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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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무릅쓴 링컨의 노예 해방
기득권과 싸우는 마크롱의 개혁
확고한 '국정 우선순위'의 산물
'헌법에 따른 권한' 강조에 앞서
'대통령의 책무' 깊이 성찰해야
이학영 논설실장
기득권과 싸우는 마크롱의 개혁
확고한 '국정 우선순위'의 산물
'헌법에 따른 권한' 강조에 앞서
'대통령의 책무' 깊이 성찰해야
이학영 논설실장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16대 대통령이 1861년 선언한 ‘노예해방’을 완성하기까지 과정은 험난했다. 흑인 노예를 부리며 농장을 운영했던 남부지방 지주들의 반발이 다는 아니었다. 더 큰 장벽은 위헌 논란이었다. ‘사유재산 보호’가 헌법으로 보장된 미국에서 노예는 합법적인 사유재산이었다. 미국 대법원은 1857년 판결(드레드 스콧 대 샌드퍼드)을 통해 백인의 흑인 노예 소유권과 재산권을 재확인한 터였다. 링컨이 의지한 것은 “언제까지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부릴 수는 없다”는 대의(大義)였고, 대의를 관철하기 위해 비상통치권(emergency power)을 발동했다.
역사는 그런 링컨을 ‘법 파괴자’가 아니라 ‘노예를 해방한 영웅’으로 기억한다. 국가경영을 위임받은 대통령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래서, 어떤 일을 했느냐”임을 일깨워준다. 대통령이 법의 한계와 부딪히며 행사하는 권한을 뜻하는 ‘대권(presidential prerogative)’이라는 용어의 발상지는 미국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행사한 대권과 위헌 논란을 추적한 리처드 파이어스 컬럼비아대 정치학 교수는 저서 《대통령이라는 자리(The Presidency)》에서 “미국의 대통령들은 법의 제약과 씨름하며 직무를 재발명해왔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발표한 신년사에 이어 엊그제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강조한 “헌법에 따라 권한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는 20여 년 전 유학 시절의 책을 다시 꺼내들게 했다. 문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행사하고 있는 권한이 곳곳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검찰개혁’ 구호 아래 밀어붙이고 있는 일련의 조치는 ‘왜 하필, 지금?’이라는 의문이 꼬리를 잇게 한다. ‘법에 근거해’ 국회 청문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고, ‘법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를 한창 진행 중인 검찰 간부들을 전격 경질한 게 ‘독주(獨走)’ 논란을 빚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하게 잡겠다”며 특정 지역을 겨냥해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고 한 것도 ‘오기의 정치’ 논란을 키우고 있지만, 이 역시 그게 다는 아니다.
정작 궁금한 것은 ‘그래서?’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에 어떤 미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인지가 궁금한데 속 시원한 설명을 들은 바가 없다. ‘정의로운 대한민국’ ‘더불어 잘사는 경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목표를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구호들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게 할, 제대로 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국정의 큰 그림이 구체적이지 않다 보니 정책 목표와 수단이 겉돌고, 상충하는 조치들이 꼬리를 문다. 서울 강남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면서 강남 수요를 분산시켰던 자사고·특목고를 끝내 폐지하겠다는 정책 부정합(不整合)은 작은 단면일 뿐이다. ‘혁신성장’을 표방했지만 집권 4년차에 들어서도록 ‘혁신의 발목을 잡는 규제왕국’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의 우선순위가 아직껏 불분명한 채 ‘개혁’만 외쳐댄 결과는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는 정책 불확실성”(니어재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1월 한국의 경제정책 불확실성지수(EPU)가 257.3으로 기준치 100을 한참 웃돌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조적이다. 노동·연금 등 미래사회를 심각하게 짓누를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 부문을 특정하고는, 강성 노조를 비롯한 기득권집단의 거센 반대를 뚝심있게 헤쳐나가고 있다. 개혁에 반대하는 지역을 찾아가 세 시간 넘게 ‘500 대 1’의 즉석토론을 마다하지 않고, 노조지도자들과 담판을 지어가며 난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모습이 세계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연금개혁은 아직도 큰 진통이 계속되고 있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고민이 무엇이며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여러 조항(72~81조)에 걸쳐 규정하고 있지만, ‘국가의 보전과 계속성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소명(召命)의 조항(66조)이 선행한다. 링컨과 마크롱을 보면서 그 뜻을 곱씹게 되는 요즘이다.
