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생 미셸의 그 여자, 천공의 성에서 천년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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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향기
그 남자 그 여자의 여행 - 프랑스 북서부
생 말로의 그 남자, 골목 찾다 보물 찾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여행 - 프랑스 북서부
생 말로의 그 남자, 골목 찾다 보물 찾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 프랑스의 파리를 방문했을 땐, 한 손엔 하얀 자전거 손잡이를 움켜쥐고 한 손엔 진한 아메리카노를 든 채 바쁘게 출근하는 파리지엔(Parisien)을 꿈꿨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필자가 바라는 것은 그저 잔잔한 평화로움과 느긋한 여유…. 그래서 이번 여행은 샤를 드골공항에 내린 후 복잡한 파리의 시내를 벗어나 조용하고 아름다운 프랑스 마을들을 둘러보고자 했다.
길을 걷다 문득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그리고 또 사람들은 원한다. 영화나 소설 또는 그림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장소에 직접 찾아가 보기를. 이번 여행에선 고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배경이 됐던 파리 북서부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두 곳을 소개한다.
그 여자 : 천년을 넘어 그 자리에, 몽 생 미셸
198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파리에서 렌터카를 몰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 고고하게 솟아오른 환상의 성을 찾아서. 3시간쯤 지났을까? 끔뻑끔뻑, 해 질 녘 피곤이 몰려와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 잠시 한 손으로 눈을 비비던 찰나, 붉게 빛나는 천공의 성 몽 생 미셸(Mont Saint Michel)이 눈앞에 나타났다. 꿈인가, 현실인가. 몽 생 미셸은 ‘성 미카엘의 산’이란 뜻으로 198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몽 생 미셸이 있던 자리는 원래 시시(Fort de Sissy)라는 울창한 숲이었는데 해일과 침식 작용이 오랜 시간 계속되면서 숲은 사라지고 섬이 됐다고 한다. 사실 정확히는 조수 간만의 차가 15m나 돼서 밀물 때는 섬이, 썰물 때는 육지가 되는 독특한 지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섬에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8세기, 그 후 백년전쟁 때는 요새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됐다가 현재는 없어선 안될 세계의 문화유산이 됐다. 그 소문과 명성에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자동차의 속력을 줄이고 천천히 몽 생 미셸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그 고귀한 자태에 움츠러든 작고 연약한 내가 있었다.
708년 몽 생 미셸 일대를 다스리던 오베르 주교의 꿈에 천사장 미카엘이 나타난다. 미카엘은 바위 위에 성당을 세우라고 지시를 내리지만 오베르 주교가 그 뜻을 따르지 않자 그의 꿈에 다시 나타나 머리에 강한 빛을 쏘아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오브랑슈 박물관에 구멍난 오베르 주교의 해골이 전시돼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꾸며낸 이야기만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이상한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자 오베르 주교는 결국 성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들여 몽 생 미셸의 공사를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몽 생 미셸이 완성되기까지는 무려 천년의 시간이 걸리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촬영지
몽 생 미셸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강렬하지만 깊이 있고 은은한 오라(Aura)를 뿜어낸다. 몽 생 미셸이 이토록 신비로운 이유는 8~16세기까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하나 둘씩 완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지은 건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몽 생 미셸의 아름다움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다. 독일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을 피해 몽 생 미셸로 숨어든 프랑스의 마을 주민들을 폭격하려 전투기를 띄웠다. 그러나 전투기에 타고 있던 독일 군사가 너무나 아름다운 이 섬을 도저히 폭격할 수 없다고 판단해 공습 계획을 취소하고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다. 도저히 범접하기 힘든 경건한 아름다움을 마주하려 수많은 여행자가 지금까지도 이곳을 향한다.
몽 생 미셸 입구에 있는 왕의 문(Porte de Roi)을 지나면 좁고 비탈진 천년의 세월이 그곳에 있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들과 가게, 호텔, 레스토랑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그 끝에 수도원 입구가 나오는데, 몽 생 미셸의 계단을 오르면 문득 오버랩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루이지 코지 감독이 1976년에 만든 <라스트 콘서트>다.
피아니스트인 리처드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텔라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영화. 영화 초반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 곳이 바로 몽 생 미셸이다.생 말로 골목 어디를 가든…인스타 빛낼 '인생 샷' 건진다
라스트 콘서트의 영화 음악을 흥얼거리며 본관을 지나 3층 정원으로 나서자 아름다운 화원이 펼쳐져 있었고, 창문으로는 노르망디 해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보통 파리를 여행한다고 하면 근교 여행지로 몽 생 미셸을 추천하며 당일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장소로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는’ 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몽 생 미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해가 진 후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 충분히 여유를 갖고 몽생 미셸을 방문할 것을 권한다.
