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핑퐁게임…월성1호기 누가 폐쇄했나 [조재길의 경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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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 높다"던 원전 보고서 임의 수정
산업부·한수원·회계법인 책임 떠넘기기
산업부·한수원·회계법인 책임 떠넘기기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용역 보고서’ 초안이 공개된 뒤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당초 “경제성이 높다”던 월성 원전 보고서의 숫자를 고친 뒤 멀쩡하던 원전을 멈춰 세운 꼴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 보면 국내 유일한 원전 운영업체 한국수력원자력의 2018년 6월 15일 이사회는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임시 이사회 개최 여부는 전날 밤까지 예고가 없었고, 다음날에도 장소가 기밀에 부쳐진 끝에 서울 강북의 한 호텔에서 기습적으로 열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직후 열리면서 “정치적 결정”이란 비판이 나왔습니다. 당시 한수원 이사 13명 중 12명이 참석했고, 이 중 11명이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에 찬성했지요. 끝까지 반대했던 사외이사 한 명은 이사회 직후 사임했습니다.
당시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조차 한수원 측 설명만 들었을 뿐 보고서 초안과 수정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경제성 분석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시 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만 수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건 공기업인 한수원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수 년 전 약 7000억원의 안전성 강화 공사까지 완료했기 때문이죠. 일단 2022년 11월까지 운영한 뒤 추가 연장 여부를 다시 결정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수원 이사회는 “월성 1호기를 계속 돌릴수록 회사 손실이 커진다”는 이유로 폐쇄 결정을 내렸던 겁니다. 수 천억원을 들여 정비를 끝마친 설비에 대해 “가동할수록 적자가 발생한다”는 논리를 들이대면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게 원전 전문가들의 설명이지요.
삼덕회계법인이 2018년 5월 10일 작성한 보고서 초안엔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1779억원 이익”이라고 돼 있습니다. 2022년까지만 가동하더라도 1380억원의 현금 유입이, 즉시 정지할 경우 399억원의 현금 유출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원전 이용률을 70% 수준으로 낮게 책정했는데도 이 정도의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봤던 겁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삼덕회계법인 간 3자가 보고서 초안을 검토한 뒤 각종 숫자가 바뀌었습니다. 월성 1호기의 이용률 전망치가 당초 70%에서 60%로, 전력판매단가가 ㎾h당 60.76원에서 48.78원으로 각각 낮아졌지요. 경제성이 확 떨어진 겁니다. 이사회는 수정된 보고서(6월11일 작성) 내용을 토대로 “(정부의) 최근 강화된 규제 환경에서 높은 이용률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일사천리로 조기폐쇄를 강행했습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자력 발전량 감소는 발전원가 증가를 초래하기 때문에 향후 원전 이용률이 떨어질 것으로 전제했다면 발전원가 역시 상승해야 한다”며 “보고서 수정본이 원자력의 전기 판매단가를 발전원가보다 낮게 책정한 것은 논리적으로 심각한 모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긴급 이사회 당시 정재훈 사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정 사장은 “정부 방침에 따라 월성 1호기의 운명이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선 서둘러 폐쇄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이사회를 급하게 연 것은 전날 밤 조기폐쇄에 따른 보상을 해주겠다는 산업부 공문을 수령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지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정 과제인 탈원전을 달성하기 위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 지표를 임의로 왜곡·조작했다는 겁니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습니다. 별도로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에 대해선 감사원이 감사를 진행하고 있고, 다음달 중 결과가 나올 겁니다.
