에 피해액의 세 배를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해 11월엔 융복합 특허를 전담하는 ‘융복합기술심사국’을 신설하는 ‘사고’를 쳤다. 전자와 기계, 화학 등 세 파트로 나뉘어 있는 특허 심사관들이 모두 들어가는 팀을 꾸려 융복합기술을 들여다보는 식이다. 고유의 업무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불문율인 특허청에선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융합국에 가면 세 파트 전문가들이 매일 싸운다”며 “교집합이 아니라 합집합을 찾고 어느 영역이든 독창적인 부분이 보이면 특허를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청장이 ‘괴짜 청장’을 자처한 것은 지식재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대다수 전문가가 특허를 느슨하게 관리하는 게 기업들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해외 업체 기술을 빠르게 카피해 몸집을 불리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했다는 논리였다. 한국에서 지식재산의 권리를 인정받기 어려운 것도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특허를 침해당했을 때 소송으로 맞서기도 쉽지 않고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이 미미하다.
박 청장은 “시대가 바뀌면서 한국 기업들이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됐다”며 “적극적으로 지식재산권을 인정해야 기업들의 기술개발 의욕을 고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이후 쏟아지는 융복합기술을 지식재산으로 인정할지를 놓고 주요국 특허청이 골몰하는 시점”이라며 “융복합기술과 관련한 특허 표준을 선점해야 한국을 기반으로 뛰는 기술 기업이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특허 에이전시에서 컨설팅 기관으로
테이블에 보글보글 끓은 청국장이 올라왔다. 집에서 먹는 청국장과 달리 슴슴하면서도 깔끔한 맛이었다. 탁주 잔을 한 번 더 돌린 뒤 대화가 이어졌다.
박 청장은 기업과 밀접한 부처로 꼽히는 산업부 출신이다. 그럼에도 그는 “특허청에 온 뒤 기업을 더 잘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밤을 새우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의 엔지니어들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이들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특허청의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죠. 세계 특허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해 기업들을 컨설팅해주는 업무를 강화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는 기업 경영을 “자신이 보유한 기술의 다른 효용을 찾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전통지인 화지를 제조하는 닛폰제지가 대표적 사례다. 일본이 개화기를 맞으면서 닥나무 종이가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고민 끝에 접착제 회사로 정체성을 바꿨다. 화지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닥나무 곤죽을 벽지에 바르는 풀로 활용한 것이다. 닛폰제지는 이후에도 여러 번 변신을 꾀했다. 벽지 풀이 썩지 않게 하려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바이오 제품을 제조하기도 했다.
특허청은 한국 기업들이 닛폰제지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컨설팅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알루미늄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포인트엔지니어링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금속 표면에 투명한 부도체 막을 입히는 ‘아노다이징’ 업체다. 아노다이징을 끝낸 알루미늄으로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게 이 회사가 지향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문제는 알루미늄을 뒤덮은 막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다는 데 있다. 반도체를 찍어내다 보면 미세한 틈에 이물질이 끼게 되고 반도체의 수율을 떨어뜨린다. 특허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00만 건의 특허를 뒤졌다. 반도체 분야엔 힌트를 줄 만한 기술이 없었다. 업종을 달리해 특허를 뒤지다 보니 자동차 알루미늄 휠 업체 중에 비슷한 기술을 쓰는 곳이 있었다. 최근 포인트엔지니어링은 이 기술을 알루미늄 반도체 장비에 적용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박 청장은 “특허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기업들에 힌트를 주는 작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영혼 있는 공무원이 늘어나야
박 청장에게 자신만의 무기를 묻자 ‘진심의 힘’이란 답이 돌아왔다. 스스로가 자신의 일에 확신이 있어야 온 몸을 던져 일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세계 최초로 융복합기술심사국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도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허청이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에 ‘OK’ 사인을 얻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주. 외청 조직 신설 건 중 최단기록이다. 그는 “진심이 아닌 사람은 은연중에 ‘일이 잘 안 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며 “여기까지만 하면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지노선’이 있으면 될 일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무원’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제가 생각하는 공무원은 국민 다수가 원하는 변화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이루게 하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이룰지는 공무원 스스로가 판단해야 합니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요? 그건 일할 마음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갖고 온 몸을 던지는 공무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박원주 특허청장이 취임 후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사업으로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지식재산권을 고의로 침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피해액의 세 배를 배상하는 게 골자다.
