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동원 코엑스 사장, CES로 도시 전체가 특수 누리듯 관광·쇼핑·전시 연계사업 추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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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광고맨서 '마이스맨' 변신
"기업 마케팅 돕는 것은 똑같죠"
영어에 빠졌던 안동 소년
해외 광고 전문가 자리매김
코엑스 사장으로 제2의 인생
"기업 마케팅 돕는 것은 똑같죠"
영어에 빠졌던 안동 소년
해외 광고 전문가 자리매김
코엑스 사장으로 제2의 인생
“작년에 새 식구가 된 며느리가 자신이 사준 넥타이를 꼭 매고 나가라고 하더군요.”
코트를 벗고 자리에 앉는 이동원 코엑스 사장(60)에게 “자주색 넥타이가 멋지다”는 인사를 건넸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초보 시아버지의 며느리 자랑이 이어졌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할 때도 며느리 이야기만 나오면 어색하던 표정이 금세 인자한 아빠 미소와 함께 바뀌었다.
32년 경력의 광고 전문가인 이 사장은 2년 전인 2018년 제17대 코엑스 사장에 취임했다. 20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은 그는 40여 년 코엑스 역사상 광고회사 출신 첫 사장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선임 당시 화제를 낳았다. 그는 “전시장은 기업의 마케팅 공간이라는 점에서 광고와 본질적으로 닮은 꼴”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포스코사거리와 지하철 9호선 삼성중앙역 사이에 있는 남도음식 전문점 시골진지상에서 이 사장을 만났다. 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을 둘러보고 이틀 전 귀국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라스베이거스 도시 전체가 CES를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더군요. CES 덕분에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등 인근 지역까지 특수를 누리는 등 전시컨벤션산업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곧 대만으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그는 “올해는 정말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며 기대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학창시절
음식이 하나둘 들어오자 이 사장은 “여의도와 마포에 근무하던 10년 전부터 제철 음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즐겨 찾는 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남도 각지에서 올라온 신선한 식재료에 조미료를 넣지 않고 요리를 해 언제 먹어도 속이 편하다”는 평을 내놨다.
이 사장의 고향은 경북 안동. ‘황혼’ ‘청포도’ ‘광야’로 유명한 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가 태어난 도산면 원천리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스마트폰에 저장된 안동 본가 사진부터 보여줬다. 솟을대문에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나뉜 300년 고택에서 명망가의 내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릴 적엔 여느 아이들처럼 밖에 나가서 놀기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였죠.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학창시절은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이 사장은 중학생 시절 영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좋았지만 영어를 통해 알게 된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가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영어 실력을 묻자 “원어민처럼 유창하지는 않지만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는 겸손한 답변이 돌아왔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인기가 높았던 증권회사, 상사가 아니라 광고회사를 택했다. “대기업은 입사지원서에 가고 싶은 계열사와 부서를 3지망까지 적도록 돼 있었는데 1지망에 ‘LG애드(HS애드 전신) 해외광고’라고만 쓰고 나머지는 모두 비운 채 냈습니다.”
대화를 한참 주고받는 사이 제철 남도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통영 생굴, 살이 꽉 찬 벌교 꼬막, 신안 은갈치, 법성포 굴비 등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이 밥상을 가득 메웠다. 이 사장은 옆에 놓은 작은 접시를 가리키며 “쪽파를 젓갈로 담가 2년 동안 숙성시킨 파김치인데, 맛이 일품”이라고 귀띔했다.
32년 경력 광고맨…별명은 ‘해외통’
1986년 LG애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사장은 입사와 동시에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당시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기업마다 해외 광고를 시작하던 때였다. 그가 소속된 국제팀은 ‘Go for the gold, GoldStar(금메달을 향해 가자. 골드스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등 지금도 국내 광고사에 역작으로 꼽히는 카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사장은 광고회사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1995년을 꼽았다. “구본무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룹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꾼 때였습니다. 지금도 사용하는 빨간색 배경의 LG그룹 로고 ‘face of the future’를 미국 랜도사와 함께 1년 동안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크리에이티브한 기획력과 마케팅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죠.”
