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디지털 경제, 신구 산업 갈등해소에 달렸다
2012년에 디지털 경제의 도래를 보여주는 두 개의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1888년 창업해 전 세계 카메라와 필름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코닥이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을 통한 이미지 영상시장의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해 1월 19일 미국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4월에는 페이스북이 창업 1년 반밖에 안 된 당시 직원 수 13명의 인스타그램을 10억달러에 인수했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진을 찍는다. 1분마다 19세기에 찍힌 사진 전체보다 많은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공유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 무한대의 사진을 찍어 무제한의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역설적이게도 디지털기술 발전에 따른 사진 촬영·배포의 대중화는 전통적 사진산업 붕괴로 이어졌고, 그 자리를 소수 고급 엔지니어를 채용하는 인스타그램 같은 디지털기업이 대체하게 됐다.

코닥은 디지털기술이 가져올 이미지 영상산업의 변화를 몰랐을까. 코닥은 1990년대부터 전통적 필름시장이 축소되는 것을 예측하고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했는데, 왜 인스타그램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먼저 2000년대 초반에 만들지 못했을까. 이런 질문은 아마존이 초래한 유통혁명 때문에 파산신청을 한 미국의 대표적 유통기업 시어스, 넷플릭스가 ‘구독모델’을 도입하면서 파산한 세계적 비디오 렌털기업 블록버스터에도 적용된다. 모두 디지털기술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알았지만, 어떤 비즈니스 모델이 디지털 경제의 성공 모델이 될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시장에서 사라진 기업들이다.

디지털 경제의 확대는 시장 변화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시장 질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산업·경쟁·복지·노동·교육·조세 정책 등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를 각국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는 △기존 산업 붕괴와 신산업 출현 △이에 따른 부(富)의 재분배와 고용 안정성 확보 △디지털 경제에 적합한 인재 육성 △시장지배력 개념 재정립 △디지털 무역의 과세 문제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사회 정책 필요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디지털 경제의 확대와 함께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많은 부분은 모든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이런 디지털기술 발전에 따른 경제·사회 변화와 정책 사이의 적합성의 괴리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술 4.0 시대의 정책 1.0의 문제’라고 표현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인은 산업 정책을 통해 자본과 기술을 축적하고 경쟁의 활성화를 통해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경쟁력은 디지털 경제의 확대와 함께 초래되는 사회적 갈등을 얼마나 빨리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고, 디지털 기술혁신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의 틀을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사회적 합의의 틀을 마련하는 데 경쟁 국가에 뒤처진다면 우리 기업들은 혁신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데 외국 경쟁 기업에 뒤떨어질 것이다. 우리 소비자들은 글로벌 기업의 디지털 상품을 구매하게 되고, 우리 인재들은 외국 기업에 취업할 것이다.

‘데이터 3법’의 입법화 과정에서 경험했듯 다원화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함께 모든 사회 주체의 양보와 타협이 있어야 한다. 글로벌 디지털 환경에서 미국, 중국 등 경쟁국들의 과감하고 속도감 있는 디지털 혁신 지원 정책을 고려할 때, 디지털 경제가 초래하는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계속 세계 경제의 의미 있는 주체로 존재할지 아니면 산업화 시대에 이룬 ‘한강의 기적’이 과거의 역사가 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