haky@hankyung.com
역사는 그런 링컨을 ‘법 파괴자’가 아니라 ‘노예를 해방한 영웅’으로 기억한다. 국가경영을 위임받은 대통령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래서, 어떤 일을 했느냐”임을 일깨워준다. 대통령이 법의 한계와 부딪히며 행사하는 권한을 뜻하는 ‘대권(presidential prerogative)’이라는 용어의 발상지는 미국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행사한 대권과 위헌 논란을 추적한 리처드 파이어스 컬럼비아대 정치학 교수는 저서 《대통령이라는 자리(The Presidency)》에서 “미국의 대통령들은 법의 제약과 씨름하며 직무를 재발명해왔다”고 진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발표한 신년사에 이어 엊그제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강조한 “헌법에 따라 권한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는 20여 년 전 유학 시절의 책을 다시 꺼내들게 했다. 문 대통령이 ‘헌법에 따라’ 행사하고 있는 권한이 곳곳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어서다. ‘검찰개혁’ 구호 아래 밀어붙이고 있는 일련의 조치는 ‘왜 하필, 지금?’이라는 의문이 꼬리를 잇게 한다. ‘법에 근거해’ 국회 청문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법무장관 임명을 강행하고, ‘법이 부여한 권한에 따라’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를 한창 진행 중인 검찰 간부들을 전격 경질한 게 ‘독주(獨走)’ 논란을 빚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하게 잡겠다”며 특정 지역을 겨냥해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고 한 것도 ‘오기의 정치’ 논란을 키우고 있지만, 이 역시 그게 다는 아니다.
정작 궁금한 것은 ‘그래서?’다. 그렇게 해서, 이 나라에 어떤 미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인지가 궁금한데 속 시원한 설명을 들은 바가 없다. ‘정의로운 대한민국’ ‘더불어 잘사는 경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목표를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런 구호들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게 할, 제대로 된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국정의 큰 그림이 구체적이지 않다 보니 정책 목표와 수단이 겉돌고, 상충하는 조치들이 꼬리를 문다. 서울 강남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면서 강남 수요를 분산시켰던 자사고·특목고를 끝내 폐지하겠다는 정책 부정합(不整合)은 작은 단면일 뿐이다. ‘혁신성장’을 표방했지만 집권 4년차에 들어서도록 ‘혁신의 발목을 잡는 규제왕국’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의 우선순위가 아직껏 불분명한 채 ‘개혁’만 외쳐댄 결과는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키는 정책 불확실성”(니어재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1월 한국의 경제정책 불확실성지수(EPU)가 257.3으로 기준치 100을 한참 웃돌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조적이다. 노동·연금 등 미래사회를 심각하게 짓누를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 부문을 특정하고는, 강성 노조를 비롯한 기득권집단의 거센 반대를 뚝심있게 헤쳐나가고 있다. 개혁에 반대하는 지역을 찾아가 세 시간 넘게 ‘500 대 1’의 즉석토론을 마다하지 않고, 노조지도자들과 담판을 지어가며 난제를 하나씩 해결하는 모습이 세계의 주목을 모으고 있다. 연금개혁은 아직도 큰 진통이 계속되고 있지만, 적어도 대통령의 고민이 무엇이며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여러 조항(72~81조)에 걸쳐 규정하고 있지만, ‘국가의 보전과 계속성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는 소명(召命)의 조항(66조)이 선행한다. 링컨과 마크롱을 보면서 그 뜻을 곱씹게 되는 요즘이다.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