이 사장이 묵은지에 생굴을 얹어 먹어보라고 권했다. 부드러운 생굴 향과 아삭함이 살아있는 묵은지의 깊은 맛이 금세 입안 전체에 퍼졌다.
그는 LG애드 시절 해외통으로 불렸다. 1996년 30대 후반 젊은 나이에 뉴욕지사장으로 발령받아 2004년까지 9년간 근무했다. 2005년 본사로 돌아온 뒤에도 6년간 해외 지사 열 곳을 총괄하는 글로벌본부장을 지냈다. 2011년 미주사업부장을 맡아 또다시 뉴욕으로 나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에 있는 지사를 관리했다.
이 사장은 자신을 “인복이 많은 행운아”라고 했다. “기획부터 디자인, 카피 등 전문 분야가 나뉜 광고는 혼자만 잘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상명하달식 소통이 아니라 수평적 협력이 중요합니다. 전시장도 마찬가지예요. 직원들은 물론 시설을 이용하는 전시 주최자와 국제회의 기획사 등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에게서 협력의 가치를 중시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면모가 느껴졌다.
광고전문가에서 전시컨벤션센터 사장으로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 편이죠. 미국에 근무할 때도 한식보다는 현지 음식을 더 즐겨 먹었습니다.” 갈치조림을 맛본 그는 앞에 놓인 절인 무를 얇게 썰어 담은 접시로 젓가락을 옮겼다. 절인 무를 하나 집어든 그는 “동치미에 쪽파를 넣은 물김치나 절인 무로 입가심을 하면 메인 요리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팁을 알려줬다.
2018년 3월 이 사장은 32년 동안 몸담았던 HS애드를 나왔다. 그리고 17대 코엑스 사장 공모에 도전했다.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전시컨벤션센터 사장에 도전한 배경은 뭘까. 이 사장은 “광고나 전시장이나 사람과 정보, 문화를 서로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만의 필살기는 무엇이었을까. “최종 면접에서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코엑스의 시설과 행사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질과 장점을 강하게 어필한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3년 임기의 3분의 2를 보낸 이 사장은 그동안 조직 안정화에 주력했다. 조직이 불안하면 어떤 일을 해도 성과를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취임 2주 만에 100여 명 전 직원의 이름을 외우고 점심, 저녁마다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이 사장은 “대리급 이하 직원을 프레시보드 멤버로 지정해 2주마다 열리는 임원회의에서 구성원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하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코엑스의 미래 비전은 복합문화공간
코엑스는 이 사장이 취임한 2018년 영업이익 30여억원의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이보다 실적이 좋아 다시 한번 최고 기록 경신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코엑스에 대기업의 조직문화 글로벌 감각, 크리에이티브한 DNA를 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코엑스와 지하 코엑스몰을 하나로 묶어 복합문화공간 기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이 사장은 “CES 등 마이스로 연간 98억달러(약 11조3000억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알 수 있듯 관광과 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요소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 같은 구상은 ‘팀 코엑스’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2018년 신설한 팀 코엑스는 25억원이 들어가는 디지털 사이니지 사업 등 전시장 임대, 행사 개최 외에 새로운 부대사업을 발굴, 추진하고 있다. 이 사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코엑스의 두 배가 넘는 10만㎡ 규모 메가전시장이 들어서는 잠실 국제교류복합지구 등 코엑스는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며 기존 틀에서 벗어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는 시도를 통해 변화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로 평가받고 싶은지 물었다. “사장은 3년 임기 동안 봉사하고 가는 자리가 아닐까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단기 성과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더디더라도 5년, 10년 뒤를 보는 선견지명을 갖춘 고마운 선배였다고 평가받고 싶습니다.”
■ 코엑스는
전시장과 회의시설을 갖춘 국내 최초의 전시컨벤션센터다. 1979년 한국무역협회가 100% 출자해 설립했다. 지하에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코엑스몰 그리고 인근에 특급호텔, 백화점, 면세점, 도심공항터미널, 영화관, 아쿠아리움 등의 시설을 갖춰 국내 최고 복합 마이스 시설로 꼽힌다. 1988년과 1997년 두 차례 확장공사를 거쳐 4개 전시홀(3만6007㎡), 50개 회의실(1만1164㎡)을 갖췄다. 연간 200회 이상의 전시회와 2500회가 넘는 국제회의 등 컨벤션, 이벤트가 열린다. 직원은 100명, 시설 임대 외에 전시회와 국제회의 등 각종 행사를 직접 개최한다.