그 남자 : '해적들의 도시' 생 말로
좁은 골목을 헤매는 즐거움이 있는 도시
어릴 적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보물찾기였다. 엄마의 김밥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이 선생님의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아이들은 와르르 흩어진다. 떨어진 나뭇잎 아래에 있을까, 부러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까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본다. 제 머리통만 한 돌을 들어 보기도 하고, 봄 햇살에 바싹 마른 흙을 파헤쳐 보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환호성에 내 마음도 바빠진다. 마침내 커다란 바위 틈새에서 종이 한 장을 찾아낸다. 꺼내어 펼쳐 보니 ‘은하수’라는 뜻 모를 단어. 사실 ‘은하수’가 무슨 선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온 숲에 울려 퍼지던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하얀 보물 쪽지를 찾았을 때의 그 설렘만큼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날, 참 햇살 좋은 날이었다. 한때 ‘해적들의 도시’로 불리던 ‘생 말로(Saint-Malo)’엔 수십 개의 좁고 긴 골목이 뒤엉켜 있다. 적들이 침입했을 때 효율적으로 막아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해적들의 도시’로 불리기에는 도시 곳곳이 너무도 로맨틱하고 아름답다. 몽 생 미셸과 함께 <라스트 콘서트>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도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까?
손에는 복잡한 골목들 사이를 친절히 안내해 줄 지도가 쥐어져 있지만 오늘은 이 지도를 볼 생각이 없다. ‘이 골목 끝엔 무엇이 있을까, 또 그 골목을 돌면 어떤 길이 이어질까?’ 하는 설렘을 갖고 그저 발길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리라!
마을 입구의 작은 광장에서 시작되는 여러 갈래의 골목길들은 뚜렷한 목적지를 알려주지도 않은 채 얼른 들어오라며 내게 격한 손짓을 보낸다. 그중 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좁은 골목 양쪽으로 테라스가 돋보이는 유럽의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오랜만에 보는 유화 같은 풍경에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서 골목 끝 모퉁이를 돌자 딱 봐도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서점이 눈에 들어온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점만큼이나 오래된 책들이 천장까지 층층이 쌓여 있다. 낡은 책 냄새에 취해 그중에 한 권을 꺼내들자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에 하얀 먼지가 부서져 내린다. 창문 밖에는 알록달록한 마카롱들이 전시된 마카롱 전문 가게가 보이고, 어느새 빠져나가 한입 가득 마카롱을 물고 있는 아내도 보인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거부할 수 없는 마카롱의 유혹에 내 온몸의 엔돌핀도 급격히 상승한다.
골목마다 보이는 매력적인 카페와 갤러리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마을 중앙의 큰 광장으로 빠져나와 있다. 기분 좋은 오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 틈을 지나 우리는 또다시 반대편 골목으로 내달려 본다. 자, 보물찾기 2라운드 시작! 이 마을에서, 애초에 가고자 했던 목적지는 없다. 그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 즐거운 헤맴을 즐길 뿐. 이번 골목에는 작은 소품 가게들이 모여 있다. 도자기로 만든 예쁜 고양이 조각이 쇼윈도 속에서 제일 먼저 날 반긴다. 아아, 갖고 싶은 것을 모두 살 수 없는 슬픈 여행자의 신세여! 들었다 놨다를 수차례 반복하고서야 조각상을 놓아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뒤돌아서자 이번에는 작은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어느 이름 모를 화가의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이지만 나중에라도 집에 걸어두면 오늘이 생각날 것 같은, 프랑스의 따사로운 햇살같이 따뜻한 그림들. 직접 사지는 못하고,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누른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함께 마음 깊이에 그림을 담아 뒤돌아선다.
생 말로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른 마을이었다. 낯선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보물찾기는 설렜고 즐거웠다. 비록 손안에 쥐어진 보물은 하나도 없지만 눈으로 담은 수십 개의 보물이 가슴속 한쪽을 가득 채웠다. 오늘, 햇살 참 좋았다.
글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글·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여행 메모
몽 생 미셸과 생 말로 가는 법
프랑스 근교 여행 시 풍경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놓쳐서는 안될 여행의 핵심이므로 렌터카 여행을 추천하지만 렌터카 이용이 어려울 시 파리의 몽파르나스 (Montparnasse)역에서 렌(Rennes)역까지 기차를 탈 수 있다. 약 2시간 걸린다. 렌역의 버스터미널에서 몽 생 미셸(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약 50분 소요된다. 또는 몽파르나스에서 돌드브르타뉴(Dolde Bretagne)역으로 갈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몽 생 미셸까지 버스로 약 30분 걸린다. 렌역 또는 돌드브르타뉴역에서 기차를 타면 생 말로로 이동할 수 있다.
