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대책 발표 후 두달간 화재 5건…달라진 원인에 '혼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관리·운영 미흡→배터리 이상…조사단 "충전율 높이니 불"
배터리-ESS설비 업체 간 공방 가열될 듯…신규설비 충전제한 의무화
에너지저장장치(ESS) 추가 화재에 대한 조사 결과가 첫 번째 조사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나오면서 ESS 화재를 둘러싼 혼란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첫 번째 조사는 배터리 자체보다는 보호·운영·관리 미흡을 더 주요하게 본 반면에 추가 조사는 배터리 이상을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같은 결과로 인해 ESS 설비업체와 배터리업체 간 책임 공방이 거세질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개별 사업장마다 상황이 다르다며 책임 소재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대신 신규 설비의 충전율 제한을 의무화하고 ESS의 충·방전 시간을 달리하는 등 화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보다 강화된 안전대책을 내놓았다. ◇ 외부요인이라더니…추가 화재는 '배터리 이상' 원인
6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ESS 설비에서 처음 불이 난 것은 2017년 8월 전북 고창에서다.
이 화재를 시작으로 2018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22건의 화재가 잇달아 발생했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다.
밤이나 바람이 없는 날 등 태양광과 풍력이 전기를 생산할 수 없을 때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꼭 필요하다.
정부는 23건의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1월 '민관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꾸렸고 약 5개월 만인 6월 11일 화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조사위는 ESS 설비 화재 사고의 원인으로 배터리 자체의 결함보다는 보호·운영·관리상의 문제를 더 주요하게 봤다.
다수의 사고가 같은 공장에서 비슷한 시기 생산된 배터리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돼 셀 해체분석을 시행한 결과 1개 회사 일부 셀에서 극판 접힘, 절단 불량, 활물질 코팅 불량 등의 제조결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비슷한 셀을 제작해 충·방전 반복시험을 180회 이상 수행했으나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해당 배터리를 가혹한 조건에서 장기간 사용하면 위험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이번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 전기적 충격에 대한 배터리 보호 시스템 미흡 ▲ 운영환경 관리 미흡 ▲ 설치 부주의 ▲ ESS 통합제어·보호 체계 미흡 등 4가지 요인이 화재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표가 무색하게 불과 두달여 뒤인 8월 30일 충남 예산에서 불이 났다.
이어 두 달 간 강원 평창, 경북 군위, 경남 하동, 경남 김해 등 4곳에서 잇달아 화재가 발생했다.
정부는 추가 화재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17일 전기, 배터리, 소방분야와 국회 등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ESS 화재사고 조사단'을 구성했다.
조사단은 현장조사, 증거물 분석, 기술토론 등 약 4개월에 걸쳐 조사 활동을 시행했고, 이날 배터리 이상을 화재의 주된 요인을 지적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화재 현장의 과거 이력과 환경영향, 전기적 충격 가능성 등 지난 조사위에서 제시된 화재 원인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항을 검토했다.
그 결과 5건의 화재 중 4건에서 배터리가 발화요인으로 나타났고 비슷한 사업장의 유사한 운영기록을 가진 배터리를 수거해 분석해보니 내부 손상 등 화재를 가져올 만한 요인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남 하동만 배터리 이상으로 지목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화재 사업장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실험해본 결과에서도 충전율(SOC)을 제한한 상태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충전율을 높인 후에는 불이 나는 것을 확인했다.
조사단은 "만충(완전충전)에 가까운 조건에서 충·방전을 반복해 운영했고 만충 후 대기시간도 길어 배터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95% 이상의 높은 충전율 조건으로 운영하는 방식과 배터리 이상 현상이 결합돼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다만 조사단은 지난 조사위 발표와 이를 토대로 나온 안전대책이 보다 명확하게 원인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지난 조사위 발표 후 진행된 공통안전이행조치로 사고 예방과 관련된 기록이 보존된 점이 화재 원인 규명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 배터리 제조사 '당혹'…정부는 안전기준 한층 더 강화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던 배터리제조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LG화학은 3일 진행된 2019년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회사 자체 조사에서는 배터리 셀에는 문제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추가 화재를 포함해 총 28건의 화재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를 두고 배터리 제조사와 ESS 설비업체 간 법정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조사단과 이번 발표에서 원인만 규명할 뿐 책임 소재를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가 조사단의 결론을 토대로 추가 안전대책을 내놓은 안전대책에도 배터리셀 개선이나 리콜 등에 관한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다만 정부는 충전율을 낮춰 운전함으로써 배터리 유지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화재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신규 설비는 충전율 제한을 옥내 80%, 옥외 90%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충전율 제한 조치는 전문가 및 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 중 ESS 설비 '사용 전 검사 기준'에 반영한다.
