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잊혀진 가상 행성 '벌컨'과 과학적 법칙
1860년 프랑스 정부는 당대의 수많은 천문학자가 찾아 헤매던 태양과 가장 가까운 행성 ‘벌컨’을 발견한 공로로 에드몽 레스카보라는 아마추어 천문학자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 명예 훈장)을 수여했다. ‘수금지화목토천해’에 익숙한 많은 독자는 ‘수성보다 태양에 가까운 행성’이란 말에 다들 갸우뚱할 텐데, 그 연유를 따라가보면 이렇다.

1781년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인 천왕성을 발견한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프랑스 천문학자 알렉시 부바르는 만유인력 법칙에 입각해 천왕성 궤도를 예측한 천문표를 발행했는데, 실제로 관측된 천왕성 궤도는 부바르의 계산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이는 우주가 만유인력 법칙만으로 설명 가능한, 정교하게 만든 기계와 같다고 믿었던 당대 과학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최형순의 과학의 창] 잊혀진 가상 행성 '벌컨'과 과학적 법칙
만유인력 법칙이 틀릴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당대의 많은 과학자는 천왕성보다 더 먼 곳에 미발견의 천체가 있고, 그 천체의 영향으로 천왕성의 궤도가 계산 결과와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그 대표 주자가 프랑스의 위르뱅 르베리에였다. 그리고 천왕성이 관측된 궤도대로 움직이려면 이 미발견의 천체가 언제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만유인력 법칙을 바탕으로 새로 계산했다. 1846년 르베리에는 자신이 예측한 시간과 장소에서 또 하나의 새 천체를 발견했다. 이 천체가 여덟 번째 행성인 해왕성이다. 해왕성의 발견은 새 행성의 발견이라는 사실로서도 천문학적 이정표지만, 과학사적으로 더 넓게 보면 만유인력 법칙의 정교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중요한 사건이었다.

수성보다 태양에 가까운 행성?

르베리에는 해왕성을 발견하기 3년 전인 1843년부터 수성의 궤도도 조금 이상하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태양계의 모든 행성은 타원 모양의 궤도를 그리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 타원 궤도 자체가 서서히 회전한다. 이를 ‘궤도 세차운동’이라고 한다. 르베리에는 1859년 관측된 세차운동이 만유인력 법칙에 따른 계산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미 해왕성의 발견이라는 성공을 맛본 르베리에는 만유인력을 무한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성과 태양 사이에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다른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그 가설에 대해 확신에 찬 나머지 그는 발견되지도 않은 행성에 ‘벌컨’이라는 이름까지 미리 붙였다(영화 ‘스타트렉’에서 스파크의 고향으로 나오는 가상의 행성도 벌컨이다).

그리고 이 벌컨을 발견하는 ‘영광’이 아마추어 천문학자 레스카보에게 돌아간 것이다. 문제는 레스카보의 발표 이후 벌컨의 존재는 다시 확인되지 않았고, 결국 잊혀졌다. 추측건대 레스카보가 발견한 것은 혜성이나 태양의 흑점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수성의 궤도 이상은? 이 문제는 결국 20세기 들어 해결되는데, 이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질량을 갖는 물체 주변의 공간이 휘어져 있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다. 공간이 휘어진 정도는 질량이 클수록, 질량을 갖는 물체에 가까울수록 심하다. 그리고 수성은 태양에 의해 휘어진 공간을 느끼기에 충분히 가까웠기 때문에 평평한 우주를 전제로 계산한 궤도와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상대성이론의 등장으로 천왕성이 발견된 지 130여 년 만에 태양계 문제는 일단락됐다.

과학의 정수는 가설 검증 '과정'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행성의 궤도가 만유인력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일견 동일한 문제에서 출발했는데, 천왕성과 수성의 경우 각각 ‘만유인력의 법칙은 역시 완벽하다’와 ‘이 우주는 일반상대성이론이 지배한다’는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쯤에서 과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관측된 데이터를 올바르게 설명하는 다양한 과학 법칙을 배우고, 대개는 이것들을 반박할 수 없는 진리라 여긴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과학적 법칙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사실관계가 아니라 그 사실관계에 대한 해석이다. 관측을 통한 데이터, 즉 오늘은 수성이 하늘 어디에 떠 있고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움직이더라는 것 따위는 반박 불가능한 사실의 집합이다. 그렇지만 그 시간에 수성이 왜 그렇게 움직여야 했느냐에 대한 해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과학의 정수는 이렇게 다양한 해석 중 ‘어느 것이 더 그럴듯한가’를 밝혀내는 과정이다. 과학자들이 신뢰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흔히 가설 검증을 통한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는 이 과정이다. 우리가 과학을 접할 때 결과물인 법칙의 내용에만 집중하지 않고, 그 결론을 얻기까지의 과정 자체에도 초점을 맞춘다면 과학은 누구에게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지식이 될 수도 있다.

KAIST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