한국의 지식재산권 생태계는 척박하다. 국내 특허 소송 배상액 중간값은 6000만원 선이다. 65억원인 미국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승소한다 해도 소송비용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
박 청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은 특허권자 보호를 위한 첫발을 뗀 것뿐”이라고 했다. 피해 입증이 쉽지 않은 게 문제다. 1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5만원의 피해밖에 증명하지 못했다면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이 15만원에 불과하다. 고의로 특허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도 만만찮다. 제도 시행 후 아직까지 ‘세 배 배상’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생산능력을 기준으로 피해액을 산정하는 현행법의 실손배상 원칙도 걸림돌이다. 박 청장은 “생산 시설이 없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지식재산권을 보유만 하고 있는 개인 발명가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박원주 특허청장 약력
△1964년 전남 영암 출생
△1983년 광주 송원고 졸업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행정고시 합격(31회)
△2012년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 산업정책관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
△2016년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 실장
△2018년 9월~ 제26대 특허청 청장 ■ 박원주 청장의 단골집 황금콩밭
매일 만드는 生두부…'미쉐린가이드'도 알아본 깊은 콩 맛
서울 아현동에 있는 두부 전문 식당이다. 대표메뉴는 생두부다. 2013년 문을 연 뒤 매일 아침 매장에서 직접 두부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생두부는 연두부보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매끈한 식감을 자랑한다. 첫 입은 간장 또는 김치를 곁들이지 않고 두부만 먹어 깊은 콩 맛과 식감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두부조림, 두루치기, 짜글이도 인기 메뉴로 꼽힌다. 이틀에 한 번 직접 떠내는 청국장은 짜지 않고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두툼하고 쫄깃하게 삶아낸 보쌈은 고소한 두부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단품뿐 아니라 생두부·바지락 두부탕·조림·전·시래기비지탕 등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코스메뉴도 있다.
윤태현 대표가 경북 예천 쌀과 누룩, 물만으로 빚은 탁주 역시 꼭 시도해봐야 할 별미다. 달지 않고 산미가 강하다. 액상 요거트와 비슷한 식감이지만 알코올도수는 15도로 꽤 높은 편이다. 4만5000원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인 ‘미쉐린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됐다.
송형석/조수영 기자 click@hankyung.com
지난 7일 서울 애오개역 맛집으로 유명한 두부 전문점 ‘황금콩밭’에서 박 청장을 만났다. 그는 “이 집에 오면 15도짜리 탁주부터 한잔해야 한다”며 기자들의 빈 잔을 채웠다. 그는 “특허청이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낀다”며 “지식재산혁신청 같은 이름이 붙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대학 때 친구 잃고 성격 바뀌어
“이미지가 귀족적”이란 말에 박 청장은 손사래를 쳤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빚쟁이를 피해 도망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 청장은 초등학교만 여섯 곳을 다녔다. 중학교(세 곳)와 고등학교(두 곳) 때도 1년 이상 한 곳에 머문 적이 드물다. 거쳐온 지역도 다양하다. 박 청장은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광주 외에 강원도와 경기도 등을 두루 거쳤다. 그는 “지금도 연락하는 중학교 친구가 단 한 명뿐일 만큼 교우 관계가 엉망이었지만 새로운 조직에 빨리 적응하는 데는 이골이 났다”고 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 박 청장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같은 대학에 진학한 고등학교 친구 중 하나가 민주화 시위 도중 분신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다. 충격을 받은 박 청장은 그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대학 1~2학년 때만 해도 저는 꼴보기 싫은 캐릭터였어요.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죠. 내 스케줄이 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술자리를 박차고 나갔고요. 친구가 죽기 전에 ‘진짜 서운하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어요.”