길을 걷다 문득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고. 그리고 또 사람들은 원한다. 영화나 소설 또는 그림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장소에 직접 찾아가 보기를. 이번 여행에선 고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배경이 됐던 파리 북서부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두 곳을 소개한다.
그 여자 : 천년을 넘어 그 자리에, 몽 생 미셸
198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파리에서 렌터카를 몰아 서쪽으로, 서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검푸른 바다 한가운데 고고하게 솟아오른 환상의 성을 찾아서. 3시간쯤 지났을까? 끔뻑끔뻑, 해 질 녘 피곤이 몰려와 일부러 눈을 크게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 잠시 한 손으로 눈을 비비던 찰나, 붉게 빛나는 천공의 성 몽 생 미셸(Mont Saint Michel)이 눈앞에 나타났다. 꿈인가, 현실인가. 몽 생 미셸은 ‘성 미카엘의 산’이란 뜻으로 198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이다. 몽 생 미셸이 있던 자리는 원래 시시(Fort de Sissy)라는 울창한 숲이었는데 해일과 침식 작용이 오랜 시간 계속되면서 숲은 사라지고 섬이 됐다고 한다. 사실 정확히는 조수 간만의 차가 15m나 돼서 밀물 때는 섬이, 썰물 때는 육지가 되는 독특한 지형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섬에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8세기, 그 후 백년전쟁 때는 요새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됐다가 현재는 없어선 안될 세계의 문화유산이 됐다. 그 소문과 명성에 어느 정도 기대는 하고 왔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자동차의 속력을 줄이고 천천히 몽 생 미셸의 실체에 다가갈수록 그 고귀한 자태에 움츠러든 작고 연약한 내가 있었다.
708년 몽 생 미셸 일대를 다스리던 오베르 주교의 꿈에 천사장 미카엘이 나타난다. 미카엘은 바위 위에 성당을 세우라고 지시를 내리지만 오베르 주교가 그 뜻을 따르지 않자 그의 꿈에 다시 나타나 머리에 강한 빛을 쏘아 구멍을 뚫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오브랑슈 박물관에 구멍난 오베르 주교의 해골이 전시돼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꾸며낸 이야기만은 아닌 듯싶기도 하다. 이 외에도 이상한 사건들이 계속 벌어지자 오베르 주교는 결국 성 미카엘의 계시를 받아들여 몽 생 미셸의 공사를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몽 생 미셸이 완성되기까지는 무려 천년의 시간이 걸리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촬영지
몽 생 미셸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강렬하지만 깊이 있고 은은한 오라(Aura)를 뿜어낸다. 몽 생 미셸이 이토록 신비로운 이유는 8~16세기까지, 로마네스크 양식에서 고딕 양식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하나 둘씩 완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지은 건물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몽 생 미셸의 아름다움에 관한 일화가 하나 있다. 독일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을 피해 몽 생 미셸로 숨어든 프랑스의 마을 주민들을 폭격하려 전투기를 띄웠다. 그러나 전투기에 타고 있던 독일 군사가 너무나 아름다운 이 섬을 도저히 폭격할 수 없다고 판단해 공습 계획을 취소하고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다. 도저히 범접하기 힘든 경건한 아름다움을 마주하려 수많은 여행자가 지금까지도 이곳을 향한다.
몽 생 미셸 입구에 있는 왕의 문(Porte de Roi)을 지나면 좁고 비탈진 천년의 세월이 그곳에 있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집들과 가게, 호텔, 레스토랑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그 끝에 수도원 입구가 나오는데, 몽 생 미셸의 계단을 오르면 문득 오버랩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루이지 코지 감독이 1976년에 만든 <라스트 콘서트>다.
피아니스트인 리처드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텔라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영화. 영화 초반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진 곳이 바로 몽 생 미셸이다.생 말로 골목 어디를 가든…인스타 빛낼 '인생 샷' 건진다
라스트 콘서트의 영화 음악을 흥얼거리며 본관을 지나 3층 정원으로 나서자 아름다운 화원이 펼쳐져 있었고, 창문으로는 노르망디 해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보통 파리를 여행한다고 하면 근교 여행지로 몽 생 미셸을 추천하며 당일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는 장소로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는’ 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몽 생 미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해가 진 후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 충분히 여유를 갖고 몽생 미셸을 방문할 것을 권한다.
