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일제잔재 청산과 지역의 역사성·정체성 회복을 위해 고유한 행정지명 복원 절차를 추진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식민 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일본이 1914년 대대적으로 '창지개명'을 통해 우리 고유의 지명을 말살한 것을 되찾기 위해서다.


도는 이를 위해 도내 31개 시·군을 대상으로 행정구역 명칭 변경 의사 여부를 수렴중이라고 16일 발표했다.


도는 도내 398개 읍·면·동을 대상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명칭 변경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이 중 40%인 160곳이 당시 고유의 명칭을 잃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본이 일제강점기 우리 고유의 정서와 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창씨개명 뿐만 아니라 창지개명도 단행한 것이다.


일본은 1914년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우리 고유의 지명을 변경하는 창지개명을 단행했다. 이 시기 전국 330여개 군이 220개 군으로 통합됐고, 경기도는 36개에서 20개 군으로 축소됐다.

도는 전문여론조사 기관인 (주)케이스탯리서치의 도움을 받아 2011년 한국학중앙연구원 동아시아역사연구소에서 발간한 ‘경기도 역사 지명사전(京畿道 歷史 地名事典)’에 수록된 읍․면․동의 지명 변천사를 분석해 정의하고, 관련 정보를 범주형 자료로 처리한 후 계량적 분포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과거 지명이 현재까지 유지된 읍․면․동은 137곳(35%)으로 나타났고, 해방 전이나 해방 후를 포함해 지명이 변경된 읍․면․동은 228곳으로 분석됐다.

일제강점기 변경된 읍․면․동 지명은 160곳으로 전체의 40%나 됐다. 그 외에 일제강점기 이전 또는 해방이후 행정구역 통합․분리 조정으로 변경된 읍․면․동은 68곳(17%)이었고, 33곳(8%)은 신규 행정구역이었다.

유형별로는 두 지명에서 한 자씩 선택해 합친 ‘합성지명’이 121곳으로 가장 많았다. 대표적인 합성지명 사례는 성남시 서현동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일제는 둔서촌, 양현리, 통로동 등을 병합하면서 한 글자씩 따 서현동으로 변경했다. 이 외에 수원시 구운동, 성남시 분당동, 용인시 신갈동, 화성시 매송면 등도 두 곳 이상의 지명을 합성해 만든 지명이다.

식민 통치의 편리성을 위해 숫자나 방위, 위치 등을 사용해 변경한 사례도 29곳이나 됐다. 광주시 중부면과 연천군 중면이 이에 해당된다. 광주시 중부면은 1914년 군내면과 세촌면을 통합하면서 방위에 따른 명칭인 중부면으로 개칭됐다. 연천군 중면은 연천읍치의 북쪽이었던 북면을 ‘연천군의 중앙에 위치한다’하여 중면으로 개칭됐다.

또 기존 지명을 삭제한 후 한자화 한 지명도 3곳이나 있다. 부천시 심곡동이 대표적으로, 일제는 1914년 조선시대 고유지명인 먹적골, 벌말, 진말을 병합하면서, 심곡동(深谷洞)으로 변경했다. 심곡은 원래 토박이말로 ‘깊은 구지’라는 뜻이다.

특히 지명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향토 정서가 왜곡된 사례도 있었다. 안성시 일죽면이 대표적이다. 일제는 죽산군을 폐지하며 남일면, 남이면, 북일면, 북이면, 제촌면을 안성군의 죽일면으로 만들었으나, 듣기에 따라서는 욕이었기 때문에 죽일면은 결국 이듬해 일죽면으로 변경됐다.

이 밖에 현재는 문제없으나 일제 당시 일본식으로 개칭됐던 사례도 있었다. 일본이 시가지 지명에 일본 도시에 붙이는 ‘정(町 마치)’을 붙였던 것인데, 수원시에 11곳이 있었다.

조선시대 고등촌이었던 수원시 고등동은 1914년 고등리가 되었다가 1936년 일본식 명칭인 고등정(高等町)으로 개칭됐다. 수원시 매교동, 매산동, 영화동, 우만동, 인계동, 지동 등도 모두 일제강점기에 ‘정(町 마치)’을 붙였었다.

‘경기도 역사 지명사전’ 발간에 참여한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우리 조상들은 골짜기를 가장 이상적인 마을의 입지로 생각해서 마을 이름에 골짜기를 의미하는 ~골, ~곡(谷), ~동(洞), ~실 등을 많이 붙였으나, 이런 고유 지명들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며 “앞으로 지명(地名) 행정에 우리의 역사지명이 연구되고 반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곽윤석 도 홍보기획관은 “반도체 수출규제 문제로 한일관계가 갈등국면에 놓인 이 시점에서 고유 지명이 사라졌던 역사적 치욕을 바라보며, 진정한 민족의 독립과 문화 창달의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음을 느끼게 된다”며 “앞으로 도는 시․군과 긴밀히 협력하여, 사라지거나 왜곡된 우리의 고유 지명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수원=윤상연 기자 syyoon11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