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경제의 산업활동을 보여주는 각종 경제 지표가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까지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생산 증가율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았고, 광공업생산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2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각각 10년과 1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연말 들어 경기 부진이 완화되는 추세였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여파로 다시 경기가 꺾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작년 경제성적표 외환위기 때 수준 곤두박질…"우한 폐렴, 韓 성장률 0.2%P 떨어뜨릴 것"
제조업 무너지며 생산·소비·투자 동반 추락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019년 12월 및 연간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全)산업생산 증가율은 전년(1.4%) 대비 1.0%포인트 떨어진 0.4%에 그쳤다.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다. 설비투자는 7.6% 감소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9.6%) 이후 가장 크게 줄었다. 건설투자를 의미하는 건설기성도 6.7% 감소했다. 2008년(-8.1%)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소매판매 증가율도 2.4%로 전년 증가율(4.3%)보다 저조했다.

한국 경제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데는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제조업 부진이 심화한 영향이 크다. 지난해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전년 대비 0.6%포인트 하락한 72.9%로, 1998년(67.6%)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조업 생산능력은 101.9로 전년(103.1)에 비해 1.2% 감소하면서 1971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제조업 생산능력은 2018년 0.2% 감소했는데, 이 지표가 2년 연속 감소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작년 말에는 경기 부진이 다소 완화되는 모습이었다. 작년 12월 생산·소비·투자 지표가 동반 상승하면서 2개월 연속 ‘트리플 상승’을 기록했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의 12월분도 각각 전달보다 0.2포인트, 0.4포인트 상승했다. 동행·선행지수가 함께 오른 것은 2017년 1월 이후 처음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12월 지표를 보면 경기 개선 신호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경제 심리 개선 흐름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1분기 성장률 0.4%포인트 낮출 것”

문제는 우한 폐렴 사태로 경제 전망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한국 경제 파급 영향’ 보고서에서 “우한 폐렴의 확산 정도와 범위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연간 0.1~0.2%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줄고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이 감소하면서 경제 전체에 타격을 준다는 분석이다. 연구원은 중국의 소비가 줄면서 1분기 한국의 대중국 수출도 1억5000만~2억5000만달러가량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우한 폐렴 여파로 1분기 중국의 GDP 증가율이 4.5%에 그칠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한국의 1분기 성장률을 0.4%포인트 낮추는 충격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우한 폐렴으로 한국 경제가 일시 회복됐다가 다시 침체 국면에 들어서는 ‘더블 딥(double dip)’ 현상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염병 유행으로 중국 경제 성장률과 민간 소비가 떨어지면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큰 타격을 받게 된다”며 “관광업뿐 아니라 제조업 등 산업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성수영/김익환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