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정위 표준거래계약서 확대, 신중해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 14일 복합쇼핑몰·아울렛·면세점과 납품업자(임차인) 간에도 ‘표준거래계약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그간 5개 업종(백화점, 대형마트, TV홈쇼핑, 편의점, 온라인쇼핑몰)에 적용하던 대규모유통업법을 지난해 4월부터 복합쇼핑몰과 아울렛, 면세점에도 확대하도록 한 법률 개정의 후속조치로 이해된다. 불공정거래계약으로부터 면세점 납품업자와 아울렛, 대형쇼핑몰의 매장 임차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표준거래계약서의 적용범위를 확대해 가는 것은 우리 헌법의 이념인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복합쇼핑몰 등 업체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납품업체 및 임차인들의 피해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민간인 간 거래에 정부가 나서서 ‘을’만을 보호하는 것에 대해선 계약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란 비판이 가능하다.

특히 표준거래계약서에는 임차인의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매출이 현저하게 감소하면 임차료 감액을 요청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즉, 매장 인근에 동종 또는 유사 업체가 임차인의 동의 없이 입점해 매출이 감소한 경우와 경제여건의 변동으로 인해 매출이 감소한 경우에도 기존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표준계약서에서 정한 갑과 을의 지위가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전제한 갑, 즉 복합쇼핑몰 등이 오히려 을의 입장에 처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공정위는 복합쇼핑몰 등을 보호하는 또 다른 취지의 표준계약서를 마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진 각국은 사적 계약에 관한 한 민법상 부당이득의 법리를 적용해 사법부가 개별적으로 불공정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미 선진 각국처럼 사정변경의 원칙과 차임증감(借賃增減)청구권 등을 민법에 구현해 법제도적으로 을을 보호해 왔다. 즉, 공정위가 굳이 표준거래계약서를 통해 을을 보호하지 않아도 법제도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표준거래계약서가 시장을 위축시키거나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신규 입점이 차단되거나 납품되는 상품 및 서비스의 질이 저하되는 등 경쟁제한으로 인해 소비자 권익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표준거래계약서에 ‘매출의 현저한 감소’, ‘기타 경제 여건의 변동’ 등 모호한 표현들도 많아 분쟁의 소지가 커지고,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표준거래계약서인 만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선택사항이기 때문에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표준거래계약서를 도입하지 않는 업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법 준수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고 공정위가 직권조사 등을 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TV홈쇼핑, 편의점, 온라인 쇼핑몰 등 5개 업종에 속한 대규모 유통업체들이 이미 표준거래계약서 내용을 자사 계약서에 모두 반영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이는 분명해진다. 이런 점에서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을 복합쇼핑몰·아울렛·면세점의 납품거래 및 임대차 등에도 확대 적용하는 것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제한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소비자 권익을 침해하면서까지 경쟁제한을 정당화하는 공정위의 표준거래계약서 도입 확대는 분명 문제가 있다. 사법(私法) 분야에서는 형평의 법리가 작동할 때 비로소 민간거래가 활성화되고 국가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문재인 정부가 민간 부문의 일자리 창출을 원한다면 표준거래계약서 적용 확대를 깊이 재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