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울지마 톤즈'의 후예들
오늘은 ‘수단의 슈바이처’ ‘톤즈의 성자’로 불린 이태석 신부의 열 번째 기일(忌日)이다. 부산의 판잣집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현 남수단 소재)에서 8년간 의사와 교사,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2010년 48세로 타계했다. 그는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뒤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광주가톨릭대를 거쳐 사제가 됐다.

이후 내전과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톤즈로 달려가 병원을 짓고 아픈 사람을 치료했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총칼 대신 악기를 들게 해 35인조 브라스밴드를 결성했다. 남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는 딩카족 후예들에게 사랑과 눈물의 참뜻을 일깨웠다. 한국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던 순간에도 현지에 파다 만 우물을 걱정했다.

그의 헌신적인 삶은 영화 ‘울지마 톤즈’에 담겨 있다. 지난 9일에는 ‘울지마 톤즈 2-슈크란 바바’가 개봉됐다. 이번 영화에는 그의 제자로 한국에 와 의사가 된 토마스 타반 아콧 등 ‘톤즈의 후예’들이 등장했다. 인제대 의대를 졸업한 톤즈 출신 젊은이들은 고국으로 가 의료 봉사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고 돌아가 남수단의 인프라 건설에 앞장선 청년도 있다.

지난해 이화여대를 졸업한 아순타 아조크는 브라스밴드 단원으로 2012년 한국을 방문해 동료 28명과 함께 이 신부의 묘소에 진혼곡을 바친 소녀다. 당시 소년·소녀 단원들은 연주를 채 끝내기도 전에 이 신부의 사진을 쓰다듬으며 흐느끼다 끝내 목 놓아 울었다.

이 땅에서도 ‘제2의 이태석’을 꿈꾸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올해 ‘이태석 봉사상’을 받은 박세업 글로벌케어 북아프리카본부장은 15년째 몽골,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모리타니에서 의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7년 이 신부를 돕기 위해 출범한 수단어린이장학회는 후원국을 확대해 동티모르, 말라위, 잠비아 등 10여 개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태석 신부의 짧은 삶을 아쉬워하고 슬퍼한다. 남수단 사람들은 “인종·종교 분쟁으로 200만 명이 숨진 비극의 땅에 움막 진료실을 짓고 하루 300명씩 환자를 치료한 영웅”이라며 그의 삶을 교과서에 수록했다. “나를 위해 울지마, 네 이웃을 위해 울어.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란다”라는 그의 마지막 가르침과 함께.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