그 남자 : '해적들의 도시' 생 말로
좁은 골목을 헤매는 즐거움이 있는 도시
어릴 적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보물찾기였다. 엄마의 김밥으로 배를 채운 아이들이 선생님의 출발 신호를 기다린다.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아이들은 와르르 흩어진다. 떨어진 나뭇잎 아래에 있을까, 부러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까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본다. 제 머리통만 한 돌을 들어 보기도 하고, 봄 햇살에 바싹 마른 흙을 파헤쳐 보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환호성에 내 마음도 바빠진다. 마침내 커다란 바위 틈새에서 종이 한 장을 찾아낸다. 꺼내어 펼쳐 보니 ‘은하수’라는 뜻 모를 단어. 사실 ‘은하수’가 무슨 선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온 숲에 울려 퍼지던 친구들의 웃음소리와 하얀 보물 쪽지를 찾았을 때의 그 설렘만큼은 아직도 또렷하다. 그날, 참 햇살 좋은 날이었다. 한때 ‘해적들의 도시’로 불리던 ‘생 말로(Saint-Malo)’엔 수십 개의 좁고 긴 골목이 뒤엉켜 있다. 적들이 침입했을 때 효율적으로 막아내기 위해서다. 하지만 ‘해적들의 도시’로 불리기에는 도시 곳곳이 너무도 로맨틱하고 아름답다. 몽 생 미셸과 함께 <라스트 콘서트>의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도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될까?
손에는 복잡한 골목들 사이를 친절히 안내해 줄 지도가 쥐어져 있지만 오늘은 이 지도를 볼 생각이 없다. ‘이 골목 끝엔 무엇이 있을까, 또 그 골목을 돌면 어떤 길이 이어질까?’ 하는 설렘을 갖고 그저 발길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리라!
마을 입구의 작은 광장에서 시작되는 여러 갈래의 골목길들은 뚜렷한 목적지를 알려주지도 않은 채 얼른 들어오라며 내게 격한 손짓을 보낸다. 그중 한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좁은 골목 양쪽으로 테라스가 돋보이는 유럽의 카페들이 늘어서 있다. 오랜만에 보는 유화 같은 풍경에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면서 골목 끝 모퉁이를 돌자 딱 봐도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서점이 눈에 들어온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점만큼이나 오래된 책들이 천장까지 층층이 쌓여 있다. 낡은 책 냄새에 취해 그중에 한 권을 꺼내들자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에 하얀 먼지가 부서져 내린다. 창문 밖에는 알록달록한 마카롱들이 전시된 마카롱 전문 가게가 보이고, 어느새 빠져나가 한입 가득 마카롱을 물고 있는 아내도 보인다.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거부할 수 없는 마카롱의 유혹에 내 온몸의 엔돌핀도 급격히 상승한다.
골목마다 보이는 매력적인 카페와 갤러리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마을 중앙의 큰 광장으로 빠져나와 있다. 기분 좋은 오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 틈을 지나 우리는 또다시 반대편 골목으로 내달려 본다. 자, 보물찾기 2라운드 시작! 이 마을에서, 애초에 가고자 했던 목적지는 없다. 그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 즐거운 헤맴을 즐길 뿐. 이번 골목에는 작은 소품 가게들이 모여 있다. 도자기로 만든 예쁜 고양이 조각이 쇼윈도 속에서 제일 먼저 날 반긴다. 아아, 갖고 싶은 것을 모두 살 수 없는 슬픈 여행자의 신세여! 들었다 놨다를 수차례 반복하고서야 조각상을 놓아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겨 뒤돌아서자 이번에는 작은 갤러리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어느 이름 모를 화가의 유명하지 않은 작품들이지만 나중에라도 집에 걸어두면 오늘이 생각날 것 같은, 프랑스의 따사로운 햇살같이 따뜻한 그림들. 직접 사지는 못하고,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누른 카메라의 셔터 소리와 함께 마음 깊이에 그림을 담아 뒤돌아선다.
생 말로는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른 마을이었다. 낯선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보물찾기는 설렜고 즐거웠다. 비록 손안에 쥐어진 보물은 하나도 없지만 눈으로 담은 수십 개의 보물이 가슴속 한쪽을 가득 채웠다. 오늘, 햇살 참 좋았다.
글 정민아 여행작가 jma7179@naver.com
글·사진 오재철 여행작가 nixboy99@daum.net
여행 메모
몽 생 미셸과 생 말로 가는 법
프랑스 근교 여행 시 풍경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놓쳐서는 안될 여행의 핵심이므로 렌터카 여행을 추천하지만 렌터카 이용이 어려울 시 파리의 몽파르나스 (Montparnasse)역에서 렌(Rennes)역까지 기차를 탈 수 있다. 약 2시간 걸린다. 렌역의 버스터미널에서 몽 생 미셸(종점)까지 버스를 타고 약 50분 소요된다. 또는 몽파르나스에서 돌드브르타뉴(Dolde Bretagne)역으로 갈 수도 있는데, 이 경우 몽 생 미셸까지 버스로 약 30분 걸린다. 렌역 또는 돌드브르타뉴역에서 기차를 타면 생 말로로 이동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