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부동산 시장
분기마다 만나는 20년지기 동창 모임에 A가 1년 반째 나타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다 기간이 길어지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A와 특히 친했던 B로부터 사정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B는 “A가 최근 1~2년 새 내 집 마련에 계속 실패하면서 집을 소유한 친구가 있는 모임에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집 있는 친구들이 그냥 보기 싫다고 하더라고. 굳이 집 살 필요가 있느냐고 극구 반대한 부인하고는 이혼 얘기가 나올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어.”

A의 소식을 듣고 찜찜하던 차에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의 주택매매 허가제 언급과 관련한 소동이 벌어졌다. 정무수석 입에서 반(反)시장적 정책의 끝판이라고 할 수 있는 매매허가제 도입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 것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지난 15일 한 라디오 방송에서 “부동산을 투기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매매허가제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변했다.

다음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다른 방송에 나와 강 수석 발언에 대해 해명한 것은 충격을 넘어 허탈감을 불러일으켰다. 노 실장은 사회자가 “청와대에서 검토되지 않은 사안을 정무수석이 방송에서 말해도 되는가”라고 묻자 “부동산 안정에 ‘필(feel)’이 꽂혀서 이를 강조하다가 나온 말”이라고 했다. “질책해야 하는 사안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강 수석을 만나 ‘사고 쳤네’라고 했더니 부동산 시장 안정의 중요성을 얘기하다가 말이 나왔다고 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파장을 수습하겠다고 내놓은 해명이었지만, 상당수 국민은 ‘농담 따먹기’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분노를 나타냈다.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엔 “청와대 사람들은 부동산 정책을 장난처럼 다루는 모양이다” “비서실장이란 사람이 국민들의 박탈감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해명을 저렇게 하느냐”는 댓글이 쏟아졌다.

정상적인 시장에선 이득을 봐 행복한 사람과 손실을 봐 불행한 사람이 공존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열여덟 번의 대책이 쏟아지는 동안 부동산 시장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곳이 됐다.

동창들과 연을 끊고, 부부 사이까지 나빠진 친구 A 같은 사례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거짓말 같은 현실이다. 아이 교육 때문에 강남에 전셋집을 찾고 있는 한 선배는 ‘12·16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전세 가격이 급등할 조짐을 보이자 이사 길이 막힐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집 있는 사람이라고 마냥 행복한 게 아니다.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이번엔 또 어떤 규제가 나올까’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12·16 대책 발표 당일 점심을 함께한 한 공공기관장이 식사 도중 발표 내용을 확인한 뒤 표정이 확 굳어진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경기도 집을 팔고 서울로 이사를 계획 중이던 이 기관장은 “앞으로 대출이 어떻게 될 것 같냐”며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크게 늘어난 보유세 부담 때문에 고소득층조차 소비 지출을 줄여야 할 판이다. 가뜩이나 소비가 위축된 마당에 고소득층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경제 전반에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모두가 불행한 시장을 만들어 놓고 문재인 대통령은 “더 강력한 대책을 끊임없이 내놓겠다”고 했다. 정책 실패에 대한 사과와 궤도 수정을 바라던 국민들은 또 한 번 불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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