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법원에 접수된 상고심 건수는 4만4327건이다. 대법관 14명 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면 재판 업무를 전담하는 대법관 12명이 각자 3694건을 맡는 셈이다. 30년 전에 비해 다섯 배가 넘는 규모다. 법조계에선 상고 남발로 대법원 업무가 과중해지는 것이 상고심 지연의 핵심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 대 3694…작년 대법관 한 명이 상고심 3694건 맡아
2일 한국경제신문이 법원행정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전체 심급 중 상고심 사건 처리 기간 증가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민사 소송 상고심 접수부터 선고까지 평균적으로 걸린 기간은 181.8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형사 소송(불구속)과 행정 소송의 상고심도 각각 6%, 11% 늘어났다. 한 대형 로펌 팀장급 변호사는 “대법원만 가면 ‘무한 웨이팅’ 시작”이라며 “웬만한 사건은 최소 3년은 걸린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자구책으로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를 활용하고 있지만 사건 당사자와 변호인들은 불만이 많다. 심리불속행은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당사자는 별다른 설명 없이 “상고이유 없어 기각한다”는 단 몇 줄짜리 판결문만 받아볼 수 있다. 2018년 심리불속행 기각률은 76.7%에 달했다. 법조계에선 ‘심불’을 피하기 위해선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상고심 개혁 작업에 들어갔다. 김 대법원장이 의장을 맡은 사법행정자문회의는 판사, 검사, 변호사 및 국회 추천 전문가 등 11명으로 구성된 ‘상고제도개선특별위원회(위원장 이헌환 아주대 교수)’를 설립하고 지난달 17일 첫 회의를 열었다. 위원회는 오는 3월께 사법행정자문회의에 각종 상고제도 개선 방안의 장단점과 영향을 보고할 계획이다.

상고심 개혁 논의는 전임 대법원장 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상고심 사건을 전담하는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와 국회 등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휘말렸고,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기소까지 됐다. 한 부장판사는 “상고법원 제도 자체에 대한 찬반 논란은 있지만 지금은 관련된 이야기만 꺼내도 ‘적폐’로 묶이는 모양새라 다들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