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미국은 '점묘주의 제국'…"세계를 점으로 연결해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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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국의 연대기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 / 김현정 옮김
글항아리 / 720쪽 / 3만5000원
대니얼 임머바르 지음 / 김현정 옮김
글항아리 / 720쪽 / 3만5000원
“미제(美帝)를 타도하자”고 북한은 주장한다.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토대로 정치·경제·군사적 지배권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로 확장시키려는 침략적 패권주의 국가라는 말이다. 과연 그런가. 미국을 포함해 20세기 전반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등에서 식민지를 경영했던 영국, 프랑스, 일본 등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미국은 제국인가.
대니얼 임머바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미국, 제국의 연대기》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제국은 단순히 비난조의 말이 아니다. 이는 좋든 나쁘든 전초기지와 식민지를 거느린 나라를 묘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며 “제국은 한 나라의 특성이 아니라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봐야 한다”며 “미국은 명백히 제국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고 강조한다.
이유는 이렇다. 미국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 영토의 일부, 특히 수백만 명의 인구를 포함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괌, 미국령 사모아와 버진아일랜드, 북마리아나 제도, 푸에르토리코 외에도 하울랜드섬을 비롯한 수많은 외딴섬이 미국의 지배 아래에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에 800여 개의 해외 군사기지를 갖고 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미국 외의 모든 나라가 가진 해외 기지를 다 합쳐도 30개 정도인 점에 비춰 미국은 엄청난 제국이다.
다만 거대한 영토의 식민지를 거느렸던 예전과 달리 전 세계를 점으로 연결해 경영한다는 점에서 ‘점묘주의 제국’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같은 ‘작은 영토’는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이자 주요 활동무대이며, 비축기지일 뿐만 아니라 망루인 동시에 연구실이라는 것이다.
미국인 대부분은 미국이 제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거나 외면한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로고 지도(logo map)’는 그런 인식의 배경을 형성한다. 로고지도는 북미 대륙으로 미국의 영토를 한정한 지도다. 하지만 1941년 무렵 미국 영토였던 곳까지 포함한 ‘확장된 미국 영토’를 표시한 지도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알래스카, 하와이, 괌, 사모아, 푸에르토리코, 버진아일랜드,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섬들이 모두 포함된 지도다.
대규모 식민지든 작은 섬이든 모두 배제한 로고지도는 진실을 호도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로고지도만 보면 미국은 정치적으로 균일한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각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 두 영역으로 나뉜 분할 국가다. 북미 본토에서는 각 주의 시민들이 같은 법을 적용받지만 전 세계에 점으로 퍼져 있는 미국령 섬과 기지들에선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지켜야 할 법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책은 크게 미국 건국 이후의 영토확장 과정을 다룬 1부와 점묘주의 제국을 다룬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선 건국 이후 미국이 북미 대륙 동부에서 서부로 영토를 넓힌 데서부터 해외 식민지 경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상세하게 풀어놓는다. 북미 원주민 소유지 강탈과 식민지 획득을 위해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벌인 전쟁들, 과도한 농지개발로 손상된 지력을 회복시켜 줄 해조분(바닷새 배설물)을 얻기 위해 차지했던 카리브해 및 태평양 연안의 100여 개 섬과 여기에 건설된 군사기지, 이곳에서의 핵실험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농업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이루고 이를 토대로 키운 군사력을 기반으로 기존 식민 열강들과 경쟁에서 이겨 마침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미국이 식민 정책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원격조종하는 점묘주의 제국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다뤘다. 미국은 1867년 알래스카를 점유했고, 1898~1900년에는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 등 스페인의 해외 영토 대부분을 전쟁을 통해 차지했다. 하와이섬과 웨이크섬, 사모아도 합병했다. 1917년에는 버진아일랜드를 사들였다. 2차대전 당시까지 확장된 영토들은 전체 미국 영토의 5분의 1, 인구는 1억3500만 명에 달했다.
그랬던 미국이 2차대전 이후에는 식민지를 포기한다. 최대 식민지 필리핀은 독립했고,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주로 승격됐다. 미국은 왜 권력의 정점에서 식민지 제국의 모습을 감추려고 했을까.
