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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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게임 ‘리니지’를 즐겨하던 직장인 이모씨(35)는 지난해부터 ‘사설서버’에서 리니지 게임을 하고 있다. 무료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뿐더러 몇 만원만 운영자에게 지불하면 현금 거래가격이 1000만원이 넘는 아이템을 가질 수 있어서다. 이씨는 “실제 본섭(정규 서버)과 동일한 조건으로 게임이 진행되고 유저들끼리 아이템을 직접 거래할 수도 있다”며 “사설서버에서보다 내 캐릭터가 더 약해지는 정규 게임 서비스를 즐길 생각이 없다”고 했다.

사설서버 홍보 사이트 누적 방문자 1800만명

실제 온라인게임의 콘텐츠를 그대로 복사해 별개 게임 서버를 운영하는 ‘사설 서버’가 성행하고 있다. 불법 도용한 콘텐츠로 ‘게임 머니’를 판매하거나 도박 광고비를 받아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해외에 서버를 둔 경우가 많아 단속이 쉽지 않다. 게임업계에선 사설서버로 인한 국내 게임업체의 연간 피해액이 2500억원에 달하는 만큼 대책 마련에 나서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는 서울동부지방겸찰청과 지난 2018년 9월부터 1년간 합동 수사를 통해 리니지 사설서버 홍보 사이트 운영자 H씨 등 5명과 사설서버 운영자 P씨 등 3명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이들은 홍보 사이트에 사설서버 광고료로 8만~75만원을 받는 등 55억원의 범죄 수익을 얻었다. 게임 접속 시 성인 인증 절차를 없애 청소년 보호 조치도 무력화했다.

현금을 투자하며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사설서버는 참기 힘든 유혹이다. 수억원에 거래되는 게임 아이템을 사설서버에서는 무료나 저렴한 비용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설서버에서 얻은 아이템을 정규 서버에서 이용할 순 없다. 기존 게임에서 획득하길 꿈꿔왔던 값비싼 아이템을 캐릭터에 착용해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느낀다는 게 사설서버 이용자들의 이야기다. 아이템의 수준이 캐릭터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큰 게임일수록 사설서버의 이점이 커진다. 업계에선 사설서버로 인한 국내 게임업체들의 피해액이 2500여 억원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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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서버 수백개를 소개하는 홍보 사이트도 생겨났다. 홍보 사이트는 게임별 사설서버 접속 주소를 소개해주면서 광고비를 챙긴다. 사설서버나 도박 광고를 게재하며 건당 50만원가량의 수입을 올리는 식이다. 게임위는 사설서버 홍보 사이트 주요 세 곳의 누적 방문자 수가 1800만명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해외에서 운영되는 사설서버인 경우 업계 피해가 더 심각하다. 온라인 게임 ‘미르의 전설 2’를 제작한 업체 위메이드에 따르면 해당 게임의 지식재산권(IP)을 도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설서버가 수만대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미르의 전설과 유사한 게임류 시장 규모만 5조원 수준”이라며 “업체에서 사설서버를 찾아내 국내 접속을 차단하더라도 다시 새 서버를 만들어 운영하면 그만”이라고 전했다.

콘텐츠 도용에 도박 광고까지…국내 피해 규모 2500억원에 달하는 '사설서버' 게임
5년새 3배로 불어난 사설서버 사이트 차단 건수

사설서버 숫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게임위에 따르면 국내 사설서버 사이트 차단 건수는 2014년 1854건에서 지난해 5305건을 기록, 3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게임위는 현재 운영 중인 국내 사설서버가 280여개라고 추정한다. 2017년 285개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업계에선 음성화된 사설서버까지 고려하면 국내에서 운영 중인 사설서버만 1000여개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과 공조해 게임위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사설서버 모두를 단속하기엔 역부족이다. 게임위 관계자는 “수사 착수에서 결과가 나오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걸린다”며 “경찰 수사 인력은 제한돼 있는데 사설서버 운영자들이 또 다른 서버를 새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대응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단속 대신 사설서버를 하나의 게임 문화로 받아들여 양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단속을 계속하더라도 사설서버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며 “러시아 등 해외에서 사설서버 운영자가 게임업체에 로열티를 지불한 사례를 참고해 업계 관리 하에 사설서버를 둘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할 때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