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립보건원 중단 선언…수십년 숙원 무산에 한탄 봇물 터지듯
에이즈 퇴치전 또 '헛바퀴'…유력하다던 남아공 백신시험 실패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AIDS)을 퇴치하기 위한 수십 년에 걸친 총력전이 다시 퇴보를 거듭했다.

4일 가디언, 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시한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백신 테스트의 중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와 실험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백신 분야와 에이즈 전문가 및 예방 활동가들에게 타격으로 다가왔다.

미국 정부는 1980년대 중반 에이즈가 백신으로 퇴치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1997년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백신 개발에 대한 자금 지원 방침을 밝히면서 10년 내 개발을 예상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르도록 아직 어떤 효과적 백신도 발견되지 못했다.

이번에 남아공에서 실시된 'HVTN 702 연구'가 실패로 막을 내린 것은 특히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진단된 유일한 백신 후보를 골라 시험해왔기 때문이다.

남아공 줄루어로 여행을 뜻하는 '우함보'로 불린 이번 임상시험에는 2016년부터 남아공 14곳에서 HIV 음성 반응을 보인 5천407명의 자원자가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성적으로 활발한 18∼35세 남녀였으며 18개월 동안 6차례에 걸쳐 임의로 조사 대상인 백신 투약이나 위약을 처방받았다.

그러나 최소 18개월 시험 기간이 끝났을 때 백신을 처방받은 사람들 가운데 129명의 HIV 감염자가 발생한 반면 위약을 처방받은 대조 실험군에선 오히려 그보다 적은 123명의 HIV 감염자가 나왔다.

이에 따라 데이터 및 안전 모니터링 위원회는 실험 중단을 권고했다.

미국 국립앨러지 및 감염병 연구소의 앤서니 파우치 국장은 가디언에 "HIV 백신은 글로벌 유행병을 막는 데 필수적"이라며 "이번 백신 후보가 작용할 것으로 희망했으나 유감스럽게도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HIV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는 다른 분야에서 계속될 것"이라며 "나는 아직도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남아공의료연구협의회의 글렌다 그레이 총재는 이번 실험과 관련해 "남아공 사람들은 중대한 과학적 질문에 응답해서 역사를 만들었으나 슬프게도 답이 다르게 나왔다"고 아쉬워했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HIV 발병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다.

국제기구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남아공에서 15∼49세 성인 인구의 20% 이상이 HIV 보균자이며 2018년에만 24만명이 HIV에 감염됐다.

HIV 분야 보건전문가와 연구진을 대표하는 국제에이즈학회(IAS)는 큰 기대를 걸었던 이번 임상시험 결과에 깊은 실망감을 표했다.

린다-게일 베커 IAS 백신사업 자문그룹 수석은 "이번 경우 중대한 후퇴이긴 하지만 예방 백신 개발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지역에서 줄어들지 않는 HIV 감염률에 경각심을 갖고 전 세계적 관심 속에 백신 개발 투자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즈 퇴치전 또 '헛바퀴'…유력하다던 남아공 백신시험 실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