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금을 회식비로 쓰고, 연구원을 가짜로 등록해 인건비를 받아내는 등 국가 연구비가 줄줄 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부패예방감시단은 지난해 5~11월 국가연구개발사업 정부지원금 집행 실태를 점검한 결과 267건의 부정 집행 사례를 적발했다고 4일 밝혔다. 금액으로는 105억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해양수산부, 농촌진흥청 등 7개 부처의 35개 사업(예산 5318억원)을 점검한 결과다. 정부 지원 연구비의 약 2%가 부정 집행된 셈이다.

국무조정실은 경미한 실수를 넘어 고의로 횡령·유용한 사례 245건에 대해서는 연구비 23억7000만원을 환수하기로 했다. 환수 대상 가운데는 인건비 지원금 3억4900만원을 43회에 걸쳐 법인카드 결제에 사용한 연구기관도 있었다. 주로 회식비와 유흥비 등으로 썼다. 이 기관은 연구 장려금 성격인 연구수당 5000만원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원 허위 등록이 주요 범행 수법 중 하나였다. A사는 연구개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연구원에 포함시켜 400만원의 인건비를 타냈다. 303회에 걸쳐 야근 등 시간 외 근무를 했다고 조작해 800만원의 수당을 챙기기도 했다. B사는 행정 업무 직원을 연구원이라고 속여 연구수당 5400만원을 받아갔다.

C사는 연구 수행과 관계없는 복사기 등을 연구비로 구매했다가 덜미가 잡혔다. 부당 집행액은 910만원이다. 이 회사는 “연구에 필요한 장비를 샀다”고 주장했으나 현장 점검을 가보니 연구 장비는 없었다.

좀 더 복잡한 수법을 동원한 기관도 있다. D사는 연구 관련 물품 3400만원어치를 구입했다가 나중에 반품했다. 3400만원을 환불받았음에도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점검 때 적발됐다. 복수 부처 사업 과제에 같은 전자세금계산서를 증빙 첨부하는 방식으로 재료비를 이중 청구한 사례도 있었다.

정부는 R&D 예산을 매년 늘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소재·부품·장비 자립화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작년(20조5000억원)보다 3조7000억원 많은 24조2000억원을 편성했다. 정부 지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재정 누수 가능성도 커진다. 연구비 부정 집행을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예산 부정 집행을 최소화하도록 법적, 제도적 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며 “전자세금계산서, 건강보험자격 정보 등 연구비 부정 사용 여부를 탐지할 수 있는 정보를 부처 간 공유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