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BTS 주제 첫 대규모 국제콘퍼런스…30여개국 140명 발표
전 세계 '학자 아미'들 BTS를 논하다…런던서 글로벌 학회
세계 대중문화 주변부에 가까웠던 한국에서 나타나 음악과 메시지 호소력으로 '월드스타'가 된 방탄소년단(BTS). 그리고 이들을 매개로 만들어진 전 지구적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네트워크.
'방탄소년단 현상'은 그 전례 없는 성격 덕에 이미 대중문화 일부를 넘어 학술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방탄소년단을 연구하는 학술행사가 잇따라 열린 데 이어 최근에는 영국 런던에서 방탄소년단에 대한 첫 대규모 국제 콘퍼런스가 개최돼 눈길을 끈다.

영국 런던 외곽 킹스턴대학교에서는 지난 4∼5일 '방탄소년단 : 글로벌 학제 간 콘퍼런스 프로젝트'(BTS: A Global Interdisciplinary Conference Project)라는 이름으로 학회가 열렸다.

방탄소년단에 애정을 지닌 세계 각국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방탄소년단 현상을 학술적으로 분석하고 교류하며 통찰을 나눴다.

전 세계 '학자 아미'들 BTS를 논하다…런던서 글로벌 학회
◇ 30여개국서 참가·140명 발표…"BTS는 변화하는 세계 읽는 지진계"
행사를 주도한 콜레트 발메인 킹스턴대 영화·미디어학부 교수에 따르면 이번 콘퍼런스에선 발표자만 140여명에 달했다.

발메인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글로벌 사회에 살고 있고, 고정됐던 경계를 상품과 사람들이 어떻게 넘나드는지 관심이 있었다"며 "방탄소년단은 지역적 요소, 즉 한국적인 것(Koreanness)을 유지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그리고 세계를 대변해 말한다는 점에서 최적의 사례"라고 주최 동기를 설명했다.

발메인 교수는 지난해 8월 초 학계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논문 발표 요청을 보냈고 200건 넘는 논문 초록이 모였다.

그는 "이렇게 많은 이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방탄소년단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전했다.

세계 30여개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참가자들은 "없는 분야가 없었다"(세종대 이지영 교수)고 할 정도로 문화연구·심리학·인류학·예술이론·미디어학·철학·문학·언어학·정치학·국제관계학·교육학 등 각종 영역을 망라했다.

연령대도 학부생부터 대학교수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영상 등 콘텐츠를 다양한 학문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은 물론 팬덤 문화, 마케팅, 공공외교, 젠더 등 다채로운 프리즘으로 방탄소년단 현상을 들여다봤다.

방탄소년단 현상을 종교학적으로 조명한 성공회 사제, 노장사상을 통한 방탄소년단 메시지 해석, 무슬림 아미들에 방탄소년단이 어떤 의미인지 등 독창적인 발표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처럼 방탄소년단을 교차점으로 폭넓은 학문 분야가 모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방탄소년단이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며 팬들을 이에 동참시키기 때문이다.

이지영 교수는 4일 기조연설에서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사람들의 갈망과 변화하는 세계의 미묘한 진동을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지진계 같다"며 "방탄소년단의 여러 가지 성공 요인은 전 세계 사람들이 열망하는 변화의 방향과 어쩌면 우연히 일치했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발메인 교수는 "영어로 노래하지 않는 그룹의 글로벌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볼 때 방탄소년단 현상은 전례가 없다"고 짚었다.

전 세계 '학자 아미'들 BTS를 논하다…런던서 글로벌 학회
◇ '아카데믹 아미' 축제의 장…BTS 학술서·저널 창간도 추진
학자인 동시에 아미인, '아카데믹 아미'(Academic Army)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유연하고 수평적인 전 세계 아미 네트워크가 그대로 현실에 펼쳐졌다.

참석자들은 경력, 사회적 지위, 국적, 분야 등에 상관없이 친구가 돼 학문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격의 없는 교감을 나눴다.

서구사회에서 방탄소년단 팬이기 때문에 겪었던 차별과 편견 등에 공감하며 서로 위로하기도 했다.

이지영 교수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아미들이 공유하는 농담, 정서를 나누다 보니 몇 마디 하지 않아도 오래된 친구 같았다.

저명한 대학교수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분위기도 딱딱하고 경직되기 쉬운 평소 학회와 사뭇 달랐다고 한다.

점심시간에 스크린에 방탄소년단 시상식 무대 영상이 뜨자 학회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학회가 끝날 무렵에도 누군가가 방탄소년단 뮤직비디오를 틀자 참석자들은 흥겹게 노래와 춤을 따라 하며 화기애애하게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지영 교수는 "다들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 발표를 하나라도 더 들으려 했다", "아카데믹 아미들의 축제였다"고 현장의 열기를 묘사했다.

그는 향후 창조적 협업도 가능할 것 같다며 "세계 곳곳 대학에서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 한 주제를 갖고 자유롭게 발표한 이 콘퍼런스에서 학제 간 융합 연구 가능성을 봤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학자 아미'들 BTS를 논하다…런던서 글로벌 학회
후속 움직임도 추진된다.

발메인 교수 등은 콘퍼런스에서 다룬 주제들을 아우르는 학술서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또 방탄소년단과 아미를 다루는 온라인 학술 저널 창간이 콘퍼런스에서 발표됐다.

오는 3월부터 논문을 받기 시작해 가을께 첫 호를 공개한다는 목표다.

발메인 교수는 "아미들은 '신경질적인 10대 소녀'로 자주 묘사되지만, 팬들이 학자들보다 박식할 때도 많다.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며 "콘퍼런스와 저널도 아이디어를 나누고 발전할 '안전한 공간'을 만든다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콘퍼런스 개최도 이미 논의되고 있다.

발메인 교수는 "(이번 콘퍼런스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