문제가 커지자 책임 소재를 놓고 여러 기관 간 핑퐁 게임이 시작되는 모습입니다.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한수원 및 회계법인을 상대로 경제성 평가의 기준이나 전제를 바꾸라고 압력을 행사 또는 요청한 사실이 없다”며 “회계법인은 객관적인 기준과 사실에 입각해 독립적으로 경제성 평가 입력변수를 결정해 분석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를 결정한 보고서 작성에 산업부가 개입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보고서 초안을 놓고 한수원 및 회계법인과 회의를 열기는 했으나 “회계법인의 관련기관 의견청취에 (수동적으로) 응했을 뿐”이라고도 했습니다. 보고서 내용에 대한 책임은 한수원과 회계법인에 있다는 걸 분명히 했습니다. 다급한 건 한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수원은 별도 설명자료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의 객관성, 중립성, 신뢰성을 위해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했다. 한수원이 삼덕회계법인에 평가입력 전제를 바꾸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회계법인은 합리적 사실과 인터뷰, 실무자 확인 등을 거친 내용에 기초해 ‘자체적으로’ 경제성을 평가했다. 삼덕 외 다른 S회계법인 및 S대학교에도 자문 및 검증을 또 한 번 맡겼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제성 분석에 대한 책임은 작성자인 삼덕회계법인에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정재훈 사장도 전날 밤 페이스북에 띄운 글에서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평가한) 회계법인이 자신들이 세운 기준에 대해 한수원에 의견을 구했고, 우리가 설명한 뒤 (회계법인이) 받아들인 게 전부”라고 또 한 번 강조했습니다.
삼덕회계법인도 이런 논란을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경제성 평가 보고서 도입부에 “경제성 평가 절차 및 범위에 대해 이 업무 요청자인 한수원과 ‘합의’했다. 회사가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성을 평가했다. 이 제시 자료에 대한 증빙 확인 및 외부 조회 등을 위한 어떠한 절차도 수행하지 않았다.”고 명시했으니까요. 특히 보고서 수정본에선 ‘한수원이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성 평가 업무를 수행했다’ 등 부분에 이례적으로 붉은 색으로 강조 표시까지 해놨습니다. 이 내용만 보면 회계법인에 책임을 묻긴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탈원전은 국가의 에너지 백년대계에서 핵심적인 아젠다입니다. 전체 에너지 중 95%를 수입하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이론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번 월성 1호기 보고서 수정 논란은, 1년 6개월 전의 조기폐쇄 결정이 탈원전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느냐는 의구심을 키우게 했습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 결정에 대해선 추후 검찰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일부 숫자를 임의로 수정해 막대한 혈세를 낭비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죠. 산업부와 한수원, 회계법인 모두 자유롭지 않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돌이켜 보면 국내 유일한 원전 운영업체 한국수력원자력의 2018년 6월 15일 이사회는 정상적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임시 이사회 개최 여부는 전날 밤까지 예고가 없었고, 다음날에도 장소가 기밀에 부쳐진 끝에 서울 강북의 한 호텔에서 기습적으로 열렸습니다. 공교롭게도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직후 열리면서 “정치적 결정”이란 비판이 나왔습니다. 당시 한수원 이사 13명 중 12명이 참석했고, 이 중 11명이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에 찬성했지요. 끝까지 반대했던 사외이사 한 명은 이사회 직후 사임했습니다.
당시 이사회에 참석한 이사들조차 한수원 측 설명만 들었을 뿐 보고서 초안과 수정본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경제성 분석의 타당성’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시 이사들이 거수기 역할만 수행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건 공기업인 한수원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수 년 전 약 7000억원의 안전성 강화 공사까지 완료했기 때문이죠. 일단 2022년 11월까지 운영한 뒤 추가 연장 여부를 다시 결정할 예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수원 이사회는 “월성 1호기를 계속 돌릴수록 회사 손실이 커진다”는 이유로 폐쇄 결정을 내렸던 겁니다. 수 천억원을 들여 정비를 끝마친 설비에 대해 “가동할수록 적자가 발생한다”는 논리를 들이대면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게 원전 전문가들의 설명이지요.
