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9단 "바둑 약해지면서 더 사랑하게 돼"
“바둑도, 골프도 혼자만의 싸움이라는 게 비슷하죠.”

조치훈 9단(64·사진)이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최근 열린 NH농협은행 시니어바둑리그 폐막식에서 최우수기사상(MVP)을 수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30일 “아침에 산책 아니면 골프로 체력단련을 한다”고 했다. 걷기만 하면 재미가 없어 골프를 시작했다는 조 9단은 “100개 넘게 치면 너무 슬프고, 80대 스코어가 나오면 정말 기분 좋다”고 말했다.

바둑에 할애하는 시간은 점점 줄이고 있다. 그는 “하루 8시간은 공부를 하는데, 바둑 공부는 조금만 한다. 이 나이에 바둑 공부만 하다 죽기는 조금 아까운 것 같다”고 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조 9단은 여섯 살이던 1962년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다. 11세에 입단한 뒤 줄곧 일본에서 활동하며 1980년 일본 최고 타이틀인 명인(名人)을 획득했다. 이어 ‘기성’ ‘본인방’을 모두 차지한 대3관 기록을 세워 일본 바둑의 전설이 됐다.

그런 그가 2017년 처음 한국 기전인 국내 시니어리그에 참가해 “꿈을 이뤘다”며 감격해 했다. 한국 기사들이 받아들일지 걱정했는데, 팀원들이 받아주는 느낌에 안심했다는 것이다. “팀이 3년 동안 우승한 것은 팀이 하나가 됐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는 부산KH에너지 바둑팀에 소속돼 있다.

3년 연속 대회 MVP를 차지한 그는 “바둑이 약해지면서 바둑을 더 사랑하게 됐다. 세 번 이기고 한 번 지면 슬펐는데, 지금은 두 번에 한 번 이기면 기쁘다”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대유행인 인공지능(AI)으로 배우는 것은 싫다고 잘라 말했다. “예전 내가 배웠던 바둑과 다르다. 머리가 아프다”고만 했다.

얼마 전 작고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가르침도 잊지 않고 있다. 신 명예회장은 조 9단이 어려울 때 경제적으로 지원했고, 평소에도 집에 불러 바둑을 뒀을 정도로 각별히 아낀 것으로 유명하다. 조 9단은 “기풍에서 느껴질 정도로 (신 명예회장은) 좋은 사람이었고 겸손한 분이었다. 바둑에서 성공한 뒤에도 ‘항상 겸손하라’고 얘기했다”며 “그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