박 청장은 막 나온 따끈한 생두부를 권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몇 년이 지나고 보니 늘 술자리에 마지막까지 남아 남의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돼 있었다”며 “먼저 일어나면 열심히 살다 간 친구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남의 얘기를 끝까지 듣는 습관이 공무원으로 살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며 “먼저 간 친구가 나에게 준 선물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특허청에 등장한 괴짜 청장
특허청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18년 9월이다. 그때 박 청장이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사고치지 마”와 “조용히 있어”였다. 기술 전문가들의 집단인 특허청을 ‘굴러온 돌’인 산업부 공무원이 통솔하는 게 만만찮다는 의미였다. 관계 부처의 관심이 별로 없어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박 청장은 전임자들과는 달랐다. 취임 첫해엔 고의적으로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기업에 피해액의 세 배를 배상하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해 11월엔 융복합 특허를 전담하는 ‘융복합기술심사국’을 신설하는 ‘사고’를 쳤다. 전자와 기계, 화학 등 세 파트로 나뉘어 있는 특허 심사관들이 모두 들어가는 팀을 꾸려 융복합기술을 들여다보는 식이다. 고유의 업무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불문율인 특허청에선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그는 “지금도 융합국에 가면 세 파트 전문가들이 매일 싸운다”며 “교집합이 아니라 합집합을 찾고 어느 영역이든 독창적인 부분이 보이면 특허를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청장이 ‘괴짜 청장’을 자처한 것은 지식재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깰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대다수 전문가가 특허를 느슨하게 관리하는 게 기업들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해외 업체 기술을 빠르게 카피해 몸집을 불리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성장했다는 논리였다. 한국에서 지식재산의 권리를 인정받기 어려운 것도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영향이 크다는 설명이다. 특허를 침해당했을 때 소송으로 맞서기도 쉽지 않고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이 미미하다.
박 청장은 “시대가 바뀌면서 한국 기업들이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됐다”며 “적극적으로 지식재산권을 인정해야 기업들의 기술개발 의욕을 고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이후 쏟아지는 융복합기술을 지식재산으로 인정할지를 놓고 주요국 특허청이 골몰하는 시점”이라며 “융복합기술과 관련한 특허 표준을 선점해야 한국을 기반으로 뛰는 기술 기업이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특허 에이전시에서 컨설팅 기관으로
테이블에 보글보글 끓은 청국장이 올라왔다. 집에서 먹는 청국장과 달리 슴슴하면서도 깔끔한 맛이었다. 탁주 잔을 한 번 더 돌린 뒤 대화가 이어졌다.
박 청장은 기업과 밀접한 부처로 꼽히는 산업부 출신이다. 그럼에도 그는 “특허청에 온 뒤 기업을 더 잘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밤을 새우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의 엔지니어들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아요. 이들의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특허청의 역할이란 생각이 들었죠. 세계 특허 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해 기업들을 컨설팅해주는 업무를 강화한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그는 기업 경영을 “자신이 보유한 기술의 다른 효용을 찾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전통지인 화지를 제조하는 닛폰제지가 대표적 사례다. 일본이 개화기를 맞으면서 닥나무 종이가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고민 끝에 접착제 회사로 정체성을 바꿨다. 화지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닥나무 곤죽을 벽지에 바르는 풀로 활용한 것이다. 닛폰제지는 이후에도 여러 번 변신을 꾀했다. 벽지 풀이 썩지 않게 하려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바이오 제품을 제조하기도 했다.
