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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려한 붓터치로 그려낸 사랑…'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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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려한 붓터치로 그려낸 사랑…'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초상화를 그리는 행위에는 단순한 그림 그리기 그 이상의 의미가 존재한다.

    그 행위에는 권력 관계가 있다.

    화가는 눈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인물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해석해 캔버스에 표현해낸다.

    때로는 '뮤즈'로 불리는 그려지는 대상은 캔버스 안에서 화가의 관점대로 대상화하고 재창조된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이런 일방적인 시선을 쌍방으로 바꿔낸다.

    화가의 성별을 여성으로 바꾸면서다.

    전문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 분)는 원치 않는 결혼을 앞둔 귀족 아가씨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결혼 초상화 의뢰를 받고 프랑스 브르타뉴의 외딴 성으로 온다.

    그림을 의뢰한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결혼을 원치 않는 딸이 포즈를 취해주지 않는다"며 마리안느에게 함께 산책하며 보는 것만으로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요청한다.

    마리안느는 짧은 며칠의 기간 엘로이즈를 유심히 관찰하며 얼굴과 몸 각 부분의 그림을 그리고, 이를 통해 초상화를 완성한다.

    몰래 완성한 초상화 탓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마리안느가 그린 초상화에는 "감정이 없다"고 비난한 엘로이즈는 마침내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유려한 붓터치로 그려낸 사랑…'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에서는 중요한 '시선'들이 오간다.

    마리안느는 초반 일방적인 시선으로 엘로이즈를 관찰한다.

    그러나 마침내 엘로이즈가 포즈를 취하자 두 사람은 서로를 관찰한다.

    그 시선 속에서 때로는 에로틱하고 때로는 애절한 사랑이 싹튼다.

    시선이 양방향이 되면서 전통적인 작가-뮤즈의 관계가 전복하고 재탄생한다.

    이 과정에서 오르페우스의 신화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가 죽음의 신 하데스를 찾아가 지하세계의 문턱을 통과하기 전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 출구 바로 앞에서 뒤를 돌아보게 되고 아내는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간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처럼 일방적이던 시선이 쌍방이 되는 순간, 두 연인은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유려한 붓터치로 그려낸 사랑…'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엘로이즈는 수녀원에서부터 입었다는 남색 드레스 대신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마리안느 앞에 선다.

    마리안느는 자신의 붓터치로 엘로이즈에게 색을 입혀간다.

    그리고 그에게 '여름'을 알려준다.

    그리고 마침내 둘의 감정은 불처럼 타오른다.

    그러나 드레스에 붙은 불을 누군가가 꺼버리듯 둘의 사랑은 지속할 수 없다.

    남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화 속에서 남성 권력은 실재한다.

    초상화를 그리는 이유 역시 남편이 될 사람에게 엘로이즈보다 그림이 먼저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결혼해 이탈리아에서 브르타뉴로 온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그 증거이다.

    포즈를 취하기를 거부하는 엘로이즈는 대상화한 그림을 통해 가부장적 시스템 안에 자신을 넣으려는 남성 권력에 대한 거부로 읽히기도 한다.

    유려한 붓터치로 그려낸 사랑…'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두 번째 초상화를 완성할 것을 지시하고 며칠간 떠나면서 집에는 엘로이즈, 마리안느 그리고 하녀 소피만이 남는다.

    이처럼 외부와 외부의 남성 권력과 단절된 세계에서 세 사람 간에는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고 주체적인 결정들이 내려진다.

    그러나 이 역시 지속할 수 없다.

    엘로이즈의 드레스가 불타는 장면에서 여성들이 합창하는 라틴어 가사의 노래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가사의 뜻은 "우리는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서로 주고받던 시선 속에 타오르는 사랑에서인지, 아니면 영화가 묘사하는 곳 밖에서 오는 억압으로부터인지 모호하다.

    유려한 붓터치로 그려낸 사랑…'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제목도 중의적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Lady on Fire)이 여인이 타오르고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여인을 그린 초상화가 타오르고 있다는 뜻인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의 관계는 천천히 타오르는 불처럼 묘사됐다면, 18세기 당시 전문 예술인으로서 여성 화가의 위치에 대한 메시지는 꽤 직접적이다.

    마리안느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진 화가이지만,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빌려야 한다.

    그의 대사로 "여자 화가는 남자 누드를 못 그린다.

    여성 화가의 활동은 제한돼있다.

    중요한 주제도 못 그린다"라는 말이 직접 전달된다.

    화면도 마치 18세기의 명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짙은 남색의 밤과 대비되는 불의 색, 두 사람의 드레스, 해변에 비치는 햇빛마저 그림처럼 잡아낸 영상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연출을 맡은 셀린 시아마 감독은 데뷔작 '워터 릴리스'(2007)을 포함해 '톰보이'(2011), '걸후드'(2014) 등을 만든 가장 주목받는 여성 감독 중 한 명이다.

    작년 제72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받았고, 올해 제77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

    두 곳에서 모두 '기생충'과 경쟁해 화제가 됐다.

    유려한 붓터치로 그려낸 사랑…'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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