기존설비는 신규 설비와 동일한 충전율로 하향토록 권고하되 충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으면서도 업계의 부담이 완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생에너지 연계용 ESS 운영기준과 특례요금을 개편한다. 정부는 업계와 협력해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건물 내 ESS 설비는 공통안전조치, 소방시설과 방화벽 설치 등의 안전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안전조치 이행이 어렵거나 사업주 등이 옥외 이전을 희망 경우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6월 안전관리대책 발표 이후 설치되는 ESS는 운영 데이터를 별도 보관하는 조치를 의무화했다.
추가 대책에서는 그 이전에 설치된 ESS 설비에 대해서도 블랙박스에 운영 데이터를 별도 보관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큰 설비는 긴급점검을 시행하고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우려가 현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철거·이전 등 긴급명령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한다.
정부의 긴급명령으로 손실이 발생할 때는 보상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긴급명령을 따르지 않은 데 따른 벌칙 등을 함께 신설한다.
ESS 설비의 법정점검 결과 등 안전관리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정보공개제도도 새로 만든다. 이와 함께 국가연구개발(R&D)을 통해 산지·해안가, 도심형, 옥내 모델 등 입지별 특성을 고려한 표준설치모델을 개발해 보급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발표를 계기로 ESS 운영제도 역시 손을 본다.
현재 ESS 운영기준은 모든 ESS가 같은 시간대에 충전하고 방전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계통별 혼잡 상황, 날씨 등에 따라 달라지는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전력수요 등을 고려해 ESS 충·방전 시간 등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보완한다.
아울러 ESS 생태계 건전성 강화를 위해 단기는 물론 중장기에 걸친 체계적 지원방안을 수립해 시행한다.
산업부는 "ESS 유지보수(O&M) 전문역량 강화, 이차전지의 효과적 재사용·재활용 방안, 화재 취약성을 개선한 고성능 이차전지 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배터리-ESS설비 업체 간 공방 가열될 듯…신규설비 충전제한 의무화
에너지저장장치(ESS) 추가 화재에 대한 조사 결과가 첫 번째 조사와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나오면서 ESS 화재를 둘러싼 혼란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첫 번째 조사는 배터리 자체보다는 보호·운영·관리 미흡을 더 주요하게 본 반면에 추가 조사는 배터리 이상을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같은 결과로 인해 ESS 설비업체와 배터리업체 간 책임 공방이 거세질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개별 사업장마다 상황이 다르다며 책임 소재에 대한 언급은 피했다.
대신 신규 설비의 충전율 제한을 의무화하고 ESS의 충·방전 시간을 달리하는 등 화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보다 강화된 안전대책을 내놓았다. ◇ 외부요인이라더니…추가 화재는 '배터리 이상' 원인
6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ESS 설비에서 처음 불이 난 것은 2017년 8월 전북 고창에서다.
이 화재를 시작으로 2018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22건의 화재가 잇달아 발생했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다.
밤이나 바람이 없는 날 등 태양광과 풍력이 전기를 생산할 수 없을 때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꼭 필요하다.
정부는 23건의 화재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1월 '민관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꾸렸고 약 5개월 만인 6월 11일 화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조사위는 ESS 설비 화재 사고의 원인으로 배터리 자체의 결함보다는 보호·운영·관리상의 문제를 더 주요하게 봤다.
다수의 사고가 같은 공장에서 비슷한 시기 생산된 배터리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돼 셀 해체분석을 시행한 결과 1개 회사 일부 셀에서 극판 접힘, 절단 불량, 활물질 코팅 불량 등의 제조결함을 확인했다.
하지만 비슷한 셀을 제작해 충·방전 반복시험을 180회 이상 수행했으나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해당 배터리를 가혹한 조건에서 장기간 사용하면 위험요소가 될 수는 있지만, 이번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 전기적 충격에 대한 배터리 보호 시스템 미흡 ▲ 운영환경 관리 미흡 ▲ 설치 부주의 ▲ ESS 통합제어·보호 체계 미흡 등 4가지 요인이 화재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표가 무색하게 불과 두달여 뒤인 8월 30일 충남 예산에서 불이 났다.
