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脫원전 공론화, 제대로 해야
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이 최근 “탈(脫)원전 정책은 국정문란”이라고 수차례 발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청와대는 이런 비판에 대해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며 반박했다.

청와대는 지난 17일 춘추관 브리핑에서 “탈원전 정책은 2017년 진행된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론화 결과와 국민 의견 및 여론을 수렴해 추진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론을 수렴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억지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당시 향후 원자력 발전 비중 축소가 부가적인 권고 사항으로 제시된 바 있다. 정부는 이후 확정된 탈원전 로드맵의 근거로 이 권고안을 들었다. 그런데 그 공론화는 신고리 5·6호기에 국한돼 있었으니 정부는 건설재개 결론만 수용했어야 했다. 권고사항은 향후 정책 결정에 참고하라는 것이지, 근거로 삼으라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권고안 자체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합당하지 않다.

총 471명으로 구성된 공론화 시민참여단의 ‘건설재개’ 찬성과 반대 비율은 2박3일간의 숙의 과정을 전후해 45 대 31(3차 조사)에서 57 대 39(4차 조사)로 바뀌었다. 찬성이 12%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숙의 전 25%를 차지했던 판단 유보자들의 다수가 ‘건설 재개’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반면 부가적인 질문인 향후 원자력 발전 비중 선호에 대해서는 확대(유지 포함)와 축소의 비율이 숙의 전후로 51 대 46에서 45 대 53으로 역전됐다. 이전의 여러 조사에서 확대 선호가 축소보다 높았으나 마지막 조사에서 단 한 번, 그것도 단지 8%포인트 낮게 나왔을 뿐이다.

원자력 비중 축소 선호가 늘어난 것은 건설 재개로 생각을 바꾼 사람들 중 상당수가 비중 축소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실제로 건설 재개에 찬성하는 사람들 중 비중 축소를 지지한 사람들의 비율은 숙의 전후로 23%에서 32%로 늘어났다. 따져보면 38명이 건설 재개로 생각을 바꾸면서 갖게 된 정부에 대한 미안함을 비중 축소를 선택함으로써 보상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수인 이들의 온정을 견강부회해 중차대한 국가 대사인 탈원전 정책을 정당화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한편 당시 건설 재개 후 취해야 할 조치 사항으로 제시된 4개항 즉 △안전기준 강화 △탈원전 정책 유지 △사용후핵연료 해결방안 마련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중 택일하라는 질문에 대해 탈원전 정책 유지 선택 비율은 최하위였다. 단 13%에 불과했다. 시민 참여단의 대다수가 탈원전 정책에 동의하지 않고 있음이 당시에도 나타났던 것이다.

원자력학회는 2018년 8월부터 3개월마다 총 4회에 걸쳐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원자력발전 인식 조사를 했다. 국내 유수의 세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이 조사는 의뢰요청 기관을 밝히지 않고, 질문 문항도 공정한 객관적인 조사였다. 향후 원자력 발전 비중 선호에 대한 결과는 원자력 비중 확대(유지 포함) 대 축소 선호 비율이 1차 69 대 29부터 4차 73 대 26까지 일관성 있게 나타났다. 7 대 3 이상의 비율로 원전 지속 활용에 대한 국민 지지가 높게 나타났다. 마지막 4차 조사에서는 원자력 확대 선택만 쳐도 41%였다. 축소(26%)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국민 절대 다수는 탈원전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신한울 3·4 호기 공론화설이 회자되고 있다. 이제 원자력에 대해 공론화를 한다면 개별 원전이 아니라 탈원전 정책 자체가 대상이 돼야 한다. 단순하게 향후 원자력 비중 선호에 대한 여론조사만 실시해도 민심의 향방을 알 수 있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의 부가적인 권고사항 수용이 국민 여론 수렴이라는 일방적인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제대로 된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