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미국 주도 국제해양안보 구상 참여에 선 그어
미국 요구 일부 수용하며 '남북관계 개선 협조' 요청 가능성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란과의 관계도 고려 대상
청와대, 호르무즈해협 독자활동 무게…한미동맹·남북협력 염두
미국과 이란 간 충돌과 맞물려 주요 외교 현안으로 부상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가 독자 활동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바레인에 사령부를 두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IMSC·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중동 정세의 안정에 기여하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16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에 대해 "국제해양안보구상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형태의 파병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노 실장은 "다만 최근 중동 지역 정세와 관련해 우리 국민과 기업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우리 선박의 안전한 자유항행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내부적으로 상당 부분 진척돼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견고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는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카드로 보인다.

미국은 그동안 한국 정부를 향해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에 동참할 것을 요청해 왔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7일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고 있다"며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14일(현지시간) 방미 중이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중동 정세에 한국도 큰 관심을 갖고 기여해야 하지 않느냐"며 사실상 파병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청와대와 정부로서는 이렇듯 지속적으로 파병을 요청하는 미국의 요구를 계속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당장 국민·기업의 안전이나 원유 수급 상황 등을 고려하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확보는 정부의 중요 과제다.

이란이 수도 테헤란 부근에서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하며 정부의 '국민 안전 확보' 당위성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한국 국민과 기업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한국 선박의 안전한 자유항행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가장 강력한 외교관계인 한미동맹을 견고하게 유지하려면 미국의 요구를 어떤 형태로든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일본은 해상자위대 호위함 1척과 P3C 초계기를 보내 호르무즈 해협이 아닌 오만만, 아라비아해 북부 공해, 아덴만 공해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게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등을 놓고 한일 간 기 싸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일본만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모습은 결코 한국에 유리할 게 없다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나아가 청와대 이러한 기류의 이면에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된 상황을 풀려면 미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자리 잡고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간다면 북미 대화에도 좋은 효과를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북미 대화의 진전만을 바라기보다는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이를 비핵화를 추동하는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발전된 남북관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진전의 구체적 목표로 접경지 협력, 올림픽 공동개최 등을 들었다.

이중 올림픽 공동개최 등은 남북을 잇는 도로·철도 등 교통 인프라와도 결부돼 있다.

즉 대북제재 완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미국과 협의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다.

노 실장은 인터뷰에서 "유엔의 대북제재 등과 관련해 미국과 긴밀히 협의 중"이라며 "올해 적극적으로 제재 면제에 대해 협상할 생각"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는 아니지만 논의에 난항을 겪고 있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 선제적 조치를 취하려 한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동 방위'에서 빠지면서도 중동 정세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이란과의 관계를 고려한 일종의 '절충안'으로도 읽힌다.

노 실장은 "이란과의 양자 관계에서 사전 설명이 있을 것"이라며 "한·이란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