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일성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운전자’를 자처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북측이 노골적인 비난으로 답하면서 정부가 남북관계 해법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을 향해 수차례 유화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되레 ‘통미봉남(通美封南)’ 의지만 확고해지고 있는 탓에 올해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진척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는 지난 11일 발표된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의 담화에 대해 하루가 지난 12일에도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관련 내용을 살펴봤다”면서도 “일일이 반응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계관은 담화에서 “호들갑” “주제넘은 일” “멍청한 생각” 등 남한을 향해 비아냥조의 표현을 사용하며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날 청와대가 전격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자중하라”고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김계관은 “남조선 당국은 우리가 생일축하 인사나 전달받았다고 하여 누구처럼 감지덕지해하며 대화에 복귀할 것이라는 허망한 꿈을 꾸지 말고,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겉으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속으로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신년 메시지를 통해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며 집권 4년 차를 맞아 더욱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7일 신년사에서는 ‘김정은 답방 제안’을 비롯해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한 철도·도로 연결 등 현실적으로 가능한 당근을 모두 제시하기도 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모습을 보였지만 북측과의 대화 채널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는 데다 북한이 오직 미국과만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문 대통령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지는 형국이다.

집권 초와 달리 청와대 내부에서 ‘북한통’이 사라졌다는 점도 문 대통령과 남북 대화에는 악재다. 남북 대화를 주도해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를 떠난 데다 북한이 가장 신뢰한 파트너로 알려진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마저 총선 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임 전 실장이나 윤 전 실장의 역할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청와대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