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가 16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집은 투기는 물론 투자의 대상이 돼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주식 투자나 사업으로 돈을 번다면 박수 칠 일이지만 집으로 하는 건 후진적이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 총리의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끊임없이 강력한 부동산 대책을 내놓겠다”고 언급한 것을 적극 옹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부동산이 대부분 가계의 가장 큰 자산인 현실을 외면한 발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시장에서 이뤄지는 거래를 ‘투기’나 ‘투자’로 규정할 수도 없고, 규정할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투기와 투자의 경계도 모호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조차 주택(부동산)은 주식, 채권 등과 함께 주요 투자대상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기업인 출신으로 정부 인사 중 경제를 그나마 잘 안다는 정 총리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의 발언이 “주거만족 위주로 주택시장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라고 ‘적극 해석’하더라도 적절하지 않다. 정 총리 의도대로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부동산에 과도하게 쏠리는 1200조원의 부동자금이 증시 등 생산적인 분야에 투자되도록 물꼬를 터야 한다. 그러려면 투자 주체인 기업을 마음껏 뛰게 만들어야 한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주저하는 것은 갈수록 경직화되는 노동시장,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 등 반(反)기업·친(親)노조 정책이 원인이다. 투자의욕을 꺾어버리는 정책도 문제다. 정부·여당은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내세워 모든 산업재해를 원청기업 책임으로 몰아가고, 국민연금을 통한 경영 간섭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성장 엔진이 멈춰 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정부는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 정책 중 가장 잘하는 분야를 묻는 현대경제연구원의 기업 대상 설문조사에서 “잘하는 분야가 없다”(20.0%)가 1위를 차지한 게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경제호황을 구가하는 미국은 이른바 팡(FAANG: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과 마가(MAGA: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애플)로 불리는 혁신 기업들이 신성장 동력을 창출해내며 뉴욕 증시를 연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감세, 규제철폐 등 친기업 정책이 기업에 날개를 달아준 게 한몫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산층을 겨냥한 제2차 감세를 계획하고 있다.

저금리 여파로 미국 부동산 가격이 크게 뛰었지만 한국처럼 ‘부동산 쏠림’을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경제 각 분야를 두루 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기업 활력이 자본시장 등 다양한 분야 투자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투자자들이 묻어두면 몇 배, 몇십 배 수익이 나는 ‘대박투자’가 많이 나오도록 기업이 마음껏 뛰어놀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 집값 안정도 경제 살리기도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