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문화원 "며느리에 대한 배려, 명절 맞아 다시 생각해봐야"
명절이 힘든 며느리 이야기… 조선시대 반보기 현장 '섦은 고개'
부산 해운대구 우2동 지금의 해운대공고가 있는 곳 일대는 조선 시대 후기 '섦은 고개'라고 불리던 곳이다.

주변 산지보다 경사가 완만한 곳으로 조선 시대 양반댁 동래와 어촌 마을인 지금 해운대 경계가 되는 지역이다.

현재는 이 고개 앞 일대가 매립되고, 매립지에는 초고층 주택이 즐비하며 풍광이 변했지만, 6·25 전쟁 전까지만 해도 민가는 없었고 언덕 위에 과수원만 있었던 곳이다.

이곳은 설날 보름 정도 뒤인 정월대보름이나 추석 등 명절과 관련한 특별한 사연이 얽혀있다.

'섦은 고개'라는 그 이름처럼, 조선 시대 며느리들이 서러움에 눈물짓던 아픔이 서린 곳이다.

25일 부산 해운대구 문화원에 따르면 이 고개는 해운대, 송정, 기장에서 동래, 용호, 용당 지역으로 시집간 딸들이 부모와 눈물로 이별하는 장소다.

한번 시집간 딸은 3년 동안 친정을 방문하지 못하는 탓에 명절이면 시댁과 친정 사이 중간쯤인 장소에서 반나절 동안 친정 식구들을 만났다가 헤어지는 '반보기' 풍속을 행하는 곳이기도 했다.

정진택 해운대 문화원 사무국장은 "남존여비와 유교적인 엄한 가족제도가 빚어낸 풍속으로 당시 며느리에게 '친정집은 지척이 천 리'였다"면서 "가족과 겨우 반나절 동안만 정을 나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온보기'가 못되고 '반보기'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며느리는 친정 식구들과 언덕에 자리를 펴고, 바람을 피할 정도의 차양을 친 뒤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정 사무국장은 이 반보기 풍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을 강조하며 며느리에 대한 모든 것을 원천차단하던 사회에서도 며느리의 숨통을 터주려 하고 제한적이나마 자유를 주려 한 조상들의 시도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저는 오히려 지금의 현대 사회가 명절에 찾아야 할 가치가 며느리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래 정씨 집안인 정 사무국장도 유교적인 윗세대와 달라진 아랫세대 사이에서 변화를 직접 겪은 사람 중에 한명이다.

정 사무국장은 "몇 년 전 해외에서 구정을 치르게 됐는데 반대 목소리도 컸다"면서 "하지만 해외에서 떡국에 과일만 얹고 차례를 모시는데도 조상을 대하는 마음과 정성은 그대로였고, 가족의 화목함이 느껴지니 아버님이 '내가 괜히 며느리를 고생시켰구나'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난다"고 밝혔다.

그는 "유교 사회가 안 된다고 하는 시점에서도 반보기를 통해 며느리를 챙기며 '이것도 가져가라, 저것도 가져가라' 하시던 조상의 마음을 이번 명절에 계승해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전했다.

해운대구 문화원은 사료를 수집해 '섦은 고개'와 관련한 내용을 책으로 만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