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프랑스 정부가 연금 수급 연령을 높이려는 방안을 철회할 수 있다며 노조에 양보안을 제시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이날 노조 대표들에게 서한을 보내 “특정 조건이 충족된다면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높이는 방안을 철회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필리프 총리는 지난 7일 프랑스 노동부 청사에서 노조 대표들과 만나 퇴직연금 개편안을 놓고 협의했지만 결론에 이르지는 못했다.

필리프 총리는 당시 기자들과 만나 “타협안을 위해 모두가 의견을 조금씩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연금 개편안과 관련해 일정 부분을 양보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필리프 총리는 또 “노조와 사용자단체들이 연금 적자를 줄이기 위해 더 나은 방안을 도출하면 그것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하는 연금 개편안은 현재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퇴직연금을 단일 체제로 통일하는 게 핵심이다. 복잡한 제도 탓에 ‘덜 내고 더 받는’ 사각지대가 생기면서 연간 100억유로(약 13조2400억원)에 이르는 적자가 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롱 정부는 당초 연금 수급 연령도 62세에서 64세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노동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한발 물러선 것으로 관측된다. 필리프 총리의 이날 서한에 대해 온건 성향으로 분류되는 프랑스 최대 노조 민주노동연맹(CFDT)은 “정부가 타협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프랑스 정부는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맞게 연금제도를 개편해 노동 유연성을 높이면서 국가 부담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노동계는 “더 오래 일하게 하고 연금은 덜 주겠다는 것”이라며 38일째 총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은 “1968년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당시 샤를 드골 정부의 실정에 저항한 ‘68운동(5월 혁명)’ 이후 50여 년 만에 최대 규모의 파업”이라고 전했다.

이날도 파리 동부에서는 연금 개편에 항의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집결해 행진했다. 일부 시위대가 유리창을 깨고 간판을 불태우는 등 폭력 양상을 보이자 경찰은 최루가스 등으로 맞대응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