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IPO) 시장 곳곳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작년 기관투자가 수요예측(사전청약) 경쟁률은 2012년 집계 이후 최고 기록을 일곱 번이나 갈아치웠다. 역대 최고 경쟁률 1위부터 20위까지가 전부 작년 한 해에 몰렸다. 단순 평균경쟁률은 지난해 처음으로 개인투자자의 일반청약 경쟁률을 뛰어넘는 기현상을 보였다.

비상식적으로 뜨거운 기관 수요가 몰리면서 공모가가 너무 높게 책정되다 보니 상장 직후 주가가 급락하는 일도 늘어나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의 신뢰를 더 망가뜨리기 전에 군소 펀드와 기타법인들이 일으키는 과도한 시장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역대 20개 '핫딜' 작년 몰려…IPO시장 '경보'
997 대 1 경쟁률도 ‘겨우 20등’

27일 한국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인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2019년 신규 상장한 기업들이 2012년 이후 IPO 수요예측 경쟁률 상위 20개 기록을 싹쓸이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소 공시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12년 7월 이후 610건(기업인수목적회사 154건 포함)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작년 3월 신규 상장한 이지케어텍이 처음으로 1000 대 1의 벽을 상향 돌파한 이후 하반기에만 추가로 18개 회사가 모집 물량의 1000배 넘는 수요를 모았다. 하반기 신규 상장 기업 55개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연말로 갈수록 경쟁은 더욱 뜨거워져 일곱 차례의 사상 최고 기록 경신이 이뤄졌다. 메탈라이프, 씨에스베어링, 티라유텍은 1200 대 1을 넘어섰다. 작년 12월 상장한 피피아이는 997 대 1로 2019년 20위였지만, 2012~2018년 상장한 어떤 기업보다도 경쟁률이 높았다.

군소 자산운용사 펀드와 기타법인들이 주식을 확보하려고 비상식적인 물량을 청약하면서 이상과열 현상을 부추겼다. 메탈라이프의 경우 수요예측 참여 주체가 집계 이후 최대인 1370곳에 달했다. 운용사(집합)가 354개로 모집 주식 수의 330배 물량을 써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타법인 355곳이 따로 436배의 주문을 냈다.

기관>일반 청약경쟁률 ‘기현상’

작년 신규 상장 종목의 수요예측 경쟁률 단순 평균값은 2012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일반청약 경쟁률마저 넘어섰다. 2019년 73개 신규 상장 종목(스팩 제외)의 단순 평균 수요예측 경쟁률은 594 대 1, 일반청약 경쟁률은 509 대 1이었다. 한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일부 군소 펀드와 법인이 같은 공모가액을 기계적으로 제출하면서 경쟁률을 부풀리고 공모가액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공모가액을 결정하는 수요예측 시장은 과열된 반면 일반 투자자 수요는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탓에 주가가 상장 뒤 급락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모가가 시장 평가에 비해 너무 높게 책정됐다는 뜻이다. 경쟁률 역대 1위인 메탈라이프는 지난 23일 주가가 2만1100원으로 상장 첫날 종가 대비 38% 하락했다. 20년 넘게 IPO를 전담해온 한 대형증권사 임원은 “수요예측 경쟁률은 높은데 상장 후 손실을 내는 종목이 유독 많은 한 해였다”며 이상현상에 당혹감을 나타냈다.

불안한 개인투자자

개인투자자들은 수요예측 경쟁률에 거품이 지나치게 꼈다고 판단하고, 상대적으로 경쟁 강도가 낮은 기업은 아예 청약을 단념하고 있다. 수요예측 경쟁률이 5.8 대 1이었던 펌텍코리아의 경우 일반투자자들은 모집 물량의 절반(0.5 대 1)만 청약했다. 코윈테크(각각 163.5 대 1, 0.5 대 1)도 모집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한 증권사 IPO본부장은 “수요예측 경쟁률이 낮은 종목을 중심으로 공모가액을 신뢰하지 못하는 풍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펌텍코리아는 상장 첫날 공모가를 20% 밑도는 가격에 거래를 마쳤다. 코윈테크는 첫날 공모가 대비 37% 하락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