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 지휘한 김학범 '팔색조 전술의 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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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에서는 '호랑이 선생님'…숙소에서는 '자상한 아버지'
실업팀 선수→은행원→지도자 변신…2006년에는 박사 학위
'학범슨' 김학범(60)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감독이 아시안게임 '금빛 조련'에 이어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까지 달성하며 국내 최정상급 지략가로 당당히 인정을 받았다.
22일 태국 랑싯의 탐마삿 스타디움.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본선 진출권에 단 1승만 필요했던 한국 U-23 대표팀은 호주와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에서 김대원(대구)과 이동경(울산)의 릴레이골로 2-0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 진출한 한국은 26일 사우디아라비아와 결승전 결과에 상관없이 최소 준우승을 확보하며 이번 대회에 걸린 3장의 올림픽 본선 진출권 가운데 한 장을 따냈다.
이로써 한국 축구는 통산 11차례 올림픽 본선 진출과 더불어 세계 최초로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도 달성했다.
앞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도 한국이 유일했다.
올림픽 본선 진출은 태국에서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기온에 70%에 육박하는 습도를 견뎌낸 23명 태극전사의 노력과 '팔색조 전술'로 상대 팀들을 무너뜨린 김학범 감독의 지략이 제대로 들어맞은 결과다.
김학범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일찌감치 K리그 무대에서 인정을 받았다.
강원도 강릉 출신의 김 감독은 명지대를 거쳐 실업팀인 국민은행에서 뛰다가 1992년 은퇴한 뒤 은행원으로 변신했다.
김 감독은 1993년 국민은행 축구단에서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U-23 대표팀 코치로 활약했다.
1998년 K리그 성남 일화 코치로 합류한 김 감독은 7년 동안 고(故) 차경복 감독을 보좌한 뒤 2005년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현역 시절 실업팀에서 뛰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김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성공의 길을 개척했다.
김 감독의 지휘 아래 성남은 2006년 K리그에서 7번째 우승별을 달았다.
특히 김 감독은 2006년 8월 사령탑으로 바쁜 와중에도 모교인 명지대에서 '델파이 방법을 활용한 축구 훈련 방법에 대한 내용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며 진정한 '축구 박사'가 됐다.
2008년 11월 성남을 떠난 김 감독은 중국 프로 무대를 경험한 뒤 2012년 강원FC 지휘봉을 잡고 K리그로 복귀했고, 이후 2014년에는 친정팀 성남을 이끌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17년 광주FC를 잠시 맡았다가 자진해서 사퇴한 뒤 2018년 2월 U-23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지략가'로 다시 한번 빛을 발하게 됐다. 김 감독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론의 반대를 물리치고 황의조(보르도)를 발탁해 '인맥 축구' 논란에 휩싸였지만 선수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끝내 황의조를 득점왕(9골)으로 만들었다.
다양한 전술로 대표팀을 지휘한 김 감독은 마침내 한국 축구의 2회 연속 아시안게임 우승을 일궈내며 '지장(知將)'과 '덕장(德將)'으로 인정을 받았다.
김 감독의 다음 미션은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었다.
올림픽 티켓이 걸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을 앞두고 김 감독은 이미 조별리그에서 만날 세 팀의 전력 분석을 완벽하게 끝낸 뒤 대회에 나섰다.
이미 상대 파악이 끝난 김 감독은 상대별 맞춤 전술을 앞세워 3연승으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특히 조별리그 2차전부터 호주와 4강전까지 선발 선수를 '7명→6명→8명→5명'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로테이션으로 상대 팀을 어리둥절하게 하며 차곡차곡 승리를 따냈다. 그라운드에서는 짙은 눈썹을 부라리며 선수를 혼내는 '호랑이 선생님'이지만 숙소와 훈련장에서는 23명의 선수 모두에게 자상한 관심을 주는 '자상한 아버지'로 변신해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김 감독은 조별리그 초반 부진했던 정우영(프라이부르크)에 대해서도 "기다려주면 충분히 올라올 선수"라며 품었다.