삼덕회계법인이 2018년 5월 10일 작성한 보고서 초안엔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하는 것이 1779억원 이익”이라고 돼 있습니다. 2022년까지만 가동하더라도 1380억원의 현금 유입이, 즉시 정지할 경우 399억원의 현금 유출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원전 이용률을 70% 수준으로 낮게 책정했는데도 이 정도의 막대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봤던 겁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삼덕회계법인 간 3자가 보고서 초안을 검토한 뒤 각종 숫자가 바뀌었습니다. 월성 1호기의 이용률 전망치가 당초 70%에서 60%로, 전력판매단가가 ㎾h당 60.76원에서 48.78원으로 각각 낮아졌지요. 경제성이 확 떨어진 겁니다. 이사회는 수정된 보고서(6월11일 작성) 내용을 토대로 “(정부의) 최근 강화된 규제 환경에서 높은 이용률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일사천리로 조기폐쇄를 강행했습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자력 발전량 감소는 발전원가 증가를 초래하기 때문에 향후 원전 이용률이 떨어질 것으로 전제했다면 발전원가 역시 상승해야 한다”며 “보고서 수정본이 원자력의 전기 판매단가를 발전원가보다 낮게 책정한 것은 논리적으로 심각한 모순”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긴급 이사회 당시 정재훈 사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정 사장은 “정부 방침에 따라 월성 1호기의 운명이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선 서둘러 폐쇄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이사회를 급하게 연 것은 전날 밤 조기폐쇄에 따른 보상을 해주겠다는 산업부 공문을 수령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지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정 과제인 탈원전을 달성하기 위해 월성 1호기의 경제성 지표를 임의로 왜곡·조작했다는 겁니다.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습니다. 별도로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에 대해선 감사원이 감사를 진행하고 있고, 다음달 중 결과가 나올 겁니다.
문제가 커지자 책임 소재를 놓고 여러 기관 간 핑퐁 게임이 시작되는 모습입니다.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한수원 및 회계법인을 상대로 경제성 평가의 기준이나 전제를 바꾸라고 압력을 행사 또는 요청한 사실이 없다”며 “회계법인은 객관적인 기준과 사실에 입각해 독립적으로 경제성 평가 입력변수를 결정해 분석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를 결정한 보고서 작성에 산업부가 개입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보고서 초안을 놓고 한수원 및 회계법인과 회의를 열기는 했으나 “회계법인의 관련기관 의견청취에 (수동적으로) 응했을 뿐”이라고도 했습니다. 보고서 내용에 대한 책임은 한수원과 회계법인에 있다는 걸 분명히 했습니다. 다급한 건 한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수원은 별도 설명자료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의 객관성, 중립성, 신뢰성을 위해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했다. 한수원이 삼덕회계법인에 평가입력 전제를 바꾸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회계법인은 합리적 사실과 인터뷰, 실무자 확인 등을 거친 내용에 기초해 ‘자체적으로’ 경제성을 평가했다. 삼덕 외 다른 S회계법인 및 S대학교에도 자문 및 검증을 또 한 번 맡겼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제성 분석에 대한 책임은 작성자인 삼덕회계법인에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정재훈 사장도 전날 밤 페이스북에 띄운 글에서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평가한) 회계법인이 자신들이 세운 기준에 대해 한수원에 의견을 구했고, 우리가 설명한 뒤 (회계법인이) 받아들인 게 전부”라고 또 한 번 강조했습니다.
삼덕회계법인도 이런 논란을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경제성 평가 보고서 도입부에 “경제성 평가 절차 및 범위에 대해 이 업무 요청자인 한수원과 ‘합의’했다. 회사가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성을 평가했다. 이 제시 자료에 대한 증빙 확인 및 외부 조회 등을 위한 어떠한 절차도 수행하지 않았다.”고 명시했으니까요. 특히 보고서 수정본에선 ‘한수원이 제시한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성 평가 업무를 수행했다’ 등 부분에 이례적으로 붉은 색으로 강조 표시까지 해놨습니다. 이 내용만 보면 회계법인에 책임을 묻긴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탈원전은 국가의 에너지 백년대계에서 핵심적인 아젠다입니다. 전체 에너지 중 95%를 수입하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이론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번 월성 1호기 보고서 수정 논란은, 1년 6개월 전의 조기폐쇄 결정이 탈원전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느냐는 의구심을 키우게 했습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 결정에 대해선 추후 검찰 수사가 시작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일부 숫자를 임의로 수정해 막대한 혈세를 낭비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죠. 산업부와 한수원, 회계법인 모두 자유롭지 않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