■ 이동원 코엑스 사장 약력
△1959년 경북 안동 출생
△1978년 대구 대건고 졸업
△1984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5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수료
△1986년 LG애드 입사
△1996년 LG애드 뉴욕지사장
△2005년 LG애드 글로벌본부장(상무)
△2011년 LG애드 미주사업부장
△2014년 HS애드 Account Service 부문장(전무)
△2018년~ 제17대 코엑스 대표이사 사장
■ 이동원 사장의 단골집 시골진지상 고등어 묵은지·보리굴비…배우들도 즐겨 찾아
서울 삼성동에서 2002년부터 19년째 영업 중인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포스코사거리에서 서울지하철 9호선 삼성중앙역 방면으로 가는 길목 중간 지점에 있다. 대로변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연예계 대표 미식가인 배우 차승원 씨와 정준호 씨가 즐겨 찾는 곳이다.
경남 통영, 전남 해남과 신안, 제주 등지에서 올라온 식재료로 만든 요리는 정식과 조림, 탕, 계절음식으로 나뉜다. 정식은 보리굴비와 갈치구이, 간장게장이, 조림은 갈치와 병어, 묵은지를 넣고 끓인 고등어묵은지가 유명하다. 홍어탕과 민어탕, 복어탕, 낙지연포탕 등 탕 요리는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한우육전과 홍어전, 굴전, 조기전 등 전 요리는 조림과 탕에 곁들여 먹으면 안성맞춤이다. 참홍어와 간자미, 전어, 생굴, 참꼬막, 과메기 등 해물은 철에 따라 회와 구이, 무침 등 다양한 형태로 맛볼 수 있다.
시골진지상은 파김치 등 밑반찬 맛집으로 유명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은은한 감칠맛의 비결은 16시간 넘게 끓인 만능간장. 모든 요리의 간을 조미료가 아니라 간장으로 한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
코트를 벗고 자리에 앉는 이동원 코엑스 사장(60)에게 “자주색 넥타이가 멋지다”는 인사를 건넸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초보 시아버지의 며느리 자랑이 이어졌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할 때도 며느리 이야기만 나오면 어색하던 표정이 금세 인자한 아빠 미소와 함께 바뀌었다.
32년 경력의 광고 전문가인 이 사장은 2년 전인 2018년 제17대 코엑스 사장에 취임했다. 20 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은 그는 40여 년 코엑스 역사상 광고회사 출신 첫 사장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선임 당시 화제를 낳았다. 그는 “전시장은 기업의 마케팅 공간이라는 점에서 광고와 본질적으로 닮은 꼴”이라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 삼성동 포스코사거리와 지하철 9호선 삼성중앙역 사이에 있는 남도음식 전문점 시골진지상에서 이 사장을 만났다. 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을 둘러보고 이틀 전 귀국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라스베이거스 도시 전체가 CES를 위해 유기적으로 협력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더군요. CES 덕분에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 등 인근 지역까지 특수를 누리는 등 전시컨벤션산업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곧 대만으로 출국할 예정이라는 그는 “올해는 정말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며 기대에 찬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학창시절
음식이 하나둘 들어오자 이 사장은 “여의도와 마포에 근무하던 10년 전부터 제철 음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즐겨 찾는 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남도 각지에서 올라온 신선한 식재료에 조미료를 넣지 않고 요리를 해 언제 먹어도 속이 편하다”는 평을 내놨다.
이 사장의 고향은 경북 안동. ‘황혼’ ‘청포도’ ‘광야’로 유명한 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가 태어난 도산면 원천리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 이야기가 나오자 스마트폰에 저장된 안동 본가 사진부터 보여줬다. 솟을대문에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나뉜 300년 고택에서 명망가의 내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릴 적엔 여느 아이들처럼 밖에 나가서 놀기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였죠.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학창시절은 대구에서 보냈습니다.”