저자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는 기술 발전이다. 2차대전 중 미국은 그때까지 식민지에서 조달했던 원료들을 대신할 수 있는 합성소재를 개발했다. 플라스틱, 합성고무 등 수많은 인공물이 기존의 열대 작물로 만든 제품을 대체했다. 또한 비행기, 라디오, DDT(살충제), 무선통신 발전 덕분에 굳이 영토를 합병하지 않고도 제국의 이점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점묘주의를 완성시킨 또 하나의 공신은 표준화였다. 기계 부품인 나사부터 도로표지판과 영어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정치적 경계를 넘어 자국에서 만든 대다수 상품과 관행을 세계적으로 표준화함으로써 식민지화를 세계화로 대체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대니얼 임머바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미국, 제국의 연대기》에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는 “제국은 단순히 비난조의 말이 아니다. 이는 좋든 나쁘든 전초기지와 식민지를 거느린 나라를 묘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며 “제국은 한 나라의 특성이 아니라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봐야 한다”며 “미국은 명백히 제국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고 강조한다.
이유는 이렇다. 미국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 영토의 일부, 특히 수백만 명의 인구를 포함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다. 괌, 미국령 사모아와 버진아일랜드, 북마리아나 제도, 푸에르토리코 외에도 하울랜드섬을 비롯한 수많은 외딴섬이 미국의 지배 아래에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에 800여 개의 해외 군사기지를 갖고 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미국 외의 모든 나라가 가진 해외 기지를 다 합쳐도 30개 정도인 점에 비춰 미국은 엄청난 제국이다.
다만 거대한 영토의 식민지를 거느렸던 예전과 달리 전 세계를 점으로 연결해 경영한다는 점에서 ‘점묘주의 제국’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같은 ‘작은 영토’는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이자 주요 활동무대이며, 비축기지일 뿐만 아니라 망루인 동시에 연구실이라는 것이다.
미국인 대부분은 미국이 제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거나 외면한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로고 지도(logo map)’는 그런 인식의 배경을 형성한다. 로고지도는 북미 대륙으로 미국의 영토를 한정한 지도다. 하지만 1941년 무렵 미국 영토였던 곳까지 포함한 ‘확장된 미국 영토’를 표시한 지도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알래스카, 하와이, 괌, 사모아, 푸에르토리코, 버진아일랜드, 태평양과 카리브해의 섬들이 모두 포함된 지도다.
대규모 식민지든 작은 섬이든 모두 배제한 로고지도는 진실을 호도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로고지도만 보면 미국은 정치적으로 균일한 공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각 서로 다른 법이 적용되는 두 영역으로 나뉜 분할 국가다. 북미 본토에서는 각 주의 시민들이 같은 법을 적용받지만 전 세계에 점으로 퍼져 있는 미국령 섬과 기지들에선 누릴 수 있는 권리와 지켜야 할 법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책은 크게 미국 건국 이후의 영토확장 과정을 다룬 1부와 점묘주의 제국을 다룬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선 건국 이후 미국이 북미 대륙 동부에서 서부로 영토를 넓힌 데서부터 해외 식민지 경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상세하게 풀어놓는다. 북미 원주민 소유지 강탈과 식민지 획득을 위해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등에서 벌인 전쟁들, 과도한 농지개발로 손상된 지력을 회복시켜 줄 해조분(바닷새 배설물)을 얻기 위해 차지했던 카리브해 및 태평양 연안의 100여 개 섬과 여기에 건설된 군사기지, 이곳에서의 핵실험 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농업을 기반으로 산업화를 이루고 이를 토대로 키운 군사력을 기반으로 기존 식민 열강들과 경쟁에서 이겨 마침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미국이 식민 정책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원격조종하는 점묘주의 제국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다뤘다. 미국은 1867년 알래스카를 점유했고, 1898~1900년에는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괌 등 스페인의 해외 영토 대부분을 전쟁을 통해 차지했다. 하와이섬과 웨이크섬, 사모아도 합병했다. 1917년에는 버진아일랜드를 사들였다. 2차대전 당시까지 확장된 영토들은 전체 미국 영토의 5분의 1, 인구는 1억3500만 명에 달했다.
그랬던 미국이 2차대전 이후에는 식민지를 포기한다. 최대 식민지 필리핀은 독립했고, 하와이와 알래스카는 주로 승격됐다. 미국은 왜 권력의 정점에서 식민지 제국의 모습을 감추려고 했을까.
저자는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는 기술 발전이다. 2차대전 중 미국은 그때까지 식민지에서 조달했던 원료들을 대신할 수 있는 합성소재를 개발했다. 플라스틱, 합성고무 등 수많은 인공물이 기존의 열대 작물로 만든 제품을 대체했다. 또한 비행기, 라디오, DDT(살충제), 무선통신 발전 덕분에 굳이 영토를 합병하지 않고도 제국의 이점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점묘주의를 완성시킨 또 하나의 공신은 표준화였다. 기계 부품인 나사부터 도로표지판과 영어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정치적 경계를 넘어 자국에서 만든 대다수 상품과 관행을 세계적으로 표준화함으로써 식민지화를 세계화로 대체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