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 R&D, 불가능한 기술에 도전한다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포드 V 페라리’는 근래에 보기 드문 카레이싱 영화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도 실존 인물인 캐럴 셸비와 켄 마일스의 도전정신, 목표를 향한 질주본능을 잘 그려냈다.

이는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환경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은 2017년에 이어 2018년에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정부 R&D 과제 중 98%가 성공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업화 실적을 보면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기술은 개발했지만 제대로 활용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불가능을 향한 도전정신과 명확한 목표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추진되는 대부분의 연구개발 목표는 기술 적용 가능성에 대한 검증과 기술 확보에 그친다. 개발하고자 하는 기술을 통해 최종적으로 무엇을 이뤄야 하는지에 관한 명확한 목표와 동기부여가 부족한 탓이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지원하고 뒷받침할 수 있는 주위 환경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극 중 포드사는 ‘르망 24시간 레이스 대회 우승’이라는 단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다. 목표 달성을 위해 막대한 자본도 투입했는데, 단지 자본의 힘만으로 대회 6연패를 한 페라리를 단번에 넘어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드가 이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도전정신과 열정이 가득한 캐럴 셸비와 켄 마일스를 아군으로 영입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받쳐줄 수 있는 주변 환경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 3월부터 산업 난제에 도전하는 기술 개발을 목표로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산업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까지 보편화된 R&D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 초고난도 기술을 발굴하고자 한다. 한 가지 목표를 쥐여 주고 그 미션을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관점에서도 더 나은 연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올해는 미래 산업의 핵심 주제가 되는 신규 테마를 발굴하고 다양한 과제를 선정할 계획이다.

연금술사를 가리키는 알키미스트(alchemist), 그들은 금속에서 금을 정련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과정 속에서 현대 화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최종 목표에 도달하면 좋겠지만, 결과가 미흡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성과가 창출됐으면 한다. 연구자들의 창의적인 도전이 우리 기술 경쟁력 강화를 이끌어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