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잡념 싹 씻어주는 '신안 순례길'…느릿느릿 걷다보면 어느새 섬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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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40) 겨울에 걷기 좋은 섬
강제윤 시인의 새로 쓰는 '섬 택리지'
(40) 겨울에 걷기 좋은 섬
![겨울 섬은 늘 따뜻해 도보여행에 제격이다. 전남 신안군 기점도 노두길은 네 개의 섬을 연결하는 도보여행길이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21393700.1.jpg)
감동의 현장 기점도, 소악도 순례자의 길
![기점도 순례길은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해 12개 기도처를 만들었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21393671.1.jpg)
그런데 최근 이 노두길을 걷기 위해 섬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노두길이 순례자의 길로 변신하면서부터다. 순례자의 길은 모두 12㎞인데 1㎞마다 하나씩 12개의 기도처가 들어서 있다. 순례 도중 기도드릴 수 있는 성소가 생긴 것이다. 순례자의 길은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등 4개 섬의 노두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이들 4개의 섬은 묶음으로 기점, 소악도라 부르기도 한다. 순례자의 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을 기도처 이름으로 차용했지만 특정 종교인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기도처는 예배당일 수도, 성당일 수도, 암자일 수도 있다. 12개의 기도처는 11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해 만들었다. 한국 작가가 6명,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외국 작가 5명이 각각 하나 또는 2개의 기도처를 건축했다. 공동 작업에 참여한 작가도 있다. 기도처는 첫 번째인 대기점도 선착장, 베드로의 집에서 시작돼 12번째 가롯 유다의 집에서 끝난다. 기도처는 누구나 각자 신앙의 성소로, 무신론자는 자기 성찰의 장소로 사용하면 된다.
![출입문이 없는 열린 공간으로 구성된 기점도 11번 예배당](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21403128.1.jpg)
순례자의 길 끝자락에서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다. 출입문도 없는데 무한히 열린 기도처가 있다. 바다와 섬들의 풍경을 차단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출입문을 달지 않았다. 이 기도처에 이르러 순례자는 비로소 섬의 자연과 일체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밀실의 기도처가 아니라 열린 기도처. 열어야 할 문이 없으니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닫아야 할 문이 없으니 어떤 종교로도 제한되지 않는 성소. 11번째 기도처다. 순례자의 길에 기도처를 만든 정신을 가장 명징하게 구현해낸 작품이다. 팝아트 작가 강영민이 만들었다. 기도보다는 저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술 한잔하면 참 달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런 불경한 생각도 다 받아주는 열린 성소. 그래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준 작가가 고맙다.
파도 소리 들리는 최고의 트레일 화태도 갯가길
제주 올레길 이후 섬들도 저마다 이름을 달고 길들이 조성됐다. 여수 갯가길도 올레가 낳은 자식 중 하나다. 화태도 갯가길은 여수 갯가길의 5번째 코스다. 화태도는 2015년 12월 돌산도와 다리로 연결되면서 섬의 시대를 마감했다. 여수와 이어진 돌산과 연결됐으니 육지로 편입된 것이다. 길은 돌산도 예교마을 화태대교 입구에서 시작된다.
![화태도 바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21393527.1.jpg)
화태도는 췻대섬, 파태도, 수태섬 등으로 불리다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2.18㎢ 면적에 200여 가구, 400여 명이 살아가는데 섬사람들의 주업은 어류 양식이다. 100여 가구가 가두리 양식장에서 우럭, 도미 등의 어류를 기른다. 여수에서 어류 양식업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 화태도다. 여수 전체 양식 어류의 40%가량이 화태도에서 생산된다.
![여수 화태도 굴양식장](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21393658.1.jpg)
노인은 마지막 남은 한 마리까지 다 빠져나가도 꿈쩍하지 않을 태세다. “열 번 오면 다섯 번쯤 잡아요.” 숭어가 빠져나갈까봐 조급하게 굴면 다 놓칠 수 있지만 때를 기다릴 줄만 알면 절반은 성공한다는 말씀이다. 5할이면 얼마나 높은 승률인가! 조급하지도 욕심 부리지도 않는 것. 절반의 성공에도 만족할 줄 아는 어부가 진정한 고수다. 노인은 벌써 1시간 전부터 자리에 앉아 숭어들의 동태를 살펴보고 있었다. 또 30분쯤이 흐르자 비로소 웅덩이와 바다 사이 갯고랑의 물길이 끊겼다. 그래도 아직 제법 많은 숭어가 남았다. 노인은 뜰채를 들어 숭어를 건져내기 시작한다. 대체로 세상의 물고기들이란 때라는 그물에만 걸려든다. 낚싯바늘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그물이 아무리 촘촘해도 때를 기다릴 줄 모르면 헛방이다. 섬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고수들을 만난다. 인생도처 유상수다!
![국내 최장 12㎞ 길이의 임자도 대광해변](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21393686.1.jpg)
월전포구 도선장 끝에서 길이 끊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이어진다. 해변의 숲길. 옛날에 다들 갯것을 하고 나무를 하러 다니던 길이다. 이 해변을 돌아서면 섬의 서쪽이다. 독정이 포구에서 묘두까지 이어지는 해변길은 내내 파도 소리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최고의 트레일이다. 묘두 마을이 보이는 갈림길에 이르니 이정표가 나타난다. 썰물 때는 해변 길로, 들물 때는 도로를 따라가라는 표시다. 묘두는 고양이 머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묘두를 괴머리라고도 부른다. 괴 혹은 괴이, 괭이는 고양이의 이 지역 말이다. 묘두 마을을 돌아 나와 도로를 따라 200m 남짓 걸으면 꽃머리산 입구다. 길은 더없이 고즈넉하다. 꽃머리산이라니! 이토록 어여쁜 이름의 산도 있을까? 꽃머리산을 올랐다 내려가니 다시 처음 그 자리다. 치끝.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왔구나 나그네여!
호젓한 해변 걷는 임자도 대광리 백사장길
![임자도의 대표 봄 꽃 ‘튤립’](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21393600.1.jpg)
![임자도는 여름 보양식 중 으뜸으로 꼽히는 민어의 대표 어장이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21393622.1.jpg)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대광리에서 전장포까지 명사삼십리 해변 길을 혼자 걸을 수 있는 행운을 누가 쉽게 가질 수 있으랴. 주저 없이 떠날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강제윤 시인은
![묵은 잡념 싹 씻어주는 '신안 순례길'…느릿느릿 걷다보면 어느새 섬 한바퀴](https://img.hankyung.com/photo/202001/AA.1422315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