특허청은 한국 기업들이 닛폰제지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컨설팅 업무를 강화하고 있다. 알루미늄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포인트엔지니어링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금속 표면에 투명한 부도체 막을 입히는 ‘아노다이징’ 업체다. 아노다이징을 끝낸 알루미늄으로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게 이 회사가 지향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문제는 알루미늄을 뒤덮은 막의 표면이 매끄럽지 않다는 데 있다. 반도체를 찍어내다 보면 미세한 틈에 이물질이 끼게 되고 반도체의 수율을 떨어뜨린다. 특허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000만 건의 특허를 뒤졌다. 반도체 분야엔 힌트를 줄 만한 기술이 없었다. 업종을 달리해 특허를 뒤지다 보니 자동차 알루미늄 휠 업체 중에 비슷한 기술을 쓰는 곳이 있었다. 최근 포인트엔지니어링은 이 기술을 알루미늄 반도체 장비에 적용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박 청장은 “특허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기업들에 힌트를 주는 작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영혼 있는 공무원이 늘어나야
박 청장에게 자신만의 무기를 묻자 ‘진심의 힘’이란 답이 돌아왔다. 스스로가 자신의 일에 확신이 있어야 온 몸을 던져 일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세계 최초로 융복합기술심사국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도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허청이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에 ‘OK’ 사인을 얻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주. 외청 조직 신설 건 중 최단기록이다. 그는 “진심이 아닌 사람은 은연중에 ‘일이 잘 안 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며 “여기까지만 하면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마지노선’이 있으면 될 일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무원’의 의미를 재정의하며 자리를 마무리했다. “제가 생각하는 공무원은 국민 다수가 원하는 변화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이루게 하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이룰지는 공무원 스스로가 판단해야 합니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요? 그건 일할 마음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의 일에 확신을 갖고 온 몸을 던지는 공무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박원주 특허청장이 취임 후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사업으로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지식재산권을 고의로 침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피해액의 세 배를 배상하는 게 골자다.
한국의 지식재산권 생태계는 척박하다. 국내 특허 소송 배상액 중간값은 6000만원 선이다. 65억원인 미국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승소한다 해도 소송비용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
박 청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은 특허권자 보호를 위한 첫발을 뗀 것뿐”이라고 했다. 피해 입증이 쉽지 않은 게 문제다. 1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5만원의 피해밖에 증명하지 못했다면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이 15만원에 불과하다. 고의로 특허를 침해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도 만만찮다. 제도 시행 후 아직까지 ‘세 배 배상’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생산능력을 기준으로 피해액을 산정하는 현행법의 실손배상 원칙도 걸림돌이다. 박 청장은 “생산 시설이 없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지식재산권을 보유만 하고 있는 개인 발명가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 박원주 특허청장 약력
△1964년 전남 영암 출생
△1983년 광주 송원고 졸업
△1987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행정고시 합격(31회)
△2012년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실 산업정책관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
△2016년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 실장
△2018년 9월~ 제26대 특허청 청장 ■ 박원주 청장의 단골집 황금콩밭
매일 만드는 生두부…'미쉐린가이드'도 알아본 깊은 콩 맛
서울 아현동에 있는 두부 전문 식당이다. 대표메뉴는 생두부다. 2013년 문을 연 뒤 매일 아침 매장에서 직접 두부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생두부는 연두부보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매끈한 식감을 자랑한다. 첫 입은 간장 또는 김치를 곁들이지 않고 두부만 먹어 깊은 콩 맛과 식감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두부조림, 두루치기, 짜글이도 인기 메뉴로 꼽힌다. 이틀에 한 번 직접 떠내는 청국장은 짜지 않고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두툼하고 쫄깃하게 삶아낸 보쌈은 고소한 두부와 찰떡궁합을 이룬다. 단품뿐 아니라 생두부·바지락 두부탕·조림·전·시래기비지탕 등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코스메뉴도 있다.
윤태현 대표가 경북 예천 쌀과 누룩, 물만으로 빚은 탁주 역시 꼭 시도해봐야 할 별미다. 달지 않고 산미가 강하다. 액상 요거트와 비슷한 식감이지만 알코올도수는 15도로 꽤 높은 편이다. 4만5000원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에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인 ‘미쉐린가이드 빕 구르망’에 선정됐다.
송형석/조수영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