이어 두 달 간 강원 평창, 경북 군위, 경남 하동, 경남 김해 등 4곳에서 잇달아 화재가 발생했다.
정부는 추가 화재의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17일 전기, 배터리, 소방분야와 국회 등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 'ESS 화재사고 조사단'을 구성했다.
조사단은 현장조사, 증거물 분석, 기술토론 등 약 4개월에 걸쳐 조사 활동을 시행했고, 이날 배터리 이상을 화재의 주된 요인을 지적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단은 화재 현장의 과거 이력과 환경영향, 전기적 충격 가능성 등 지난 조사위에서 제시된 화재 원인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항을 검토했다.
그 결과 5건의 화재 중 4건에서 배터리가 발화요인으로 나타났고 비슷한 사업장의 유사한 운영기록을 가진 배터리를 수거해 분석해보니 내부 손상 등 화재를 가져올 만한 요인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남 하동만 배터리 이상으로 지목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화재 사업장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실험해본 결과에서도 충전율(SOC)을 제한한 상태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충전율을 높인 후에는 불이 나는 것을 확인했다.
조사단은 "만충(완전충전)에 가까운 조건에서 충·방전을 반복해 운영했고 만충 후 대기시간도 길어 배터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토대로 "95% 이상의 높은 충전율 조건으로 운영하는 방식과 배터리 이상 현상이 결합돼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다만 조사단은 지난 조사위 발표와 이를 토대로 나온 안전대책이 보다 명확하게 원인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지난 조사위 발표 후 진행된 공통안전이행조치로 사고 예방과 관련된 기록이 보존된 점이 화재 원인 규명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 배터리 제조사 '당혹'…정부는 안전기준 한층 더 강화
제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던 배터리제조업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LG화학은 3일 진행된 2019년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회사 자체 조사에서는 배터리 셀에는 문제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추가 화재를 포함해 총 28건의 화재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를 두고 배터리 제조사와 ESS 설비업체 간 법정 공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조사단과 이번 발표에서 원인만 규명할 뿐 책임 소재를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가 조사단의 결론을 토대로 추가 안전대책을 내놓은 안전대책에도 배터리셀 개선이나 리콜 등에 관한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다만 정부는 충전율을 낮춰 운전함으로써 배터리 유지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화재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신규 설비는 충전율 제한을 옥내 80%, 옥외 90%로 의무화하기로 했다.
충전율 제한 조치는 전문가 및 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 중 ESS 설비 '사용 전 검사 기준'에 반영한다.
기존설비는 신규 설비와 동일한 충전율로 하향토록 권고하되 충전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으면서도 업계의 부담이 완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재생에너지 연계용 ESS 운영기준과 특례요금을 개편한다. 정부는 업계와 협력해 일반인이 출입할 수 있는 건물 내 ESS 설비는 공통안전조치, 소방시설과 방화벽 설치 등의 안전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안전조치 이행이 어렵거나 사업주 등이 옥외 이전을 희망 경우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6월 안전관리대책 발표 이후 설치되는 ESS는 운영 데이터를 별도 보관하는 조치를 의무화했다.
추가 대책에서는 그 이전에 설치된 ESS 설비에 대해서도 블랙박스에 운영 데이터를 별도 보관하도록 권고할 계획이다.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큰 설비는 긴급점검을 시행하고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한 우려가 현저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철거·이전 등 긴급명령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한다.
정부의 긴급명령으로 손실이 발생할 때는 보상을 지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긴급명령을 따르지 않은 데 따른 벌칙 등을 함께 신설한다.
ESS 설비의 법정점검 결과 등 안전관리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는 정보공개제도도 새로 만든다. 이와 함께 국가연구개발(R&D)을 통해 산지·해안가, 도심형, 옥내 모델 등 입지별 특성을 고려한 표준설치모델을 개발해 보급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발표를 계기로 ESS 운영제도 역시 손을 본다.
현재 ESS 운영기준은 모든 ESS가 같은 시간대에 충전하고 방전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계통별 혼잡 상황, 날씨 등에 따라 달라지는 재생에너지 발전량과 전력수요 등을 고려해 ESS 충·방전 시간 등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보완한다.
아울러 ESS 생태계 건전성 강화를 위해 단기는 물론 중장기에 걸친 체계적 지원방안을 수립해 시행한다.
산업부는 "ESS 유지보수(O&M) 전문역량 강화, 이차전지의 효과적 재사용·재활용 방안, 화재 취약성을 개선한 고성능 이차전지 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