이 사장은 중학생 시절 영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는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도 좋았지만 영어를 통해 알게 된 다른 나라의 역사, 문화가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회상했다. 영어 실력을 묻자 “원어민처럼 유창하지는 않지만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는 겸손한 답변이 돌아왔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그는 당시 인기가 높았던 증권회사, 상사가 아니라 광고회사를 택했다. “대기업은 입사지원서에 가고 싶은 계열사와 부서를 3지망까지 적도록 돼 있었는데 1지망에 ‘LG애드(HS애드 전신) 해외광고’라고만 쓰고 나머지는 모두 비운 채 냈습니다.”
대화를 한참 주고받는 사이 제철 남도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통영 생굴, 살이 꽉 찬 벌교 꼬막, 신안 은갈치, 법성포 굴비 등 먹음직스러운 요리들이 밥상을 가득 메웠다. 이 사장은 옆에 놓은 작은 접시를 가리키며 “쪽파를 젓갈로 담가 2년 동안 숙성시킨 파김치인데, 맛이 일품”이라고 귀띔했다.
32년 경력 광고맨…별명은 ‘해외통’
1986년 LG애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사장은 입사와 동시에 굵직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당시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기업마다 해외 광고를 시작하던 때였다. 그가 소속된 국제팀은 ‘Go for the gold, GoldStar(금메달을 향해 가자. 골드스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등 지금도 국내 광고사에 역작으로 꼽히는 카피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사장은 광고회사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1995년을 꼽았다. “구본무 부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룹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꾼 때였습니다. 지금도 사용하는 빨간색 배경의 LG그룹 로고 ‘face of the future’를 미국 랜도사와 함께 1년 동안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크리에이티브한 기획력과 마케팅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죠.”
이 사장이 묵은지에 생굴을 얹어 먹어보라고 권했다. 부드러운 생굴 향과 아삭함이 살아있는 묵은지의 깊은 맛이 금세 입안 전체에 퍼졌다.
그는 LG애드 시절 해외통으로 불렸다. 1996년 30대 후반 젊은 나이에 뉴욕지사장으로 발령받아 2004년까지 9년간 근무했다. 2005년 본사로 돌아온 뒤에도 6년간 해외 지사 열 곳을 총괄하는 글로벌본부장을 지냈다. 2011년 미주사업부장을 맡아 또다시 뉴욕으로 나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에 있는 지사를 관리했다.
이 사장은 자신을 “인복이 많은 행운아”라고 했다. “기획부터 디자인, 카피 등 전문 분야가 나뉜 광고는 혼자만 잘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상명하달식 소통이 아니라 수평적 협력이 중요합니다. 전시장도 마찬가지예요. 직원들은 물론 시설을 이용하는 전시 주최자와 국제회의 기획사 등과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에게서 협력의 가치를 중시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의 면모가 느껴졌다.
광고전문가에서 전시컨벤션센터 사장으로
“음식은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는 편이죠. 미국에 근무할 때도 한식보다는 현지 음식을 더 즐겨 먹었습니다.” 갈치조림을 맛본 그는 앞에 놓인 절인 무를 얇게 썰어 담은 접시로 젓가락을 옮겼다. 절인 무를 하나 집어든 그는 “동치미에 쪽파를 넣은 물김치나 절인 무로 입가심을 하면 메인 요리의 맛과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팁을 알려줬다.
