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예술 용광로' 이스트빌리지서
바스키아·해링 등과 함께 활동
부조리한 현실 화폭에 쏟아내
올해 69세인 최 화백은 이스트빌리지의 예술적 토양을 기반으로 산과 꽃, 누드, 도심 빌딩을 소재로 자연과 도시문명의 접점을 깊숙이 짚어왔다. 밖에서 안을 보는 동양화의 전형적 구도에서 벗어나 안에서 밖을 보는 구도를 통해 ‘안팎의 하모니즘’이란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는 다양한 생물 및 초목이 공존하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 내재하는 원천적인 에너지에 주목한다. 그림에는 자연스럽게 구상과 추상이 교차한다. 등만 보인 누드엔 수줍음보다 당당함이 있고, 흰색과 원색을 대비한 화면엔 원시적이고 주술적인 기운이 감돈다. 그는 “단순히 웅장한 자연을 담아낸 풍경화에서 끝나지 않고 여인의 누드를 그려넣어 좀 더 신비롭고 장엄하게 느낄 수는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산이 예쁘고 둥근 데 비해 외국의 산들은 날카로움과 장엄함 그 자체”라며 “특히 히말라야의 깊숙한 산속에서는 스스로 강렬한 청년으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자연과 인간의 접점을 포착하는 최 화백의 작업에는 극적인 인생 경험이 녹아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민족대표 33인을 변호했던 국내 1호 변호사 최진이다. 할머니는 소설가 나도향의 누나이자 국내 최초의 피아니스트다. 최 화백은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고교를 건너 뛴 수재였다. 15세에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해 2학년 때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해병 첩보부대(HID)에 근무하며 전쟁의 잔인함을 체험했다. 22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공장 노동자, 유도와 태권도 사범, 바텐더 등을 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기도 했다.
‘글쟁이’의 꿈을 키우던 1977년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배경이 된 뉴올리언스의 풍광을 보러 갔다가 추상화가인 부인 로렌스를 만나 미술로 방향을 틀었다. 그림이 글보다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는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이스트빌리지에서 첫 개인전을 열어 미국 화단에서 주목받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멕시코 유카탄 정글지대와 미국 서북부 지역, 중국 우루무치, 티베트, 네팔 등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2년씩 머물며 작업했다. 최근에는 ‘미술 한류’를 개척하기 위한 아트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최 화백은 “삶이란 만들어가는 과정이 있어야 의미가 있게 마련”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미술은 내 인생의 ‘멜팅 포트’(용광로)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