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고난, 승리 그리고 전진
“지구에는 대양(大洋)이 몇 개 있지?”라는 면접관의 질문에 미셸은 대답한다. “제겐 물 한 방울도 모두 대양이에요.” 앞을 보지도, 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소녀 미셸과 그녀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산 사하이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블랙(black)’에 나오는 대화다.

몇 년 전 시각 장애인과 팔짱을 끼고 청계산을 등산한 적이 있다. 그는 산을 오르는 내내 ‘산의 냄새가 너무 좋다’고 했다. 등산하는 동안 영화 ‘블랙’의 첫 장면에 흐르던 자막이 계속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둠 속에서 얼마나 살 수 있죠? 몇 분? 몇 시간? 며칠?’, ‘이게 나의 세상입니다.’ 일반인에게는 가벼운 한 걸음, 한 걸음이 시각 장애인에게는 천 걸음, 만 걸음의 무게로 다가온다. 등산을 마친 후 그는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마음의 눈을 뜰 수 있게 해준 그에게 오히려 감사했다.

올해는 베토벤이 탄생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다. 베토벤은 1770년 독일에서 태어나 1827년 58세로 생을 마감했다. 나는 많은 음악가 중에서 특히 베토벤을 좋아한다.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모질게 괴롭혀온 운명을 극복한 그의 삶에 끌려서다.

열여섯에 어머니를 여읜 베토벤은 이후 궁핍한 삶 속에서 무능력한 아버지와 어린 두 동생을 부양했다. 이미 30대 중반부터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필담에 의존해 의사소통을 해야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빰빰빰 빰 빠밤~~’으로 시작되는 베토벤 5번 교향곡은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베토벤의 말에 따라 ‘운명’이라는 타이틀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운명처럼 다가온 삶의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합창’이라는 부제의 9번 교향곡처럼 환희에 이르게 된다. 비록 ‘환희의 송가’를 연주한 뒤 터져 나온 청중의 뜨거운 박수 소리조차 전혀 들을 수 없었지만 말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크고 작은 시련이 닥친다. 그때마다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을 베토벤의 삶에 비추어 반성해 본다. 그런 모진 운명이 문을 두드릴 때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일까? 견뎌낼 힘이 있을까?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형벌의 고통을 감수한 프로메테우스처럼 베토벤은 청각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고 아름답고 고결한 음악을 창조했습니다. 인류의 가슴을 뜨겁게 지필 수 있는 음악이라는 불을 가져다준 베토벤. 그는 ‘음악의 프로메테우스’였습니다.”

지휘자 금난새가 《금난새의 교향곡 여행》에서 베토벤을 묘사한 글이다. 거장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의 생이 주는 메시지와 그의 음악을 마음속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