2018년 3월 이 사장은 32년 동안 몸담았던 HS애드를 나왔다. 그리고 17대 코엑스 사장 공모에 도전했다.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전시컨벤션센터 사장에 도전한 배경은 뭘까. 이 사장은 “광고나 전시장이나 사람과 정보, 문화를 서로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만의 필살기는 무엇이었을까. “최종 면접에서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코엑스의 시설과 행사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릴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질과 장점을 강하게 어필한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3년 임기의 3분의 2를 보낸 이 사장은 그동안 조직 안정화에 주력했다. 조직이 불안하면 어떤 일을 해도 성과를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취임 2주 만에 100여 명 전 직원의 이름을 외우고 점심, 저녁마다 직원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이 사장은 “대리급 이하 직원을 프레시보드 멤버로 지정해 2주마다 열리는 임원회의에서 구성원의 의견을 가감 없이 전달하도록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코엑스의 미래 비전은 복합문화공간
코엑스는 이 사장이 취임한 2018년 영업이익 30여억원의 역대 최고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이보다 실적이 좋아 다시 한번 최고 기록 경신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코엑스에 대기업의 조직문화 글로벌 감각, 크리에이티브한 DNA를 심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코엑스와 지하 코엑스몰을 하나로 묶어 복합문화공간 기능을 확대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이 사장은 “CES 등 마이스로 연간 98억달러(약 11조3000억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알 수 있듯 관광과 쇼핑,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요소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 같은 구상은 ‘팀 코엑스’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2018년 신설한 팀 코엑스는 25억원이 들어가는 디지털 사이니지 사업 등 전시장 임대, 행사 개최 외에 새로운 부대사업을 발굴, 추진하고 있다. 이 사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코엑스의 두 배가 넘는 10만㎡ 규모 메가전시장이 들어서는 잠실 국제교류복합지구 등 코엑스는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며 기존 틀에서 벗어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하는 시도를 통해 변화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로 평가받고 싶은지 물었다. “사장은 3년 임기 동안 봉사하고 가는 자리가 아닐까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단기 성과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더디더라도 5년, 10년 뒤를 보는 선견지명을 갖춘 고마운 선배였다고 평가받고 싶습니다.”
■ 코엑스는
전시장과 회의시설을 갖춘 국내 최초의 전시컨벤션센터다. 1979년 한국무역협회가 100% 출자해 설립했다. 지하에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코엑스몰 그리고 인근에 특급호텔, 백화점, 면세점, 도심공항터미널, 영화관, 아쿠아리움 등의 시설을 갖춰 국내 최고 복합 마이스 시설로 꼽힌다. 1988년과 1997년 두 차례 확장공사를 거쳐 4개 전시홀(3만6007㎡), 50개 회의실(1만1164㎡)을 갖췄다. 연간 200회 이상의 전시회와 2500회가 넘는 국제회의 등 컨벤션, 이벤트가 열린다. 직원은 100명, 시설 임대 외에 전시회와 국제회의 등 각종 행사를 직접 개최한다.
■ 이동원 코엑스 사장 약력
△1959년 경북 안동 출생
△1978년 대구 대건고 졸업
△1984년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5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수료
△1986년 LG애드 입사
△1996년 LG애드 뉴욕지사장
△2005년 LG애드 글로벌본부장(상무)
△2011년 LG애드 미주사업부장
△2014년 HS애드 Account Service 부문장(전무)
△2018년~ 제17대 코엑스 대표이사 사장
■ 이동원 사장의 단골집 시골진지상 고등어 묵은지·보리굴비…배우들도 즐겨 찾아
서울 삼성동에서 2002년부터 19년째 영업 중인 남도음식 전문점이다. 포스코사거리에서 서울지하철 9호선 삼성중앙역 방면으로 가는 길목 중간 지점에 있다. 대로변에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연예계 대표 미식가인 배우 차승원 씨와 정준호 씨가 즐겨 찾는 곳이다.
경남 통영, 전남 해남과 신안, 제주 등지에서 올라온 식재료로 만든 요리는 정식과 조림, 탕, 계절음식으로 나뉜다. 정식은 보리굴비와 갈치구이, 간장게장이, 조림은 갈치와 병어, 묵은지를 넣고 끓인 고등어묵은지가 유명하다. 홍어탕과 민어탕, 복어탕, 낙지연포탕 등 탕 요리는 깊은 국물 맛이 일품이다. 한우육전과 홍어전, 굴전, 조기전 등 전 요리는 조림과 탕에 곁들여 먹으면 안성맞춤이다. 참홍어와 간자미, 전어, 생굴, 참꼬막, 과메기 등 해물은 철에 따라 회와 구이, 무침 등 다양한 형태로 맛볼 수 있다.
시골진지상은 파김치 등 밑반찬 맛집으로 유명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은은한 감칠맛의 비결은 16시간 넘게 끓인 만능간장. 모든 요리의 간을 조미료가 아니라 간장으로 한다.
이선우 기자 seonwoo.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