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2차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다시 나왔다. 직접적인 생산라인에 종사하지 않는 하도급업체 소속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업무내용과 관계없이 현대차가 모두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산업계에선 유사한 소송이 잇따르고 불법파견 범위가 무한정으로 확대되는 등 기업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법원 “파견법 피하려 2차 하청 끼워넣어”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1부(부장판사 정도영)는 현대차 하청 근로자 68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전체 원고 중 20여 명이 현대차가 아니라 현대글로비스 등과 계약을 맺은 2차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2016년 4~10월 현대차 울산공장 간접 생산 공정에서 근무하는 하청업체 근로자 120여 명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현대차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했다”며 현대차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법원은 노조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현대차-현대글로비스 간 도급계약과 현대글로비스-2차 하청업체 간 도급계약은 도급작업명, 도급금액 등 내용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2차 하청 근로자들은 사실상 현대차의 관리와 지휘·명령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차는 2차 하청 근로자들이 현대글로비스가 자체 제작한 ‘웹지스’에 의해 업무가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대차가 제공하는 정보를 재가공한 것에 불과하다”며 “명시적인 계약 체결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고의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2차 하청업체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파견법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 직후 금속노조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차는 법원 판결에 따라 모든 하청 근로자들을 직접고용하고 사내하도급제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는 13일에는 같은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 58명에 대한 판결이 나온다.

“제조업 불법파견 줄소송 우려”

업계에선 외부에 있는 물류공장에서 부품을 받아 각 생산라인에 전달하는 업무에 종사하는 2차 하청 근로자까지 직접고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 사건의 2차 하청업체(부품 물류사)들은 15~20년 동안 독자적인 물류센터, 장비, 시설 등을 보유하고 물류업무를 해왔다”며 “같은 2차 하청 근로자라 하더라도 공정을 분리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은 산업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현대차 2차 하청업체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첫 판결은 6년 전 나왔다. 2014년 9월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 2차 하청업체 근로자를 포함한 1100여 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현대차와 2차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 사이의 ‘묵시적 파견계약’ 관계를 인정했다. 2017년 2월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고, 3년째 대법원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법조계에선 이 같은 논리대로라면 2차를 넘어 3·4차 하청업체까지 불법파견의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형 로펌의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명시적 계약관계를 거치지 않은 2차 하청근로자들에게 계약의 예외로 불법파견을 인정해버리면 불법파견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다”며 “기업들의 직접고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정민/신연수/장창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