사령탑의 준비된 전략과 세심한 선수 관리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한국 U-23 대표팀은 이번 대회 5연승으로 결승에 진출해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연합뉴스
실업팀 선수→은행원→지도자 변신…2006년에는 박사 학위
'학범슨' 김학범(60) 한국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감독이 아시안게임 '금빛 조련'에 이어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까지 달성하며 국내 최정상급 지략가로 당당히 인정을 받았다.
22일 태국 랑싯의 탐마삿 스타디움.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본선 진출권에 단 1승만 필요했던 한국 U-23 대표팀은 호주와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결승에서 김대원(대구)과 이동경(울산)의 릴레이골로 2-0 승리를 거두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 진출한 한국은 26일 사우디아라비아와 결승전 결과에 상관없이 최소 준우승을 확보하며 이번 대회에 걸린 3장의 올림픽 본선 진출권 가운데 한 장을 따냈다.
이로써 한국 축구는 통산 11차례 올림픽 본선 진출과 더불어 세계 최초로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도 달성했다.
앞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도 한국이 유일했다.
올림픽 본선 진출은 태국에서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기온에 70%에 육박하는 습도를 견뎌낸 23명 태극전사의 노력과 '팔색조 전술'로 상대 팀들을 무너뜨린 김학범 감독의 지략이 제대로 들어맞은 결과다.
김학범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일찌감치 K리그 무대에서 인정을 받았다.
강원도 강릉 출신의 김 감독은 명지대를 거쳐 실업팀인 국민은행에서 뛰다가 1992년 은퇴한 뒤 은행원으로 변신했다.
김 감독은 1993년 국민은행 축구단에서 코치를 맡으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U-23 대표팀 코치로 활약했다.
1998년 K리그 성남 일화 코치로 합류한 김 감독은 7년 동안 고(故) 차경복 감독을 보좌한 뒤 2005년 사령탑으로 취임했다.
현역 시절 실업팀에서 뛰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김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 성공의 길을 개척했다.
김 감독의 지휘 아래 성남은 2006년 K리그에서 7번째 우승별을 달았다.
특히 김 감독은 2006년 8월 사령탑으로 바쁜 와중에도 모교인 명지대에서 '델파이 방법을 활용한 축구 훈련 방법에 대한 내용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며 진정한 '축구 박사'가 됐다.
2008년 11월 성남을 떠난 김 감독은 중국 프로 무대를 경험한 뒤 2012년 강원FC 지휘봉을 잡고 K리그로 복귀했고, 이후 2014년에는 친정팀 성남을 이끌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17년 광주FC를 잠시 맡았다가 자진해서 사퇴한 뒤 2018년 2월 U-23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지략가'로 다시 한번 빛을 발하게 됐다. 김 감독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여론의 반대를 물리치고 황의조(보르도)를 발탁해 '인맥 축구' 논란에 휩싸였지만 선수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끝내 황의조를 득점왕(9골)으로 만들었다.
다양한 전술로 대표팀을 지휘한 김 감독은 마침내 한국 축구의 2회 연속 아시안게임 우승을 일궈내며 '지장(知將)'과 '덕장(德將)'으로 인정을 받았다.
김 감독의 다음 미션은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었다.
올림픽 티켓이 걸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을 앞두고 김 감독은 이미 조별리그에서 만날 세 팀의 전력 분석을 완벽하게 끝낸 뒤 대회에 나섰다.
이미 상대 파악이 끝난 김 감독은 상대별 맞춤 전술을 앞세워 3연승으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특히 조별리그 2차전부터 호주와 4강전까지 선발 선수를 '7명→6명→8명→5명'으로 바꾸는 파격적인 로테이션으로 상대 팀을 어리둥절하게 하며 차곡차곡 승리를 따냈다. 그라운드에서는 짙은 눈썹을 부라리며 선수를 혼내는 '호랑이 선생님'이지만 숙소와 훈련장에서는 23명의 선수 모두에게 자상한 관심을 주는 '자상한 아버지'로 변신해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김 감독은 조별리그 초반 부진했던 정우영(프라이부르크)에 대해서도 "기다려주면 충분히 올라올 선수"라며 품었다.
사령탑의 준비된 전략과 세심한 선수 관리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한국 U-23 대표팀은 이번 대회 5연승으로 결승에 진출해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